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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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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10집 - Dreamizer
이승환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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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10月-12月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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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프 -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
쥘리앙 부이수 지음, 이선주 옮김 / 버티고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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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술사에서 인문학으로 트이는 가장 근사한 출구를 만든 책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휴머니스트 출판사, 2005)의 저자 최정은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아란 중력을 이기는 힘'이라고. 덧붙여 그는 물질의 하강에 역으로 작용하는 힘이 바로 '우아함'이라고 재차 밝혔다. 나는 감정을 나타내는 추상명사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설명이 그의 말이라고 믿는다. 

'우아'란 다시 말하자면 조건을 거스르는 힘이다. 그것은 제 운명과 시간에 복속하는 대다수의 존재들에게 허락된 미덕이 아니다. 그의 말은 또한 어떤 '결여'를 분명히 조명하고 있기도 하다. '우아'란 본질적으로 주어진 가치가 아닌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도달해야 하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아함'이란 과연 획득할 수 있는 가치, 누구에게나 가능한 삶의 '양식(style)'일 수 있는 것일까.  

쥘리앙 부이수는 소설 '펄프'를 통해 그것을 아주 경쾌하고 산뜻하게 증명한다. 그의 소설은 운명을 말하면서도 비극적이지 않고, 이탈을 말하면서도 '죽음'과 먼 거리를 취한다. 쥘리앙은
'작가'와 '삶'이라는 두 낱말 가운데 한 가지를 취하는 일이 나머지 한 가지를 어떻게 변모시키는지를 즐거운 사건과 담담한 문체를 통해 양각으로 드러내는 특별한 재능을 선보인다. 그의 이야기는
놀라운 결말에 이르기까지 책 속에서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러면서도 헐리웃 영화처럼
'강력한 반전'을 속여 허망을 배설시키지 않는다. <펄프>의 갈피갈피에는 '반전'이 아니면서도
내가 읽은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구성과 서사의 힘이 배어 있다. '生의 비루함'을 말하면서
도리어 '작가로서 산다는 일'을 새로이 톺아보게 만드는 탁월한 균형감, 그것이야말로 '우아'에 속할 것이다.  

소설은 A에서 시작해 A'나 B, C로 가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거슬러 오른다. 재기에 넘치는 문장과
일상을 다루면서도 일상적이지 않는 사건들을 잡아내는 작가의 시선은 이 소설의 정체를 감추는 데 일조하고 있다. 주인공의 길찾기는 미로에 선을 그어 출구를 찾아내는 영리한 행위처럼 보이지만 결국 출구 바깥에서 새로운 미로를 만들게 한다. <펄프>는 '운명의 복원''을 이야기하는 퍼즐게임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아니고, 폭염으로 1만5천여명의 노인이 사망했던 2003년 프랑스 거리에 대한 기록도 아니다. 저자는 '창작자', 즉 쓰는 자의 운명이 무엇으로 가장 잔혹해지는가를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 책은 작가든 감독이든 블로거든 모든 '만드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아픈 질문을 던지면서도
끊임없이 시치미뗀다. 책이란 '펄프', 즉 종이뭉치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창작물들에 대해 똑같이 부여된 운명이다. 종이뭉치를 벗어나 책으로 자리잡게 만들고자 하는 힘, 화학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을 빛과 연속의 영상으로 화하게 하는 작업,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에서 관계를 만드는 일에 대해 삶을 유지하면서도 무언가를 그려내는 일에서 어떤 점이 가장 고통스럽냐고 묻는다. 그리고 독자가 그에 답할 때, 그 대답이 운명에 대해 작용하는 부분이 전혀 다른 차원일 수 있다고 슬쩍 비꼬아 들이미는 것이다.  

쥘리앙 부이수는 올해로 겨우 서른 둘이지만 소설 속에서 저자는 그 숫자에 두 배에 값할만큼 만만찮은 공력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주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아무것도 회피하지 않고 진지한 고민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은 울림을 지닌다.  

출판사는 책에도 적지 않은 공력을 불어넣었다. 제목 '펄프'에 어울리도록 아주 드문 모조지를 사용해 책을 가볍게 만들었고, 표지는 김지혁의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받아 수채화 톤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밝게 찍어냈다. 부제로 '어느 청년의 유쾌한 추락 이야기'가 붙어 있지만 선입관을 가질 독자들에게는 안타깝게도 '투신자살'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니 안심하고 '주인공의 삶'을 즐겨도 될 것이다.  

