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이 (백색인), 신들의 아이 (황색인)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춘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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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문학'이라는 일련의 작가 특유의 고집이랄까..작가인 그에게 어쩌면 이렇게도 철저하게 이분법적 사고가(백색인, 황색인) 뿌리내렸을까..의문이 들었다. 역자의 설명으로 그 배경은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유년 시절에 받은 세례와 대학 졸업 후 떠난 프랑스에서의 유학체험)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백색인, 신의 아이. 황색인, 신들의 아이는 각각 6개월의 시간차를 두고 발표한 종교적 소설이다. 독자가 가톨릭교나 개신교 신자라면 읽는데 버거움이 느껴 질만한 내용이지만 같은 출판사(어문학사)의 [웃고 있는 예수]도 읽은 나는 그닥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으면서 읽을 수 있었다.

대략 내용은 피부색에서 오는 문화, 종교적인 차이가 과연 타문화, 타인종도 완전히 포용할 수 있는가이다. 익히 알다시피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은 가톨릭교의 대대적인 우세로 거의 유일신인 지경이다. (소수 타종교도 많이 있겠지만 유럽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유럽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톨릭교를 필히 알아야함을 느낄 수 있고, 가톨릭교 아래에서 탄생된 수 많은 유적이 유럽 그 자체라는 생각도 든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교를 알아야 하듯이..) 타종교에 다르게 포교에 굉장히 열심인 그리스도교는 일본에도 스며든다. 하지만 백색인이 믿는 그 종교와 미신을 비롯하여 예수가 없는 수 많은 종교, 또 황색인이 살아가는 땅에서 우세한 불교가 존재하는 그 토양의 황색인을 온전히 포용하느냐의 문제는 작가에게 심각한 고민을 안겨준다.

유다를 용서하지 않으신 예수님. 기독교의 기본 교리와 어긋나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내치심에 차가움이 느껴지지만 [웃고 있는 예수]에서 지적한 것 처럼 성경은 예수님이 저자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신앙을 키우고 있다.

피부색에서 오는 차이가 그토록 예민하게 닿지 않는 생활이여서인지 깊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차이는 있겠지.. 차이를 수용하느냐, 비판하느냐, 수용불가느냐는 사람마다 또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역자의 말대로 '신으로 인해 아픈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책'은 분명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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