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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만난 밀란 쿤데라의 작품은 상당히 난해했다.하지만 그 난해함에 반해서 그의 또 다른 작품<느림>을 찾게 되었다.이 작품 역시 난해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에 관한 이야기가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었던 것처럼 <느림>에서는 빠름과 느림에 관한 기억이 소설에 전체적으로 흐르고 있다.밀란 쿤데라의 소설이 어려운 것은 한 가지의 대상이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하고,그 기억이 또 다른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야기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래서 소설을 읽으면서 쉽게 빠져들지 못하고 자꾸 이야기의 흐름이 단절된다.각 장마다 내용 또한 철학적인 사유를 요구하고 있어서 이 작품은 느리게 읽지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가 없다. 저자가 느림을 말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 놓는 것처럼 보인다.
화자(밀란쿠)와 아내 베라는 운전 중 빠르게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고 느림과 빠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속도의 즐김은 오직 제 현재 순간에만 집중 할 수 있을 뿐이다.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P6)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한가로움이 빈둥거림으로 변질 되었다.(P7)
느림에 대한 그의 기억은 18세기의 정신과 예술을 가장 잘 드러낸 문학 작품 가운데 하나인 지금으로부터 200년전 비방의 단편소설 속 T부인의 이야기로 이어진다.T부인은 기사를 정부로 둔 백작부인의 여자친구다.T부인은 후작이 남편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어떤 방패막이 역할이 필요해서 기사를 가짜 정부라는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화자는 이 소설아 18세기의 정신과 예술을 가장 잘 드러낸 문학 작품으로 평한다.18세기의 에피쿠로스는 신중하고 절제된 쾌락만을 가치 있게 평한다.하지만 18세기는 예술을 통해서 쾌락을 도덕적 금기의 안개에서 빠져나오게 했다.T부인은 쾌락주의의 아킬레스건이다.T부인의 이야기가 관능적인 이유는 바로 템포의 느림에서 생겨난다.느림과 기억사이,빠름과 망각사이에는 어떤 내밀한 관계가 있다..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P48)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성)은 T부인의 이야기를 기억나게 하는 곳이다.성은 200년전 T부인의 쾌락의 장소였다.또한 그곳은 세미나,강연,수영장,텔레비젼의 아프리카 국가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그의 기억은 다시 지식인 베르크의 행동으로 연결된다.베르크에 대한 기억은 아프리카의 소녀가 20년후 여류 연출가로 성장한 임마쿨라타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그는 베르크와 같은 정치인들을 춤꾼이라고 풍자한다.오늘날의 모든 정치가들이 어느 정도는 다 춤꾼들이요,모든 춤꾼들이 또 정치에 관여하고 있는데,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을 서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춤꾼이 여느 정치가와 다른 것은 권력이 아니라 명예를 갈구한다는 점이다.(P25) 그들이 유혹하고 싶은 대중은 얼굴이 없는 보이지 않는 다수의 군중이다.춤꾼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단순한 열정만은 아니며,그것은 또한 한번 들어서면 다시는 벗어날 수 없는 도로이기도 하다.오직 TV만이 그의 유일한 주인이요,정부요,첩일 뿐..(P98)
사랑의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화자는 선택되었다는 것의 신학적개념과 사랑을 연결시킨다.임마쿨라타와 같은 사랑인 되쫒겨남은 전락이라 한다.화자는 곤충학자의 우울한 긍지를 1968년 프라하의 봄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반항하는 인간 시지푸스의 개념,소설 속에서 난교파티와 현실의 수영장의 장면,여행길에서 만났던 오토바이는 다시 현실의 벵상으로 연결되고,18세기 기사와 현재의 사내의 만남,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복잡해서 어떤 면에서는 정치풍자처럼 보이고,또 어떤 면에서는 현실과 환상의 조합처럼 보인다.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그의 걸음걸이들은 느려진다.저 느림 안에서,나는 행복의 어떤 징표를 알아보는 듯하다.(P181) 어쨋든 그는 느림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너무 빠르게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다른 이의 리뷰를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