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정치학 - 와인 라벨 이면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 '최고급'와인은 누가 무엇으로 결정하는가
타일러 콜만 지음, 김종돈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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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폴란의 이름난 명저,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실제로는 옥수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인간은 결국 옥수수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흥미로운 주장을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경제적, 국가적, 정치적 먹이사슬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증명하고 있는 데 있다. 

이 책 '와인 정치학'은 말하자면 '잡식동물의 딜레마 : 와인편' 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포도주라는 한 음식에 신경을 집중하여 포도주가 재배되고, 걸러지고, 선택되고, 우리 앞의 술잔에 따라질 때까지 자연스럽지 않은 수많은 것들이 관여한다고 말한다. 앞의 책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이상한 시대, 신기하지 그지없는 세계를 살고 있다. 인구의 90%가 먹거리를 재배하지 않는 데도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구는 가이아로서 동물과 식물, 박테리아를 비롯한 전 생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균형과 생존을 위해 대기와 해류가 변동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한 종의 비대한 발달은 그 유기성을 깨뜨리고 자연을 최대한 착취하면서 지구의 앞날을 지속가능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먹거리를 재배하는 일, 즉 농사가 농업이 되고 그것도 모자라 이젠 산업이 되었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먹고, 주변과 나누고 바꾸고 순환적인 방식을 쌓아가는 일에서, 이젠 경제성이 높은 특정한 종류의 식물이나 동물을 대량으로 심고 키우면서 그것을 위해 순환적이지 않는 방식을 대규모로 동원한다. 화폐가치로는 명백한 경제성을 가지지만 본래 가치, 자연적 가치, 유기적 가치로는 최악의 선택을 일삼으면서 농업은 대규모 자본의 손에 좌우되고 있고, 먹거리의 안전은 우리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광우병 발생과 한미 FTA 체결 논란은 그 수많은 실예 중에 하나일 뿐이다. 

고급스럽고 우아하며, 중산층의 음료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와인은 전 지구적 경쟁에 편입되어 국가의 힘과 산업적 선택에 따라 운명이 엇갈린다.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우리가 특정한 와인을 마시는 일은 어떤 정치적 힘이 작용한 결과를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자본은, 소고기와 유전자 조작 옥수수뿐만 아니라 포도주에도 더러운 손때를 묻히고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와인 정치학"을 읽는 것은 일견 불편한 경험이었지만, 와인소비자로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선명하게 가르쳐 주었다는 점에서 깊이있는 독서가 되었다. 딱딱한 제목이지만 책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힌다. 와인애호가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 알의 포도씨가 와인이 될 때까지 거기 관여하는 엄청난 과정은 과연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맛인가, 안전인가, 이윤인가, 권력인가. 이 책은 와인에 드리운 검은 장막의 실체를 또렷하게 응시한다. 진실을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세상은 사실들의 총체이다. 더 즐거운 식탁을 위해, 안전하고 질좋은 먹거리를 위해, 그리고 이유도 모르고 희생될 운명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엇보다 맘 편히 와인을 마시고 싶은 우리 모두를 위해 "와인 정치학"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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