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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의 등
아키모토 야스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코끼리와 관련된 설화 혹은 가설 중에 '코끼리의 무덤' 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코끼리는 죽을 때가 다가오면 코끼리 무덤으로 가서 삶을 마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제로 코끼리 무덤을 본 사람은 없다.
즉 이 이야기는 사실인지 확인이 되지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제로 코끼리는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면 그것을 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연속에서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듯 하다.
그렇게 자신이 죽을 때를 알게 된 코끼리는 무리에서 나와 조용히 자신이 죽을 곳으로 떠난다.
그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코끼리는 그렇게 홀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야키모토 야스시의 소설 <코끼리의 등>은 어느날 갑자기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게 된 중년 남성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후지야마는 코끼리의 등처럼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품고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의 저자인 야키모토 야스시는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아키모토 야스시'로서
세상에 알려진 사람인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도 작사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흘러 넘친다.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된 남자, 그가 받게 되는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두 자식들의 마음이 정말 현실감있게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만약 나의 인생이 앞으로 6개월 후에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난 '내가 왜 죽어, 내가 어떻게 죽어'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것 같다.
사춘기 시절에는 죽음에 대해서 많이도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죽어야 할 이유보다는 죽을 수 없는 이유가 훨씬 더 많아졌다.
이 책의 주인공 후지야마 역시 죽을 수 없는 남자이다.
회사는 여전히 바쁘고 스무살인 대학생 아들과 아직 고등학생인 딸, 그리고 아내가 그에겐 있다.
하지만 후지야마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예전과 똑같이 생활하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의 선택은 올바른 것일까.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후지야마가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 판단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줄 뿐이다.
아들이라면 같은 남자로서, 너무도 잔혹한 이야기 상대로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 아들인 순스케에게 자신과 나머지 반년을 함께 하자고 말하고,
지금까지 몇 번이나 바람을 피웠고, 지금도 바람을 피우고 있는 여성인 에쓰코를 만나
폐암으로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이 남자 후지야마는 이기적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이기적이다.
이 책은 가족에게 헌신하고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다면 불현듯 죽음을 맞게 되는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전형적인 신파극으로 치닫는게 아니라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 후지야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가슴깊이 와닿았다.
훗날 난 후지야마씨처럼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왠지 후지야마씨가 부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