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랜드 -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 / 늘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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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차원의 눈


책을 쓴다는 것은
‘차원을 넘어선‘ 기발하고 대담한 상상력의
산물인것이다.

빛도 그림자도 없는 모든 것이 평평한 2차원 세상
‘플랫랜드‘

2차원의 세상, 플랫랜드에는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상처럼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곳은 철저한 신분사회다.
이 책은 1884년에 쓰여진 책으로 무려 100년이 넘은 이야기다.
당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하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주인공 ‘정사각형‘의 모험이야기는 판다지에 버금가는 흥미로운 시간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조금 어려운 공간의 여러 차원을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는데 있어선 작가가 전문 과학자가 아닌지 의심도 간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에드윈 A. 애보트는 신학자이며 언어학자인 교육자다.
빛바래 책장에 앉아 있는 이 책은 가끔씩 넘기는 책 중의 하나가 된 책이며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끼는 책이기도 하다.

이제부터 플랫랜드를 소개하고자 한다.
플랫랜드의 세상엔 모든 것이 평평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각기 다른 도형들을 서로 구별하기 힘들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직선‘뿐이며 다른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그들이 서로를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청각‘과 ‘느낌‘ 그리고 ‘시각‘이다.
플랫랜드에서는 여성의 처지가 가장 비참하다.
여성들은 직선이다.
군인들과 가장낮은 계층인 노동자들은 이등변삼각형이다.
중간계급은 정삼각형, 전문가들이나 신사들은 사각형 혹은 오각형으로 주인공 ‘사각형‘ 신분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 귀족 계급은 육각형부터 변의 개수가 증가하다가 다변형에 이르고 마침내 동그라미에 가까울수록 성직자에 속하게 되는 최고 계급을 말한다.

‘공간‘을 내포한 3차원의 사람들,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2차원의 ‘플랫랜드‘ 사회도 스페이스랜드인 3차원 세계와 다를게 없다.
소수의 ‘동그라미‘들은 수 세대에 걸쳐 플랫랜드의 다수의 사람을 지배해 왔다. 그들의 ‘지적능력‘은 교묘하게 낮은 계급들을 교란시키고 선동하면서 자신들의 계급에서 서로간 싸움을 촉발시켰다.
불평등하게 나눠진 신분 사회와 그것을 지키려는 독재는 지금의 사회문제를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당시 여성의 낮은 인권은 현대에 와서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채로 인권 그 중심에 놓여있다.
플랫랜드의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에서 ‘시각‘은 상류층의 인식법으로 사는 지역 또한 따뜻한 지역이다. 따뜻한 지역의 안개는 그들의 시각을 더 강화시켜주고, 훈련을 통해서 시각인식법을 발달시킨다. ‘느낌‘은 여성과 낮은 계급의 인식법으로 상류층에서는 지극히 제한하거나 금지시킨다.

불규칙 도형에 관해서 주인공‘ 사각형‘은 규칙성과 동일함에 기초한 사회 체제에서 혼란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도형의 불규칙성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하거나 느끼기엔 삶이 너무나 짧아서 형태의 규칙성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형의 불규칙성은 여기서 비행이나 범죄와 같은 뜻으로 그에 따라 다루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사각형‘은 중용의 입장에서 어떠한 고착된 절대적인 구획선을 긋지 않겠다고 한다. 이는 책을 쓴 이의 생각이기도 할 것이다.

플랫랜드의 삶은 단조롭고 따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미학적,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따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플랫랜드도 과거 조상들의 삶에 다채로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던 시기가 있었다.
가장 권위있는 이름 크로마티스테스(Chromatistes, 색체환각)
보수적인 오각형을 제외한 크로마티스테스를 모방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최상류의 귀족계급에까지 퍼져 크로마티스테스의 지역을 다른 지역과 구별되게 하였다. 이는 두 세대가 지나자 플랫랜드에선 여자와 종교인을 빼고는 색깔 없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색채혁명은 플랫랜드의 찬란한 유아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감각적으로 화려함의 극치는 당시 시민들의 가장 평범한 말씨까지도 사상과 언어의 다채로운 풍미로 풍만했다.

