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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평점 :
십대가 무지개색의 빨주노초의 따뜻하고 상큼한 원색이라면
이십대는 파남보의 무지개빛 끝자락에 위치한 빛일 것이다.
10대가 핑크색이라면 20대는 블루중에서도 스카이블루일 것이다.
십대의 끝자락과 이십대의 시작점에서 인생을 진지하게 고뇌한 흔적이 묻어있다.
글의 전체적인 느낌은 블루칼라다.
일상이나,사물,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인 섬세한 표현력에 반해버린다.
꼭꼭 씹어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소화시켜야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표현력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감미로운 맛,신맛,쓴맛,짧쪼름한 맛까지 골고루 감성에 오감을 자극한다.
단편소설이라기 보다는 짤막짤막한 일기를 엮어놓은듯 친근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책을 읽는 내내 곳곳에서 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 섬세하게 표현된 문장을 찾아 읽는 재미가 있다.
어떤 형태가 없는듯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는 잭슨플록의 그림같은 사진들이
이국적인 느낌과 소외를 말해주고,회색의 도시적인 이미지와 현대적인 느낌을 말해준다.
우울한 감정과 외로움, 사람사이의 단절등 대체적인 블루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 책에 사진이 없다면 그 느낌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타블로의 글을 음악으로 표현하면 어떤 음악이 될까?
무겁게 착 가라앉은 클래식을 듣는 기분이랄까?
<안단테>
나는 피아노의 검은 껍질 위에서 작은 날개를 퍼덕이던 새.
아버지의 안단테에 맞추어 걷는 법을 배웠다.(P20)
난 손가락으로 마구 욕설을 내뱉듯 연주했고,
피아노는 내가 쏟아내는 거친 말들을 차분한 정신과 의사처럼 받아주고 있었다(P25)
방문을 여며 닫듯이,아버지를 향한 내 마음의 문을 닫았다.
이제 내게 아버지는 식탁 위에 장식품으로 놓인 플라스틱 과일바구니나 다름없는 존재였다.(P34)
<쥐>
어쩌면 이 많은 물건들은 어디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가게가 생물처럼 이 물건들을 스스로 낳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130)
<승리의 유리잔>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걸어갔던 길을 역행하려 발버둥쳤기에 오히려 그대로 닮게 된 경우다.
별을 쫒다가 구름만 휘젓고 주저않은 패배자.
그렇게 내 앞에 갈라져 있던 길은 사실 처음부터 큰 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P175)
<일밤>? 에서 잠깐 소개해준 글의 뛰어난 표현력에 감탄했다
만약 저 글이 책으로 나온다면 꼭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다.
타블로가 유명인이어서인지,그의 글의 뛰어난 표현력을 알아본 것인지,
아니면 외국인 교수의 칭찬의 힘이 컸는지는 몰라도 어쨋든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나의 십대의 끝자락과 이십대의 시작점을 뒤돌아보면서
내가 지나온 질풍노도기의 긴 터널을 이제야 빠져나온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