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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뒷마당의 제국 - 자급자족에 도전하는 뉴요커의 리얼 생태 서바이벌
매니 하워드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농사는 지금, 하나의 취향이거나 고급한 도락이다. 축복처럼 보였던 산업화가 당도한 뒤, 식탁을 점령한 것이 값싸고 풍성한 먹거리뿐만 아니라 아토피와 광우병, 슈퍼박테리아의 음울한 그림자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디어는 건강과 환경을 동시에 위무한답시고 몇 개의 낱말을 신탁처럼 흩날렸다. 웰빙, 로하스, 로커보어... '착한 소비'로 요약될 수 있는 그 신조어들은 도시 중산층의 감성과 윤리를 감싸안으며 널리 유행처럼 번졌다. 그렇지만 소비는 소비일뿐,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버리고 휘발유와 탄소발자국을 덕지덕지 묻힌 채 '잘 썼다'고 혼자 가슴을 주무르며 안도하는 일이 제대로 된 해결책일 수는 없었다. 자본과 산업이 장악한 생산과 유통망에 작은 우회로를 만드는 일도 필요할 것이지만 그 이상, 아예 처음부터 다른 생산과 유통, 소비가 아닌 생활을 꿈꿀 수는 없을까? 돈벌이로서가 아니라 자급과 공존을 위해 농업을 재발견하고 그에 맞춰 삶을 재편하는 일,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하며 99%를 고용하고, 1%에게만 이윤을 몰아주는 폭주적 산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로, 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생명과 지구까지 아우르며, 부유하게 살기 보다 소박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농업, '오래된 미래'로서의 농업은 다시 살아나는 중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에 거주할 수 밖에 없는 이들도 '도시 농업'이라는 각개전투로 여기에 동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새로운 경향이 다수에게 환영받는 것은 아닌데, 기득권을 가진 기업뿐 아니라 사실상 기업과 결탁한 정부와 토건화된 지방자치권력, 변화를 바라지 않는 적지 않은 개인들도 이를 반대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에서 살펴보면, 조명받는 농업은 그저 주말농장이거나 산업화 유기농이 거의 전부다. 눈여겨 보지 않는다면, 우리가 미디어에서 살필 수 있는 농사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 천편일률적으로 하나의 취향이거나 고급한 도락일 뿐이다.
도시인으로 살다가 거슬러 다시 농업으로 돌아간 이들, '개혁'보다는 '변혁'을 생활방식으로 선택한 이들의 책을 최근에 주로 읽었다. 웬델 베리의 <생활의 조건>, 바바라 킹솔버 스티븐의 <자연과 함께 한 1년>, 노벨라 카펜터의 <내 농장은 28번가에 있다> 등등. 대체로 그 책들은 난생 처음 농사를 직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공포로 시작해, 농부가 되면서 피부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 결과적으로 삶을 바꿔서 얻은 놀라운 행복에 대한 예찬으로 끝난다. 그러니까, 대개 이 부류의 책들은 '해피 엔딩'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책들을 읽는 일은 재미와 함께 안도감을 주었다. 몇 년간의 준비 계획을 세우고 차근히 도시 탈출의 꿈을 꾸고 있는 나로서는 앞서 시도해 본 자들이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으며 그 과정 역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는 점이 초심자의 불안을 위로해 주는 데가 있었다. 길을 떠나기 앞서, 선행자들이 하나같이 놀라운 경험을 했으며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격려인가.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당에, 매니 하워드의 <내 뒷마당의 제국>을 골랐다. 마찬가지의 결과를 기대하면서.
저자는 음식 평론가로 여러 유명한 신문과 잡지에다 음식과 요리사에 대한 수많은 글을 써 왔다. 중간에 그는 방향을 틀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게 되는데, 거기서 겪은 이야기들을 다큐로 만들어 제작하려고 몇 년 간 혼신을 쏟아붓던 차에 <뉴욕매거진>으로부터 프로젝트를 의뢰받는다. 집에서 도시농업을 시작하고 거기서 나온 음식으로만 먹고 살며 그 경과를 철저히 기록하라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비용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이 지원하겠다는 것(원고료도 별도로 챙겨주고!).
