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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먼 자들의 도시>는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이었다.백색의 실명이라는 설정과 도시에서 단 한 사람만 눈을 뜨고 있다는 설정도 독특했다.하지만 인간의 밑바닥을 봐야하는 불편한 소설이었다.그 충격을 뒤로한 채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눈먼 자들의 도시>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 반면,<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는 상당히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책이었다.인식은 하고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한 여자를 찾아헤메는,<햄릿>에서 말하는 사느냐 죽는냐 의 문제로 상당히 다소 철학적인 사유를 요구하는 책이었다.두 권에 비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읽기에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이 책 역시 마무리가 불편하다.
그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없다.다만 대명사로 지칭될 뿐이다.또한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극단적인 상황의 설정이 어김없이 등장한다.이 책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연결이 되는 작품으로,<눈먼 자들의 도시>의 4년 후의 이야기다.<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정부는 백색실명환자들을 격리시켜버리고 소설 속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하지만 그들이 모두 눈을 뜬 후에는 정부가 전면에 등장한다.
비가 많이 오는 지방자치제선거날 제십사투표소에 한 시간이 지나도 선거인이 나타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다른 투표소도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냥 우연히 4시에 몰려와서 투표를 한다.그런데 개표결과 전체표의 70%이상이 모두 백지였다.그래서 다시 투표하지만 결과는 백지투표가 83%로 나타난다.
정부는 이 곤혹스러운 결과의 모든 원인과 결과를 조사하기 위해 비밀정보부를 만들어 녹음기와 비디오카메라를 동원하여 첩보활동을 한다.정부는 백지투표결과를 무정부주의자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하여 비상사태를 선포한다.이들은 투표소 앞에 늘어선 선거인 중 골라낸 오백명을 용의자로 소환하여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여 심문한다.그렇게하고도 결과가 없자 정부는 악을 알의 수준에서 파괴한다는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한다.계엄으로 군부대가 도시를 포위하고 마비상태가 된다.그리고 정부는 시민들 몰래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우스운 광경을 연출한다.그것도 모자라 전철역에 폭탄을 터뜨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4년전의 백색실명과 현재의 백지투표와 어떤 관련성을 제기하며 단 한 사람의 눈 뜬 자가 있었다는 제보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이 멀지 않았던 단 한사람 의사부인을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날씨가 득표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경전을 펼치는 중도정당,우익정당,좌익정당참관인들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선거판을 보는 듯하다.재선거나 비상사태,계엄선포를 결정할 때 정치인들은 각 정당의 이익을 먼저 따진다.총리나 장관들 역시 자리보전이 더 우선이다.권력의 비위를 마추랴 독자의 비유를 맞추랴 이보전진일보후퇴의 입장을 취하는 신문과 방송등 언론매체의 태도,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정치판의 모습은 현실의 정치와 언론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교회도 정부의 시녀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적인 정부의 모습 ,정치인들이 벌일 수 있는 온갖 쇼는 다 동원된 책이다.기발하기 그지없는 쇼의 극치다.4년전에도 눈이 멀었지만 정부는 눈을 뜨고 있는 현재가 오히려 더 눈이 멀었다.백지투표자들이 오히려 눈을 뜬 상태인 셈이다.권력의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눈이 먼 정권의 듣지도 못하는 권력의 속성,권력이란 추락하기 전에는 그 끝이 없는 속성이 있다.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불편하다.씁쓸한 뒷맛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