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 - 개정판
전광용 지음 / 을유문화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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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용의 아홉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는 작품집이다.

그 중 가장 먼저 눈길닿은 꺼삐딴 리. 영어 '캡틴'의 러시아어이다. 시대 상황에 맞춰 살아가는데 양심은 두 번째. 이인국 외과의 박사의 신조이다. 일제 강점기, 해방, 6.25전쟁의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가 부를 움켜쥐고 사는 치졸한 방식인 것이다. 해방을 맞아 그는 역시 친일파의 행적으로 감옥에 갇힌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 간부의 얼굴 혹을 수술해 줌으로써 다시 인생의 빛을 보게 된 그는 운도 좋은 것 같다. 누군가 버리고간 기초 노어사전을 감옥에서 달달 외우는 것, 그의 전체적인 두뇌 발달 수준이 타인을 능가한 점도 있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점은 그런 자신만의 능력을 조국을 위해서 쓰지 않았다는 점이겠다. 현재, 과거, 미래가 뒤섞인 작가의 서술 형식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었지만 다른 작품들도 읽으면서 이것도 하나의 작가의 글쓰는 호흡이겠거니... 학창시절에 주섬주섬 읽었던 것을 다시 읽으니 괜시리 뿌듯해진다.

유독 그의 작품에는 병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데 그것과 완전 별개인 [곽서방]. '다도해'라는 남해, 소설 속에서 보아하니 큰 도시는 여수인 것을 보아 거기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어느 작은 섬. 경도. 거기에 곽서방이 산다.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읽는 내내 평생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처자식 건사하고, 흙을 버팀목으로 사는 그에게 어떤 인생의 복병이 나타나지않나 내가 다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특별한 기복없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내려주어 생전 처음 '쌀 수확'을 하는데는 무리가 없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난다. 좀 싱거운 내용이긴 하지만 나의 태생과 중학교 시절까지 시골에서 자라 조금 연민을 자아내는 작품이였다.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공부는 잘해 우수한 대학교에 다니던 주인공, 어렸을 때 우러러보던 담벼락이 높은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큰 딸에 대한 애정을 싹틔우지만 정작 모든게 비극이 되어버린 [초혼곡], 결국엔 자신은 모든 것들에대해서 이용당했다고 느껴버린 [면허장]의 여주인공 등. 전광용의 작품에선 삶의 고달픔이 주로 애잔하게, 약간은 코믹하게 잘 나타나있다.

작가 자신은 그닥 가난한 세월을 산 것 같진 않다. 하지만 그는 혼란의 현대사를 잘 그렸고,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들, 그리고 한국 풍자 문학의 한 가능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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