˝그 당시 산다는 것은 본다는 것이기 때문에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습니다.˝ (p75)

반면에 지적인 예술은 급격히 쇠퇴했다. 그들의 인식법인 ‘시각인식법‘은 더이상 행해지지 않았고 ‘느낌인식법‘도 무시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독점적이고 귀족적인 기술의 금지‘를 외치며 ‘평등‘을 외치기 시작했다. 귀족적인 인식법이 필요없어진 이상 모든 개인과 계급들간의 절대적 평등권을 요구하며 나선것이다. 그리고 여성과 성직자도 색칠을 할 수 있는 색채법에 따라 그 위상이 올라가게 되었다.

사회를 풍미했던 시각인식법이 색채혁명에 의해 어떻게 사라졌는지

모든 계층간 평등을 외칠수 있게 만든 색채의 등장과 우두머리 동그라미의 주장 그리고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치뤄진 학살 등
동그라미들은 승리하였고 그 뒤로 색채의 사용이 폐지되었고 그것을 보유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단, 동그라미들과 자격을 갖춘 몇몇 과학교사들은 제외되었다.
플랫랜드를 떠받드는 중심축인 동그라미 바로 성직자는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여하는 관리자이며 감독관이다. 그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플랫랜드 모든 일들의 근본 원인이 된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로 접어든다. 이야기의 재미는 여기서 더 흥미롭다. 그 신나는 시간을 뻬앗을 권리는 없는 듯 하여 간략하게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플랫랜드의 지식인 ‘사각형‘의 모험은 걸리버 여행기처럼 이제 시작이다.
그는 다른 세상들을 우연히 여행하게 된다. 포인트랜드, 라인랜드와 스페이스랜드를 여행하면서 그가 깨달은 비밀들을 훗날 손자에게 가르치려했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다른 세상을 아는 ‘사각형‘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다.
그의 고뇌와 그의 행동은 플랫랜드에서는 미친짓이다. 그리고 감옥행을 부른다.

이책은 SF장르다. 그리고 수학적 논리를 쉽게 풀어놓은 과학 소설이다.
공간의 여러 차원과 그 상대성에 대해서도 정교하다.
재미있는 공상과학소설이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 풍자소설이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숨어있는 철학 소설이다.
이 모든걸 다 담아놓은 인문서적 같은 책이다. 200페이지 남짓한 얇은 책이지만 절대 가벼운 책은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깊이가 더해지는 책이다. 내가 애정을 쏟아붓는 이유다.

옮긴이의 말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누구나 자기가 익숙한 세계만이 유일하게 현실적인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라고 말하고 있다.‘‘

플랫랜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 우린,
이렇게 길들여진 세상과 내가 길들인 사람들에 익숙하게 살고 있다.
나와 다른 세상의 인식 없는 삶,
‘가능성‘의 여부를 열어 놓지 않은채 내가 속한 세상이 전부라 믿는 착각 속에 빠진 삶이 얼마나 분별력 없는 삶인지 다시 생각하는 책이다.
현실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고정된 틀은 항상 깨지고 부서졌다. 차원을 넘는 기발한 아이디어, 발상의 전환을 가져다 준 용기있는 자들의 선택은 역사적으로 늘 세상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선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쓰여진 ‘플랫랜드‘를 접하게 된 시간은, 이 책의 주인공 ‘사각형‘이 여러 차원을 여행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진정한 나의 영원한 고전이다. 책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 예전에 적어 놓은 독서노트를 꺼집어 내고 다시 읽게 된 책이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조금더 다양한 관점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예전의 다짐은 아직까지도 부족하다.

‘어디든 항상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는 진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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