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기병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29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 지음, 권미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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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기병은 스페인의 역사 소설이자 작가의 투영인 주인공 마누엘의 개인사, 가족사의 결합이다.

스페인은 역사적으로 1975년 프랑코의 죽음 이후 독재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어느 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그것은 곧 예술에도 그대로 녹아난다. 하지만 스페인 국민들에게 주어진 민주주의는 그 이름조차 부끄러운 수준이 되어버리고 쿠바 전쟁을 계기로 1492년부터 대제국을 이루고 있던 스페인은 1898년에 유럽의 약소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스페인 국민들에게 치욕스러운, 잊기힘든, 그래서 이렇게 소설로 숱하게 회자되는 상처를 주었다. 이러한 스페인의 과거는 우리에게도 있음을 잘 알것이다. 그러기에 주인공 마누엘이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상상하기 힘든 것이 아니다.


사춘기 시절 한때 스치고 지났던 나디아를 다시 만나면서, 그녀의 아파트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유품 (폴란드 기병 - 그림)을 보면서 마누엘은 자신이 도망쳤던 스페인과 독재 정권 시절을 회상한다. 그래서 이야기의 대부분은 과거의 회상이다. 마누엘이 선망했던 이가 나디아의 아버지였음을 모른채로 나디아와 만나며 자아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아~ 이 책은 어렵다. 스페인이란 나라가 낯설기도 하거니와 담담한 문체, 넘치게 풍부한 작가의 묘사기법은 가속을 내기 어렵게했다.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씁쓸한 기분으로 마누엘을 연민하게 되는 것은 스페인의 그같은 역사가 사실이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도 정말 매끄럽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등학교 이후엔 거의 소설을 통해 접해 문학의 힘을 잘 알지만 뭇 사람들은 우리의 아픈 과거를 싼 값에 팔아먹는다고 어떤 한 작가를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것을 이 작가에게도 똑같이 씌울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한 세대를 넘어 한 가족의 가족사와 역사가 치밀하게 얽혀있어 좀 어렵기는 했지만 작가의 어조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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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김정현 지음 / 역사와사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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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다. 나의 마음과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어 그를 혹은 그들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깊게는 해보지 못한 듯 하다. 전염이라는 것. 내 슬픔과 눈물만이 그런 줄 알았었다. 그래서 애써 그것들을 감추려 한 적이 많았었는데....이제는 마음 편하게 눈물보다 훨씬 행복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게하는 따뜻한 책이다.

가난한 시절. 부유했던 인하, 거기에 뒤쳐진 수혁, 소탈한 대식. 출가한 효명스님. 그들이 성장하여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부유했지만 어머니의 소담스런 인성교육으로 더 가질 것에 욕심내지않고 비상한 머리로 아이없이 아내와 해외생활을 하던 인하는 돌연 아내의 가출로 한국땅을 다시 밟는다. 아내는 소위 정신적인 바람끝에 자신과도 타협할 수 없어 가출을 한 것인데...그런 짐작은 하지만 아내의 탓보다 홀로 떠도는 아내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남편 인하. 많은 것을 비뚤어지게 보는 수혁. 의리파 대식. 수혁의 자살 기도로 이야기는 급격히 부드러워진다.

인하와 그의 아내 가경의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묘사가 뭉클하게 다가왔다. 나도 살을 부대끼는 남편이 있지만...남편은 어제 11시 반에 퇴근해와서 서재에서 책 읽고 있던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않고 영어화상챗을 하러 컴퓨터방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피곤했고 손도 씻을 시간이 없어 곧바로 작은 방으로 향한 건 알지만...그는 모르는 것 같았다. 여자는 아주 작은 손짓, 눈짓으로도 당신의 많은 것을 용서하고 품어준다는 것을....우리에게 두 딸이 없었어도 그는 담양에서 나를 택했을까...라는 생각이 요즘 자주든다. (이런 자잘한 감정을 리뷰에 쓸려고 했던 건 아닌데...그래도 책을 읽은 뒤 뭉클해져오는 느낌들이니 그냥 두기로한다..)

우정.
작가는 이 책에서 사랑보다 우정을 전하고 싶어한다.
때로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계산적이 되기도하지만 친구 모두는 36.5도의 우정을 가진 친구라는 것을....

오전에 잠깐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한 토막 읽은 구절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은 너를 비난하고 어떤 사람은 너를 칭찬한다. 너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너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멀리할지어다 -탈무드-

나의 남은 생에서 진정한 친구와 우정을 깊게 나눌 벗을 더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그래야지 사랑이 배반할 때 기댈 곳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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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을유세계문학전집 32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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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같은 누군가를 알고 있다. 처음엔 싫었는데 이 책의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과 비례하여 그 누군가도 가련해진다. 정말 꼭 그렇게 살아야겠어? 하지만 나도 엄마가 되었다. 내 혈육을 양육하는 부모인 것이다. 부모라면 그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고리오 영감이 있을 것이다.

고리오 영감은 수완이 좋은 제면업자로 일찍 아내를 잃고 두 딸을 키웠다. 그의 두 딸은 곧 그의 인생이며, 그의 심장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재물의 많은 부분을 지참금으로 챙겨 시집보내자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사위탓이라고 하지만 정작 딸들도 자식들 외에는 모든 것에 인색한 아버지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러면서도 아쉬울때는 언제나 남편보다는 아버지를 찾는 그녀들. 결국 고리오 영감은 하숙집에서도 제일 싼 방에 기거하게되고 찾아오지 않은 딸들을 남겨둔 채 죽음을 맞이한다.

