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소설을 읽을 때면 늘 새로운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깊은 감정의 골이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나로서는 100% 공감될 수 없는 과거 그들의 삶의 흔적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 작품에서는 단지 흑인문제를 넘어 인간으로서 삶을 개척하지 않고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고, 비겁하게 자꾸만 움츠러들어 자기만의 안위를 취하고자하는 과정에서 오는 비인간화를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는 꿈같은 사건들이 주인공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고교 졸업연설로 인연이 닿아 지방유지들의 단체 모임에서 연설 초대를 받고 갔으나 끔찍한 권투시합의 노리개가 되는 흑인 청년들. (하지만 여기서부터 주인공의 성격은 잘 나타난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자기 딸을 취하는 흑인 아버지. 정말 비굴하게 느껴지는 대학 이사장. 페인트 공장에서의 사건. (여기에서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었나 싶었다.) 흑인 활동단체인 형제애단에서의 활동 등의 굵직한 일들이 한 사람으로서 거쳐야 할 인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벅찰만큼 고통스러웠다. 그 와중에서도 주인공의 의식 상태는, 뭐랄까..못나 보였다. 속으로는 자신 이외의 사람들을 조롱하면서 그들과 함께 한다. 상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하는 그의 모습에서 온전히 그를 탓하는 것도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이 따뜻한 인물인 메리 아주머니는 주인공의 부모보다 더 따뜻한 존재였고, 고향 남부만큼이나 간절하게 그려졌다. 가난의 상징인 양배추 스프. 나에게도 그녀의 마음 씀씀이는 소설 속에서 안신처가 되어주었다. 꿈에 취해, 꼭 몽환적 분위기에서 주인공이 헤매고 있을 때, 세상이 잔인하게 한 인간을 농락하고 있을 때 그런 세상을 인간적으로 살기는 참 어렵겠다 싶다. 가난한 남부 흑인의 혈통의 조건에서 꿋꿋하게 일어서기보다 호시탐탐 온갖 기회를 포착하기만을 살피는 그는 소설이 끝날 즈음에서야,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고서야 깨닫는다. 제목만 보고 [눈먼 자들의 도시]를 떠올렸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시사는 비슷하지만 여전히 다른 내용이다. 하지만 여타의 흑인소설과도 또 다른 느낌을 주는, 후반부에서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사유하는 힘을 가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