작가는 지금 파리에서 이 소설의 후편을 쓰고 있다고 한다. 다음 소설에서 그는 또 운명을
어떻게 배반해 낼까. 나는 벌써부터 종이에 인쇄될 그의 문장이 기다려진다. 원제는 '비닐 봉지의 추락'인데, 출판사쪽이 제목을 더 잘 형상화해 냈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저자가 스물 여덟에 쓴 것이다. 작가의 운명이란 어쩌면 그저 '안간힘'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운명'을 배반하거나
또는 배반당하거나 하는 두 갈래뿐인 길 가운데서 어느 것을 선택해 그 일에 충실하는 뻔한 구도에서 벗어나, 지금 발딛고 있는 순간을 정지시키고 지평을 끊임없이 미분해 살펴보는 일, 부담스럽지 않은 '속도에의 저항'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강력히 추천한다. 운명의 가혹을 말하는 가장 우아한 형식, 다르게 말해서
쥘리앙 부이수의 소설 <펄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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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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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시대, 학살의 경제학

0. 소비의 시대

"우리들의 시대는 식료품을 위한 일상적인 지출도, 위신을 나타내기 위한 지출도
모두 '소비'라고 불리는 시대, 그것도 만인의 전폭적인 합의에 따라서 그렇게 불리는
최초의 시대이다"
- 쟝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중에서

한국의 정치적 경험과는 다르게 1980년대는 세계경제상 호황의 시대였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겪은 후 자본주의는 소련을 위시한 국가사회주의와 경쟁하면서 구성원들에게 그 자신의 가치를
생산과 복지로 각인시킨다. 미국의 자동차회사 포드의 생산방식을 딴 포드주의(Fordism)는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자본주의의 성장 모델이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특징되는 포드주의는 이를 위해 노동자들을 대거 공장에 투입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위해 점점 숙련된 노동을 필요로
한다. 그 숙련된 노동을 노동자들에게 감당케 하는 대신에 제시한 당근은 '높은 임금'이었다.
사회의 대다수가 표준화된 방식의 제조업 노동에 종사하게 되고, 그 종사자들이 생활에 필요한
보수 이외에 충분한 경제적 여유를 지니게 되면서 구매력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이같은 선순환이
복지기반의 확충과 문화적 지원으로 이어지면서 제 1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은 경제적 여유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 문화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국가사회주의권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한다. 제 1세계의 '복지국가 모델'을 전지구권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체제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제 3세계권이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수입, 적극적 교류를 통해 경제성장에
몰두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90년대 초반, 체제경쟁과 일당 독재 이후의 민주화에서 실패한 국가사회주의의 초강대국
소련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는 20세기의 가장 현실적인 국가 모델임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 1세계의 경제성장율은 조금씩 낮춰졌으나 아세안을 비롯한 신흥 자본주의 국가군들이
고성장을 이루면서 '자본주의 성장의 역사'를 계속 써 나갔고, 이 국가군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서도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둠으로서 후기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으로 '완전한 순환'을
만들어 가는 듯 했다. 제 1세계에서 '풍요의 시대'가 열린 것도 80년대 후반즈음부터이고,
한국을 비롯한 신흥 자본시장에서, 저학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공장노동자로 10년 정도 일하면
'집도 살 수 있고 차도 살 수 있는 중산층'으로 편입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이때부터
소비는 생산을 유도하는 '미덕', 만인이 인정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적 생활양식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자본이란 이윤을 남기기 위해 기능하는 것이고, 그 이윤은 제로섬의 원리에 바탕하고 있다.
제국주의 시대를 통과한 자본주의는 대륙과 지역을 망라하는 각종 무역체제를 동원해
'경제 식민지'를 창출하는 데 전력을 쏟는다. 시장이 다양화되면서 포드주의의 호시절도 끝난다.
도요타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포디즘(Post Fordism)'이 등장하고, 무한경쟁체제에 따라
자본과 자원이 집중을 통해 이윤의 집중과 부의 쏠림을 부채질하면서 구성원 대다수에게
'일정 이상의 경제적 수준'을 보장했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자본주의는 부를 특정 계층에게 더 많이 배분하고, 사치품(Lucury good, 한국에서는 '명품')에 대한 이미지와 향략적 소비를 영상매체의 발달에 발맞춰 선망의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서 사회적 경쟁을 다시 체계화시키고 경제적 평등의 중심추를 다시 오른쪽으로 밀어넣는다. '80대 20'의 사회가 펼쳐지고, 이는 점점 더 '95대 5'의
사회로 옮겨져간다. 부의 재분배가 막히고, 삶의 질이 '경제 성장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게 되고,
국가 내 착취, 기업간 착취, 노동자간 계급화가 발빠르게 자리잡으면서 '풍요의 사회'는 상당수 구성원의 착취를 볼모로 이루어진다. 90년대 이후, '세계화'란 이름으로 미국적 경제모델과 다국적 기업의 자본 집중이 강요되면서 축적된 풍요와 자원은 나누지 않고, 다만 '소비'의 눈높이만 공유하는 새로운 사회가 도래한다. 가진 자들에게는 '꿈', 그리고 못 가진 자들에게는 '지옥'같은
세계가.


