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이 책의 제목 '아우스터리츠'에서 연상되는 유일한 강력한 단어, 아우슈비츠. 그 시대의 소설을 두어 권 읽었지만 또 다른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랄까.. 히틀러가 유럽을 장악했을 때 유대인 어린아이를 영국으로 피신시키는 구조 운동때, 네 살에 영국으로 건너갔던 아우스터리츠가 기억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덤덤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당시의 상황을 조금씩 재현한다. 이것은 내가 전에 읽었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나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과는 또 다른 그 시대에 대한 접근 방식이고, 유대인 어린아이 구조 운동은 몰랐던 사실이다. 영국은 1938년부터 1939년까지 약 1만명의 유대 어린이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훗날 건축사가 된 노년의 아우스터리츠는 애써 외면하기까지 해왔던 20세기 역사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선다. '나는 혼자라고 항상 믿어온 것. 그리고 그것이 지금은 그녀에 대한 나의 갈망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더 크다는 것을 말이지요..' ----- page 238 자신은 고립되었다고 생각하며 일종의 사회부적응자로 스스로를 가두고, 끝내 결혼하지도 않은 아우스터리츠는 영국 웨일즈 지방의 칼뱅파 목사의 집에 입양되었다.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는 새로운 이름과 함께 그의 기억엔 자신의 유대인 과거와 전쟁은 없었다. 열네살에 '아우스터리츠'라는 본인의 이름을 알게 되고 그를 도와주는 사람과 함께 점차 과거로의 얽힌 실타래같은 기억을 더듬어 찾아 나선다. '내가 무엇인가 쓰려 하면 아우슈비츠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했던 임레 케르테스와는 달리 본인은 그런 아픈 기억은 없지만 조국인 독일에 대해서, 지난 독일이 자행했던 것들을 이 책으로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일깨워 줄 것이다. 이 시대의 관련된 작품들은 한결같이 나의 마음은 항상 씁쓸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