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뻔뻔하게 나서는 힘도 필요하다?

인지하지 못한 행동 앞에서 자신의 오류를
급 자각할 때가 생긴다.
운전을 하다보면 낯선 도로에서 종종 만나는
당황스런 상황 , 이 때 나는 문제 해결 능력의 잠재력을 최고치로 끌어 올려야 한다. 잠시라도 머뭇거림이 있을시 여지없이 날아 오는 것들이 있다.
클락션의 진동이 귀를 때리는 순간이 닥친다.
갈라져 나오는 가닥가닥의 소리는 온 몸으로 쏟아져 그대로 박힌다. 어느새 몸은 꼼짝달짝 못하는 거미줄에 묶인 먹잇감이 돼버린다.
아직도 낯선 곳에서의 운전은 예측불허인 시공간의 블랙홀로 빠져들게 한다. 그 소용돌이에 순간 휘말리면, 일명 멘붕상태로 정신줄을 놓치고 만다.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과 쉴 새 없이 뜀박질하는 가슴은 더더욱 부동자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번의 경험으로도 그 어떠한 경험치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기억이 오늘 소환된다.

커피 한 잔과 함께 평온한 나의 시간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 전지적 관찰자의 묘한 즐거움에 빠져 까페 창밖의 광경을 목격한다. 그런데 예전의 내 경험이 오버랩 되면서 안쓰러움에 쌓여 같이 발을 동동거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일방통행인지 모르고 들어선 하얀 아반테 차량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 중간지점에서 마주오는 차량과 맞딱뜨리는 순간에서 하얀 아반테 속 누군가는 자신을 의심한다. 착오가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이미 휘말리는 소용돌이 중심에 놓여진다.
하얀 아반테 주위를 빠르게 흐르는 시간의 흐름과
그 속에 앉아 식은땀을 품어 대고 있을 누군가의 처지는 동변상련이며 나의 경험치 더하기 측은지심이다. 생면부지 없는 누군가에게도 내 감정이 동요되는 순간이다. 10미터 눈 앞에 벌어진 누군가의 처지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한 때 나도‘ 라는 공감대가 발동한 것이다.
하얀 아반테는 이래저래 차를 돌린다. 그렇다고 들어선 길을 무작정 밀고 골목길을 나가는 뻔뻔스러움도 없다. 그냥 정지. 답이 없다.
알아서 피해가는 차량들, 개중에 창문 내리고 들려오는 언성, 가면서 거침없게 쏟아붓는 굉음의 차량들 뿐이다.
익숙치 않은 세상 한복판에 흔들리는 누군가가 길을 잃어 갈방질팡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저 ‘멈춤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서 누군가의 손길은 따뜻한 구원의 빛이다.
마침, 친절하게 방향을 지시하는 구원의 손길에서 빛나는 희망이 보인다. 구출된 하얀 차량은 그제서야 창문을 내린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연거푸 고마움을 연발한다.
지상 2층에서 나의 관망은 이제야 조아린 맘을 놓고 같이 한숨을 내쉰다. 별것 없는 공감이 뭣이라 웃음이 난다.

낯선도로에서 표지판을 잘못 보는 경우는 이제는 아주 가끔이나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설사 그러한 실수후에도 당차게 핸들을 돌리고 빠져나올 수 있는 뻔뻔함도 적당히 생겼다. 나의 잘못도 그저 실수라 말하는 변명도 당당하게 내 뱉는 담담함도 배웠다. 세상 초보에서 이제는 적당한 세파에 ‘무던한 견딤‘도 배웠다.
초보 인생이 마흔을 넘는 어느 순간부터 가파르게 언덕 길을 올라가고 있다. 인생 주기 한창인 나이다보니 정신없이 엑셀레이터 밟고 질주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브레이크도 밟아가며 속도 조절을 해야한다.
무한 질주보다 무서운게 없으니 말이다.
눈 앞에 보이는 그저 그런 광경이 오늘 브레이크를 걸어주었다. 일상이 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져다 주는 힘을 느끼는 순간이다.

의도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
그 시간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사춘기의 감성이 생기기도 하고 낯선 설렘이 폭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더 이상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지껏 내가 몰라서 갈 수 없었던 길이었다면 지금은 어슬프게 아는게 늘어나 갈 수 없는 두려움이 더 생겼다.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렇지만 달려야 한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취해서 있을 때가 있었다. 내가 몰랐던 예전의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 이제 어른이 된 것도 같았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금세 틀렸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부족함, 모자람을 깨달을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책을 같이 넘겨야 되고 때론 인터넷을 뒤져 세상의 정보를 모아 보기도 한다. 수많은 가지들이 한꺼번에 엉켜 때론 머리 속을 망치로 내리 치기도 한다. 뭐하고 있는지 모르는 현실의 자신에 대해 책망도 한다. 나의 둔함에 자책을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한없이 바닥으로 가라 앉기도 한다. 그러다가 악에 받혀 오기도 생긴다. 하루에도 참 많은 감정들을 소화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이러한 감정 소비로 시달릴 때면 어디로 도망칠 궁리를 찾고만 있다. 일상에서 던지는 문제보다 내 속에서 이는 알 수 없는 감정에 답을 찾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그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해졌다. 당연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났다. 일상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탄탄히 이어 나갈 관계의 끈을 만들기 위해 혼자 있는 나의 시간은 충전이다.

나의 충전 시간인 혼자만의 커피 타임,
<안나까레니나 >에 빠져있는 요즘 소환된 나의 초보 시간들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아준다.
근데, e북의 불편함에 몰입도가 떨어진다. 하지만
다시 읽는 <안나 까레니나> 예전과는 너무나 다르게 다가온다.
조만간 ‘안나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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