1. 88만원 세대의 등장

"지금의 20대는 상위 5% 정도만이 한전과 삼성전자, 그리고 5급 사무관과 같은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인구의 800만을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세전 소득이다.
88만원에서 119만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될 것이다."
  - 우석훈, 박권일, <88만원 세대> 중에서

9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의 성장모델은 아세안 신흥 자본주의 국가군 가운데서도 아주
돋보이는 본보기였다. 한국은 세계 경제순위 10위권에 안착하면서 OECD에 편입되고,
민주화와 고성장, 저실업을 동시에 이루면서 일본 이후 아시아 국가의 선진국 진입의 청사진을
실증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한 IMF 관리체제가 들어오면서
한국경제모델의 장점은 반년만에 '절딴'난다. 더이상 평생직장을 보장하지 않게 되었고,
'성과급제'를 도입하면서 연공서열제도 무너진다. '노동의 유연화'가 이루어지면서
처음으로 '상시적 비정규직'이 대대적으로 등장한다. 신규 노동시장 가운데 아주 극소수만
대기업 신입사원, 공무원, 공기업 등에 선발되고 나머지는 모두 실업자와 비정규직 가운데
택일을 강요받는다.

대학만 졸업하면 밥벌이를 할 수 있던 시절은 온데간데 없고, 토익과 공모전, 사회봉사 경험 등과
같은 새로운 진입장벽이 출현하여 정규직으로 들어가는 문을 더욱 옥죈다. 20대들은 휴학과
대학원 진학, 어학연수 등을 통해 학업기간을 늘리고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힘쓰지만
사회는 더이상 예전처럼 고학력 졸업자들의 대다수를 '풍요를 나눌 동반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0대들의 성장과정은 한국경제의 고성장 시기였고, 그에 따라 '소비의 미덕'이 학습되어 있다.
휴대폰과 해외 수학여행 같은 물질적 기반 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떤 브랜드를 소비하느냐에
맡기는 '자발적 자본화'에 함몰된 세대가 지금의 20대들이다. 더구나 그들의 성장기는 정치적으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료되고, 그 이후 '실질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보수정당 사이의
지지부진한 헤게모니 다툼으로 '탈정치화'가 가속화된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제 1세계의 高 소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제 1세계가 70년대에
이룬 복지 기반을 보장받지 못했고, 정치적으로는 바로 전 세대인 386 세대가 불의에 항거하면서
획득했던 '저항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런 20대에게 제대로 된 노동시장은 급속히
좁아들면서, 소비의 유혹은 더욱 더 전면화되고 노골화되었다. 동시에 대학과 정당은 민주화의
1차적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잃었으며, 국가와 기업은 싸우고 설득시켜나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동일체'로 격상되어 졌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20대들의 대다수는 '88만원'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명품을 소비하고,
프랜차이징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며, 해외여행을 가야하는 것이 당연한, 소득에
기반하지 않은 '소비의 세대'로 자리매김된다. 그러면서도 어떤 정치적 저항도 하지 않는 세대,
노력한다고 해서 대다수가 안정된 직장을 가질 수 없는, 강요된 합의체제에 순응하는 세계사적으로 아주 독특한 세대가 된다.

2. 20대를 포위하라: 세대 착취론
 

우석훈의 이 책이 탁월한 것은 이같이 신세대들에게 한없이 가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과정이 어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밝히는 데 있다. 저자는 90년대 이후
극도로 좁아진 '좋은 직장'들이 단지 자본의 세계화와 국가적 체제개편에 의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세대간 착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것을 낱낱이 밝힌다.

