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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 <도피행>은 면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인물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데
탁월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는 나오키상 수상작가 시노다 세츠코의 장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시노다 세츠코의 책을 처음 보는 것이여서 이전 작품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번 책 <도피행>은 한 남자의 아내, 두 딸의 엄마라는 자리를 버리고
도피행을 선택한 한 여자 타에코의 이야기이다.
남들이 보기에 타에코는 연봉 2000만엔을 버는 유능한 남편과 아름다운 두 딸의 엄마인
화목한 가정의 주부로 보이지만 실상은 남편에겐 더이상 여자가 아니고
두 딸은 이젠 다 커서 혼자 컸는 줄로만 알고 딸들에게 무시만 당하는 외로운 여성이다.
더이상 여자도 엄마도 아닌 타에코는 이젠 밥이나하고 청소나 하는 가정부로만 느껴진다.
대학교 동아리에서 처음만나 연애결혼을 했지만 자궁근종 수술을 받아 자궁을 모두 적출한
타에코를 두고 남편은 집에 데려온 회사 부하들에게 "마누라는 이제 여자로서는 끝났으니까"
라는 말을 아무렇지않게 내뱉는 남자가 됐다.
그리고 2개월 전에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타에코는
남편이 나고야 교외에 있는 200평이나 되는 땅을 산 사실을 알게 된다.
타에코는 안면홍조와 갑작스런 발한 증상을 5, 6년 전부터 겪고 있었지만
딸들조차 갱년기장애라고 하면서 늘 그냥 넘어가버리고,
어두운 하굣길이 걱정되서 3년 내내 더우나 추우나 딸들을 마중을 나갔었는데
자식들은 이제 엄마는 주부라서 사회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고 무시만 한다.
타에코에게 가족은 더이상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집안에서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는 존재는 몇 년전부터 기르고 있는
골든 리트리버 '포포' 뿐이다.
그 포포가 타에코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자신을 괴롭히던 옆 집 아이가 담을 넘고 들어와
코앞에서 딱총을 터뜨리자 목을 물어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수많은 취재진들이 집주위로 몰려오고 언론과 주민들의 계속된 성토,
그리고 가족들조차 포포를 살인개로 취급하며 무서워하고,
보상금을 걱정하며 안락사시킬것을 권유하자
결국 타에코는 현금 2000만엔이 든 통장을 가지고 포포를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온다.
특별히 갈곳도 없지만 개를 데리고는 더욱더 마땅히 갈 곳이 없던 타에코는
우연히 트럭을 얻어타게 되고 여러 해프닝을 일으키며 남편과 경찰을 피해 도망을 치다가
결국엔 '오루기 마을' 이라는 귀농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아들 집에서 나와 혼자 텃밭을 일구며 살아가다 외롭게 돌아가신 한 할머니의
허름한 집을 임대하여 포포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할머니의 텃밭에서 우연히 콩을 캐게된 타에코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한
할머니의 그 삶의 의지에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지만 아내이자 엄마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자유를 선택한 타에코의 일상은 그 어느때보다 평화롭다.
애완용 개에서 어느 순간 살인개가 되어버린 포포도 그곳에서 개 본연의 야생성을 되찾아
쥐와 까마귀는 물론이고 결국엔 멧돼지까지 사냥하는 진정한 야생개가 되어간다.
타에코와 포포는 그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수 있을까.
어쩌면 그 어느때보다 활동적이고 생생한 생명의 활기가 넘쳐흐르는 포포의 모습과
모든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난 중년 여성 타에코의 모습에서
그 행복의 해답은 이미 나와있는지도 모른다.
포포의 살인 행동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안락사를 시켜야 하는지,
또 타에코의 도피행이 그릇된 행동인지 올바른 행동인지는
모두 다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p.s. 작가의 후기가 없어서 살짝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