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애무
에릭 포토리노 지음, 이상해 옮김 / 아르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없는가?

 

이런 의문에서 시작하는 책 <붉은 애무>는 185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얇은 용량(?)속에 무시무시한 내용을 숨기고 있다.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색다른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때는 성인 로맨스 소설쯤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프랑스 한림원의 ‘프랑수아 모리악’상과 프랑스 최고의 추리작가에게 수여되는 ‘장 클로드 이쪼’상(Prix Jean-Claude Izzo)을 동시에 수상한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독특한 소설이였다.

이 책의 제목 <붉은 애무>는 직역하면 ‘불의 애무’라는 뜻이기도 하고, 프랑스제 립스틱의 브랜드이기도 하며, ‘잔잔하게 불에 타 들어가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을 손에 잡자마자 그 자리에서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마침내 마지막장까지 다 읽었을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보고 있는 것처럼 약간은 허무하고 슬픈 감정들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돌아다녔다.

 

이 책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인 유능한 보험조사원 펠릭스는 사랑하는 아들 콜랭을 뺑소니 사고로 잃어버린 불쌍한 중년 아저씨이다. 어느날 그에게 오래된 고객 그룬바크씨가 전화를 걸어와서는 자신의 건물이 불에 타고 있다고 말한다. 그에게로 달려간 펠릭스는 그룬바크씨의 다 타버린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던 세입자 모자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커멓게 탄 아파트 안에서 잔이라는 여자와 예닐곱 살 정도 된 그녀의 아들이 찍혀있는 반쯤 타버린 사진을 발견한 펠릭스는 단번에 이 사건에 빠져들고 만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일에만 몰두하는 그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직장동료들의 권유로 휴가를 얻게 된 펠릭스는 집안에 머물면서 하루하루 아들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책 말미에 가서 아들을 죽인 뺑소니 차의 운전자가 밝혀지는 대목에 가서는 반전이 기가막히는 추리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콜랭의 어머니 마리와 펠릭스는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다. 우연히 고객과 보험회사 직원으로 만나 사랑을 나눴고 마리는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기 전부터 마리는 펠릭스에게 아이를 낳고는 떠날꺼라고 말했고, 그 말대로 마리는 펠릭스에게 아이를 주고 떠난다.

 

태어날때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한 펠릭스에게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만이 있었다.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모른다. 아버지의 사랑도 어머니의 사랑도, 아버지의 역활도 어머니의 역활도 모르는 펠릭스에게 콜랭은 공포 그자체 였다.

 

하지만 여자에게 모성애가 있듯이 남자에게 있는 부성애로 펠릭스는 콜랭을 끔찍이도 사랑한다. 그 사랑이 지나쳐서 적정수준, 즉 데드라인을 넘어버리기 시작하면서 그 끝도 없는 사랑의 끝에서 비극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어느날 갑자기 마리가 두남자의 눈앞에 나타나서 펠릭스가 가지고 있던 어머니의 역활을 가져가면서 그는 서서히 부서져간다.

콜랭에게 퍼부어 준 어머니의 사랑은 그가 가지지 못했던 어머니의 사랑이였을까.

 

아버지가 어떻게 사랑을 해주는지, 어떻게 아들을 이끌어주어야 하는지 펠릭스는 아무것도 몰랐다. 제대로 사랑을 하는 법도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는 펠릭스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의 붕괴된 가정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붕괴되어가는 가정이 낳은 비극적 운명을 떠안은 펠릭스.

그의 서투르지만 끝을 알 수 없었던 부성애 혹은 모성애가 가슴깊이 와닿아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펠릭스를 잡아줄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었다면.......

 

 

"아버지란 무엇이고, 어머니란 무엇인가,

아버지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가,

될 수 있다면 부드러운,

혹은 걷잡을 수 없는 광기에 빠져들지 않은 채 과연 어디까지.............."

                                                                                       - 저자 에릭 포토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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