6.25 이후 자신의 몫을 희생해가며 차세대 부의 기반을 축적하는 데 전 생애를 바친 냉전 세대와
독재의 유신 시절을 거치며 경제성장의 몫을 돌려받기 시작한 유신 세대, 고학력을 바탕으로
80년 광주의 경험을 공유하며 독재자를 끌어내린 386 세대들은 연령에 따라 한국경제의 늘어난
몫을 점점 더 많이 분배받았다. 경제적 자원뿐 아니라 정치적 자유를 획득했으며, 사회의 각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를 점유하면서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다시 말해
한국 경제가 고성장의 시대를 끝내고, '80대 20의 사회', '95대 5의 사회'로 재편될 때
새대간 경쟁은 특히 치열해지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20대를 인질로 삼아 자신들의
안정을 꾀하는 특징을 가진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OECD 국가들이 '자본의 세계화' 이후 20대를 어떻게 대하고, 20대가
어떻게 저항에 나서고 권리를 획득했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10대를 제외한 전 세대가
20대에게 노동의 권리를 주지 않고 삶의 질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권력과 자원을
사회적 합의로 재편하지 않는 사실상의 '경제적 학살'의 현 상황을 꼬집는다.

더군다나 이 현실이 더욱 슬픈 것은 '학살된 20대의 지갑'을 그들의 부모이며 조부모 세대인
유신 세대와 386 세대가 '개인적으로' 보조해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기업과 국가조직의 임원
또는 경영주, 지도자이면서 가장 많은 경제적 자신을 보유한 유신세대와 회사의 팀장이거나
국영조직의 4,5급 사무관으로서 실질적 권력을 지닌 386 세대들은 줄어든 '안정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20대들을 밀어내면서, 달리 말해 탈출구를 마련해주거나 새로운 사회체제에
관해 전혀 논의하지 않으면서도 한편 20대들이 단지 '이미지에 종속되어 있'고, '소비에 탐욕스런'
세대라고 비난하며 살벌해진 한국 사회 자본의 풍경을 '20대들이 못나 취업을 못하는 탓'으로
단순화해 버린다. 그리고 동시에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들의 긴 학업기간과 학업 이후에도
필요한 '취업 학습'에 돈을 쏟아부으며, 개인적인 부양을 힘겹게 받쳐나가는 괴이한 처지에
시달린다는 것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 우석훈과 박권일은 이 책에서 '전에 없는' 세대착취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논거의 정확성을
보충하기 위해 전통적인 거시경제학 뿐 아니라 진화경제학, 시스템경제학, 조직론, 정보경제학,
생태경제학 등 최신 경제학 이론과 사회학적 개념들을 풍부하게 원용하고 있다. 또한 저자
우석훈은 고전적 자본주의 비판이론에 기대선 좌파이론가가 아니라 UN에서 기술분과 의장을
역임하고 이한동 총리 시설 대한민국 정부에서 '범정부 대책'을 입안한 바 있으며, 기업과
시민사회에서 실물경제통으로서 다양한 이력을 쌓아온 사람이다. 즉,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실질적이고 화려한' 경력을 지닌 전문가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표지 맨 위에 실린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선동적 문구와는 달리
저서의 문장과 함의들은 지극히 공정하고 대단히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3. 88만원을 넘어서 


저자들은 지금의 20대에게 희망이란 '적립식 펀드'외에는 사실상 없다고 말한다. 말할 나위 없이,
최소한의 직업적 안정성과 경제적 사회보장을 마련하지 못한 세대에게 '적립식 펀드'가 대안이나
희망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0대들이 이룩해야 할 책무는 책의 표지에 쓰인 붉은 글씨처럼,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드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한국의 20대는 프랑스의 20대처럼
공공의 파업을 권리이자 현실로 학습한 세대도 아니며, 설령 그들이 투쟁에 나선다 하더라도
'세대간 대결'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그들이 싸워야 할 세대는 그들의 부모이거나
조부모이기도 하고, 그들은 싸움의 공정한 심판(정당한 언론권력과 합의적 시민사회 체제)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의 이같은 불행은 단지 20대로 끝나지 않는다. '승자독식', '5%의 정규직 사회'가
정상적인 체제가 아니고, 결국 불만과 불평등은 어떤 식으로든 폭발하기 마련이다. 치안은
불안해질 것이고 각종 병증이 만연될 것이다. 구매력은 떨어질 것이고, 불황은 장기화될 것이다.
결국 이같은 사회적 비용은 전(全) 세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잘라 말한다면 '20대 착취'는
결국 모든 세대의 문제가 된다. 20대만을 희생시키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유신 세대와 386 세대의
행복한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이상 경제시스템은 그같은 예전의 영광을 반복해
주지 않는다.