그리하여 매니의 여행은 갑작스레 시작된다. 집의 뒷마당을 갈아엎고, 흙을 새로 깔며 토끼를 키우고, 닭을 키우고, 오리를 키우고, 온갖 작물을 기른다. 한번도 농부를 꿈꿔 본 적 없고 자의로 이 일에 뛰어들지도 않은 그는, 완전 '쌩 초보'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을 겪으며 농장과 가족과 생활을 그야말로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영위해 나간다. 계획은 끊임없이 수포로 돌아가고 가축은 페사하고, 채소는 시들거린다.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비슷한 부류의 책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읽고 있자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매니의 기록은 철저한 실패담이다.
<내 뒷마당의 제국>의 미덕은 바로 그 점에서 나온다. 준비되지 않은 농사란, 참혹한 패배의 연속이라는 점을 미화하거나 은폐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철학이 없이 밀어붙이는 일의 마지막에는 그저 황량함이 자리할 뿐이라는 것. 저자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지독할 정도로 성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이 책은 앞서의 책들과 같은 부류의, 그러나 전혀 다른 과정과 결과를 담고 있지만 동일하게 공유하는 부분도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농장일을 벌이게 되면서, 결국 그가 느낀 것은 본인이 기르고 재배하는 동식물과의 교감이며 동질감이라는 것을. 토네이도가 마을을 휩쓸어버리고 나서도 그는 쓰러지고 짓눌린 멜론나무를 포기할 수 없으며, 불안한 환경 가운데 낳는 즉시 새끼를 죽여버리는 어미토끼의 해산 과정에 눈을 피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곁을 지킨다. 거듭된 농장의 실패로 인해 안온했던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이르러서도 그는 농장을 버리지 못한다. 농사란 이렇게 관계맺는 일, 나와 토마토와 달걀과 토끼와 흙과 날씨가 결국 하나라는 것을 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일일 것이다. 어설픈 준비와 전치된 욕망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맺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 임시 농부가 깨닫는 바가 전업 농부로 성공한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내 뒷마당의 제국>은 과장이나 미사여구 없이 진정으로 우리가 농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점을 가장 신랄하게 일깨워주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부분, 저자가 덧붙인 에필로그는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는 결국 뒷마당을 다시 갈아엎고 도시농부로 계속 살기를 포기한다. <뉴욕 매거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그의 프로젝트도 끝나고 만 것이다. 매니 하워드와 <뉴욕 매거진>에 있어 농사란, 하나의 취향이거나 고급한 도락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매니 하워드는 그저 잠시 경로에 끼어든 여행자, 개종할 뜻이 없이 '180일간 무료 체험'을 자원한 소비자에 불과했던 것이니까. 농업 역시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이윤을 내는 사업이며, 그러기 위해서 단일재배, 유전자조작,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항공 방제, 석유를 필요로 하는 착취산업이고 투기와 낭비가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향락 산업으로 치부되는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농부로 다시 살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을 바꾸는 게 아니라 생활의 변환이 필요한 법이므로.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는 독자라면, 이 책은 반면교사로 삼고, 저자 매니 하워드도 끊임없이 되풀이 읽는 웬델 베리의 책들을 정본으로 삼는 편이 좋겠다.
책 표지에 실린 사진은 풍요롭기 그지없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에서(아마도 뉴욕매거진에 실렸던 연출 사진이었을 듯 하다) 이 책은 저자가 욕망했던 지점과 도달했던 지점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걸 암시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농사를 지으려 하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단단한 결의와 세밀한 위기관리책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좀 더 매섭게 자문하게 됐다. 나 역시 도시인으로서, 농사를 아주 추상적으로, 낭만적으로 구상하는 단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취향이거나 고급한 도락을 넘어, 그것을 내 삶으로, 유일한 삶으로, 지고의 삶으로 수락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떤 프로젝트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수행해 나갈 것인가? 책과 컴퓨터를 넘어, 마트와 술집을 넘어, 생협과 로코보어를 넘어, 남들의 우려와 내 희망을 넘어.
내 앞에 놓여진 뭇생명의 유일한 순환제국에 참전하는 일, 삶으로서의 농업을 다시금 바라본다.
결심하고자, 받아들이고자, 사랑하고자, 다시. 또 한 번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