'나는 '참 아름다운 여자구나!'라는 속삭임을 내 주위에서 듣게 되죠. 그런 말은 내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 애들은 내 핏줄이 아니던가요? 나는 딸들을 태우고 가는 말들을 사랑하며, 나는 그 애들 무릎 위에 있는 강아지가 되고 싶다오. 나는 딸들의 즐거움으로 살아가고 있소. 각자 자신의 사랑하는 방식이 있는 법이죠. 나의 방식은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이 많은지 모르겠소.' ----- page 171

하지만 그는 임종을 앞두고

'아! 내가 부자라면, 내가 내 재산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재산을 그 애들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그 애들은 여기 와서, 키스로 내 두 뺨을 핥을 텐데!..' ----- page 376


이것은 고리오 영감에 대한 줄거리이지만 이 책에서는 고리오 영감과 더불어 주목해야 할 인물이 몇 명 더 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자라 파리로 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어머니와 누이를 등쳐먹는 대학생 라스티냐크. 그리고 보트랭. 이들은 모두 보케르 부인의 하숙을 하고 있다.

고리오 영감과 더불어 이들은 어긋난 출세욕, 당시 프랑스 하층민의 삶. 물질 만능의 병리적 현대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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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의 기적 - 한 신경과학자가 안내하는 3D세계로의 특별한 여행
수전 배리 지음, 김미선 옮김 / 초록물고기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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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주말. 큰 아이와 함께 코엑스에서 열리는 캐릭터 박람회에 갔었다. 그 곳에서 특정 안경을 쓰고 3D TV를 보면 평면인 화면에서 입체적 화면을 볼 수 있다. 배경 속에 각종 캐릭터들이 툭! 튀어나와 Tv를 활보하는 것이였다. 그 경험은 평상시 같으면 별 반응없이 지나쳤을 것인데 이 책을 읽고 있는 중이여서 아~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작가는 유아기부터 사시였고 마흔 여덟의 삶동안 우리가 늘상 보고있는 TV의 평면을 일상생활에서 보아왔다. 그녀에겐 '공간'이 없었고 '입체'가 없었던 것이다. 앞의 물건에 의해 뒤 사물이 가려지거나 더 작게 보이는 것을 통해 '멀리'있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공간은 느끼거나 볼 수 없는 눈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책 속에 나오듯이 그녀는 시력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부단히 했다.) 뭔가 툭! 튀어나오는 입체시를 찾게 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흥미롭게 담겨있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손상된 시각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는 기존 학설을 뒤집고 그녀의 눈이 놀랍게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맞보고 있노라면 일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고, 정말 작은 것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신경과학자로서의 삶이 자신의 입장과 놀랍도록 어우러지면서 이 책이 단순히 감상용의 책.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나와 가깝게 사시로 살고 있는 분이 계신다. 궁핍한 세월 속에 그것을 교정하리라 엄두도 못낸 그 시절을 지나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사시로 살고 계신다. 지금까지는 얼마나 불편하실까..그런 생각 정도에만 머물렀는데 그 분이 보는 세상이 우리가 보는 세상과 다를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2차원과 3차원) 안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수전 배리는 참 축복받은 삶인 것 같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입체시 없이 세상을 바라보았지만 뒤늦게 받은 고귀한 선물을 마음껏 누리고 참다운 행복을 만끽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 역시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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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외사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28
오경재 지음, 홍상훈 외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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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에 어느 작가의 강연회에 가서 그 작가가 중국문학과 일본문학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중국문학의 거대한 뻥은 읽으면 기가 차지만 너무 자연스러워 당연한 이치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인데 나도 중국소설을 읽을 때면 느끼고는 한다. 현대문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그런 듯하다.

이 책. 유림외사는 그런 뻥을 능수능란하게 행하는 온갖 인물 군상들의 열전이다. 옮긴이의 말대로 찬찬히 관람하면 허탈한 웃음도 나오고 와평에 언급된대로 지루할 틈이 없다. (나는 좀 지루했다..) 작품에 나오는 많은 청대의 지식인들은 사회의 '잉여인간'들이다. 어느 시대를 완벽한 시대라 할 수 있겠냐만은...여기에서도 뒤틀린 청대 지식인 사회 속에서 어리석고 쓸쓸하게 삶을 마감하곤한다. 55회에 걸쳐 등장하는 지식인은 과거 급제를 인생 최고의 진리로 신봉하는 이들과 가짜 명사. 그리고 이들은 유희를 통해 명성을 추구하며 타락한 사회에 기생하기도 한다. 55편의 열전은 이어지는 이야기인 듯 하면서도 독립적이다.

제1회에는 유림외사를 아우르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귀공명. 이 네 글자는 이 글 전체의 착안점이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밝혀 놓았으되, .. 중략.. 이후로 펼쳐지는 온갖 변화들은 모두 이 네 글자로부터 변형되어 나타난 지옥의 형상들이니....'
이 문장으로 지은이 오경재가 어떤 것을 목적으로 혹은 심정으로 유림외사를 저작하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당대 지식인으로서 오경재는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이 작품에서 토로했다. 하지만 풍자소설로서 긴 내용이나 그만큼은 지루하지 않고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설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중간 가족여행 중에 남원의 광한루에 들렀었다. 아~~ 온통 비릿한 냄새로 감싸는 수 백여 마리의 잉어들이 차지하고 있던 연목과 수목에 둘러싸인 광한루의 단단한 마루에서 하루에 반 나절씩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당장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풍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즐길지도 모르는 소인배이지만...그런 사치스러운 독서시간에 대한 탐욕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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