저자는 말한다. '먼저 젊은이들이 처한 (가혹한)사회적 조건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열악하다는 점을 인정"해 주는 것이 먼저이며, 타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실례를 교훈삼아 '세대간 합의'에 나서야'
한다고. 물론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단지 세대간 합의만은 아닐 것이다.
부와 이윤의 사회적 재분배를 논의하는 새롭고 공정한 틀을 만드는 것, 그것이 레디앙 출판사의
다음 책이 되리라.

'88만원'은 이미 노동자 절반을 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고, 젊은 세대의 피할 수 없는 미래다.
20대를 '소비와 이미지의 포로'라고 욕만 할 게 아니라, 비열한 승자독식이란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모색에 모든 세대가 나서야 한다. '비정규직'의 구덩이를 탈출할 수 없는
20대들에게 '능력을 키워 좁은 문을 통과하라'고 불가능한 주장을 설파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이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다른 OECD 국가들처럼 공적,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내 눈에도 20대들은 'TV'와 '연예인'에 중독된 세대이고, 거대담론의 시대를 벗어나면서
'미시 담론'에도 집중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스캔들에나 몰두하면서, 자신을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과 동일시하고, 대학등록금 인상조차 저지할 수 없는 무기력한 아이들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우리가 낳은 세대이기도 하다. 더딘 실질적 민주화는 90년대 이후
자본의 생활화를 빚었고, 20대는 경제적 이전투구 속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가지지 못한 채
소외되었다. 그들을 좀 더 따뜻하게 보듬고,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에 대해 좀 더 치밀하게 토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대통령 후보들이 설파하는 '경제성장률 7% 제고'의
낡은 성장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프레임, 합의의 준거틀을 마련해 주었다.

가난은 생존을 위협하는 조건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접적인 '살인의 환경'이 된다.
세계적 자본주의의 흐름 가운데서도 극히 예외적인 '한국의 세대착취'에 관해, 그리고
'20대의 예정된 절망'에 대해 우리들은 이제 세대를 넘어 공론화를 논의할 때가 되었다.
대선을 한달 여 앞두고 있는 이 정치의 계절에, 누가 대통령 후보로 가장 적합한가 하는
'실질적 논의'를 위해서도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88만원 세대를 위해, 그리고 88만원 세대를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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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절망선생 1
쿠메타 코지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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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한때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젖은 눈으로 돌아보면 세상은 슬픔으로 자욱하고, 외로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 침묵처럼 빼곡히 배어있다. 통증은 매 시간과 모든 공간 위로 햇볕마냥 퍼지는데 비명과 통곡은 어느 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노래처럼 울린다. 태초 이래, 세계는 전부 그러했다.

생각해보면 이처럼 우울한 세계에서 살아있는 것들의 종말로 죽음처럼 어울리는 것도 없다. 有에서 시작해 無로 사라지는 것. 길고 긴 고통의 한살이를 터벅터벅 걷다 대지 위에 눕고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것. 장엄할 것도 비참할 것도 없다. 그것이 생명에 주어진 동일한 귀결이다.

비관의 안경을 통해 바라보면 우리는 너나없이 상복을 입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공허한 세계에서 만화 <안녕, 절망선생>은 질세라 한술 더 뜨며 독자를 현혹한다. 살아봐야 모든 것이 참혹에 지나지 않는 세상, 목표는 '자살'인 것이다. 목을 매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고, 어떤 희망적인 조짐을 만나더라도 이를 한번에 비틀어 삶과 세계를 비하한다. 저승행 가방을 만들고 그 안에 밧줄, 약물, 연탄 등 자살에 필요한 완벽한 장비를 갖추려 한다.

제 손으로 죽는 것이 목표인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이상한 만화 <안녕, 절망선생>은 어두운가? 그렇지 않다. 그는 매회 전편의 인물과 대비되는 새로운 등장인물을 끌어들여 분위기를 일신하고, 온갖 통계와 예시를 제시하며 일본의 비관성을 설파하면서도 그 한결 같은 비틀림이 유머러스하고 쾌활하다. 말 끝마다 ‘절망했다’고 외치지만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법이 없고 논리적인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가르치는 학생과 주변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실존하는 일본 군상들에 관한 강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 같은 와중에서 늘 절망하는 주인공 캐릭터는 결국, 역사와 현대에 대해 끈질기고 암팡진 비판을 쏟아내는 일본 지식인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 절망선생>은 ‘절망’을 주조음으로 깔고 있으면서도 BGM은 확실히 즐겁고 상쾌하다. 스타카토처럼 톡톡 불거지는 농담과 극적인 상황을 한번 더 뒤집어 아이러니로 바꾸어내는 작가의 기민한 재치는 페이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정서적으로 굉장히 암담한 시기였다. 공감을 얻고자 책장을 펼친 이 만화에서 내가 만난 것은 오히려 살아갈만한 위안, 독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색다른 힘이었다. 극단과 극단이 만나는 날카로운 갈등 상황 속에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이야기를 갈무리하는 작가의 필력은 경의로울 정도다.

주인공이 말했듯 인생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민폐"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살 수 밖에 없고, 제 동료뿐 아니라 자연을 착취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마저도 빠르게 망가뜨리고 있다. 살아간다는 건 어떻게 본다면 인간 존재 그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들에게 절망을 주는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일은, 결국은 싸우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자신이 처한 조건과 싸우고, 나쁜 날씨를 견디고,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고 행복한 현재를 일구며 공감을 얻어가는 일이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나아지게 만드는 일이다. 눈물을 줄이고, 웃음을 퍼뜨려가는 여행이다.

<안녕, 절망선생>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아무도 죽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지만 강요하지 않고 논쟁한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화들은 이 세계의 근간에 대한 치열한 질문인 동시에 자신의 존재 증명이기도 하다. 질문과 대답과 반응 속에서 그들은 혼란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흔들림은 변화의 속성이며, 변화란 진화의 핵심이다. 모든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우리의 인생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최소한 절망으로 점칠되어 있지 않고 살 만 하다.

만화 <안녕, 절망선생>은 수만가지 자살의 이유를 대면서도 끝내 살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만화가 이처럼 밝고 유쾌할 수 있을까.

모르겠으면 고민하자. 슬프면 눈물을 흘리자. 힘들면 괴로워하자. 무서우면 눈을 감자. 아프면 엉엉 울자. 그리고 살자. 바로 ‘절망선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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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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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이름난 명저,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실제로는 옥수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인간은 결국 옥수수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경제적, 국가적, 정치적 먹이사슬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는 데 있다. 

이 책 '와인 정치학'은 말하자면 '잡식동물의 딜레마 : 와인편' 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포도주라는 한 음식에 신경을 집중하여 포도주가 재배되고, 걸러지고, 선택되고, 우리 앞의 술잔에 따라질 때까지 자연스럽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관여한다고 말한다.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이상한 시대, 신기하지 그지없는 세계를 살고 있다. 인구의 90%가 먹거리를 재배하지 않는 데도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구는 가이아로서 동물과 식물, 박테리아를 비롯한 전 생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균형과 생존을 위해 대기와 해류가 변동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한 종의 비대한 발달은 그 유기성을 깨뜨리고 자연을 최대한 착취하면서 지구의 앞날을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먹거리를 재배하는 일, 즉 농사가 농업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젠 산업이 되었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먹고, 주변과 나누고 바꾸고 순환적인 방식을 쌓아가는 일에서, 이젠 경제성이 높은 특정한 종류의 식물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심고 키우면서 그것을 위해 순환적이지 않는 방식을 대규모로 동원한다. 화폐가치로는 명백한 경제성을 가지지만 본래 가치, 자연적 가치, 유기적 가치로는 최악의 선택을 일삼으면서 농업은 대규모 자본의 손에 좌우되고 있고, 먹거리의 안전은 우리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광우병 발생과 한미 FTA 체결 논란은 그 수많은 실예 중에 하나일 뿐이다.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중산층의 음료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와인은 전 지구적 경쟁에 편입되어 국가의 힘과 산업적 선택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다.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특정한 와인을 마시는 일은 어떤 정치적 힘이 작용한 결과를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자본은, 소고기와 유전자 조작 옥수수뿐만 아니라 포도주에도 더러운 손때를 묻히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와인 정치학"을 읽는 것은 일견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와인소비자로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선명하게 가르쳐 주었다는 점에서 깊이있는 독서가 되었다. 딱딱한 제목이지만 책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와인애호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 알의 포도씨가 와인이 될 때까지 거기 관여하는 엄청난 과정은 과연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맛인가, 안전인가, 이윤인가, 권력인가. 이 책은 와인에 드리운 검은 장막의 실체를 또렷하게 응시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상은 사실들의 총체이다. 더 즐거운 식탁을 위해, 안전하고 질좋은 먹거리를 위해, 그리고 이유도 모르고 희생될 운명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엇보다 맘 편히 와인을 마시고 싶은 우리 모두를 위해 "와인 정치학"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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