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힘 - 녹색 교실이 이룬 기적
스티븐 리츠 지음, 오숙은 옮김 / 여문책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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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떤 것을 해내지 못하는 이유는 단 두 가지밖에 없네.”
그는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아이들이 순응적이지 않거나 아니면 실력이 부족하거나. 전자는 아이들이 그것을 하기 싫어한다는 뜻이고, 후자는 그것을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뜻이야. 어느 경우든 우리의 대답은 항상 가르치는 것이지. 아이들을 포기하지 말게. 그런데 말이야, 자네는 순응적이지 않으면서 실력도 부족해. 나는 교사고, 그래서 나는 자네를 포기하지 않는 거야.”(p.87)
하기 싫어하는 애들, 방법을 모르는 애들을 포기하지 않고 될 때까지 가르친 적이 얼마나 있지?
이런 애들을 끝까지 붙잡고 가르치는게 자칫 편애나 이상한 소문의 주인공이 될까봐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
그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두려워하라.

교실텃밭농사를 통해 출석률을 높이고 나아가 지역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일꾼으로 성장시키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뉴욕의 빈민지역에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교사.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새벽이든 밤이든, 캘리포니아든 두바이든 가리지 않고 자기주머니를 털어서라도 기어이 갔다 오는 교사.
그래서 학생들의 잠재력과 세계관을 열어준 교사.
그 진정성이 백악관과 교황청까지 통한 교사.
스티븐 리츠의 30년 교직생활은 영적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농사가 잘못되었을 때 씨앗을 탓하지 않는다. 물과 햇빛과 거름이 적절했는지, 농부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반성한다.
교육도 그래야 한다. 애들 잘못이 아니다.
학생농사 짓는 농부인 나는 왜그리 씨앗만 탓을 했는지...

지역사회는 토양이다. 토양이 좋지 않으면 학생들은 잘 자라지 못한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토양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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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친다는 말에 겁먹지 마세요 - 우리는 정말 버릇없고 나약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걸까
알피 콘 지음, 오필선 옮김 / 민들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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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다. 


"젊어서 견디고 고생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당연히 묵묵히 일을 한 덕분에 일을 시킨 사람이 이득을 볼 테고, 고생한 젊은이 중에서 경쟁에서 이긴 소수는 이득을 볼 수 있겠으나 나머지는 글쎄...



‘<버릇없는 아이 신드롬>이라는 책의 저자는 아이란 어른을 이용하고 어른의 선한 의도를 이기적 목적으로 곡해하는 달인으로 묘사한다.’(p.81)

이런 이유로 아이는 통제되어야 하고 아이가 원한다고 모든 들어주면 부모는 아이에게 끌려다닐 것이란 논리가 나온다

아들러도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위와 같은 보수적인 훈육관에 알피 콘은 반대한다

체벌과 보상뿐 아니라 칭찬과 격려 또한 아이를 부머 마음대로 하기 위한 통제기제이며, 이런 아이는 자기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배움은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실패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는 데서 온다.”(p.153)

-장래의 일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있도록 보장해주는 힘은 성공의 경험이다. 성공할 있도록 무조건 도와주란 말이 아니다. 성공의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번 살패만 하는 사람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 따라서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그렇다고 실패를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다


유급(p.183)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최악의 교육행위는 이들을 낙제시켜 학년을 다시 다니게 하는 정책이라는 사실이 지난 수십 간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유급은 학생의 성적과 자신감, 졸업가능성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유급이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학교 중퇴비율에 영향을 끼친다.)”


수년 전 졸업자격심사에서 한 학생에게 불합격을 줬던 일, 학년이 올라갈 때 이수하지 못한 과목이 있어 상급학년 과목 중 일부를 수강하지 못하게 제한했던 결정을 내렸던 적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이런 결정은 유급과 같았다.

 결국 상급학년 수강권을 제한당한 학생들은 대부분 자퇴했다. 공정한 룰을 적용하는 것이 학교나 학생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는 신념은 보기 좋게 깨졌다.

  안의 보수성이 위의 정책에 버젓이 반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진보주의자라고 착각한다

 

 


책은 회복탄력성, 자제력(견딤) 등이 학습성취는 물론 인생의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나, 아이가 원하는대로 해주면 부모는 아이에게 지배받을 것이라는 아들러 해석에 여러 실험 결과를 가지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동기 자제력이 높은 아이가 성적이 좋았다고 해서 성인이 되었을 자제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됐다거나 성공을 좌우하지 않았다

7(마시멜로 이야기의 진실) 이런 의미에서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원할 아무때나 벨을 누르면 마시멜로를 하나를 주고, 실험자가 때까지 기다리면 개를 줬다

실험자가 때까지 기다렸던 자제력이 높은 아이가 성적도 높을 것이라고 전제한 실험인 같다

결과는 상관관계가 없어 보였다

우리 사회는 애들한테 조금만 견디라고 한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까지만, 고등학교 거면 대학가서 테니 때까지 견뎌야 하고, 대학 가면 취직할 때까지 스펙 쌓기 위해 자제해야 한다. 취직하면? 미래에 많은 마시멜로를 기대하며 현재의 마시멜로를 십수 년을 포기하며 참는다. 그래서? 마시멜로를 많이 얻었는가? 비혼율과 출산율이 역대 최고와 최저를 찍는 현실에서 이들에게 마시멜로는 언제 지급되는가?


밤새 자고 견디는 시키면 대부분 못하지만 밤새 하고 싶었던 하라고 하면 대부분 늦게까지 일을 것이다


자제하고 견디는 훈련시킬 아니라 학교공부가(하는 일이) 재밌을 있도록 재조직하는 교사의 역할이다

적절한 자제력이면 모를까 견딤만 강조하는 교육은 순응하는 사람을 원하는 교사의(사회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위의 물음에 다음의 글귀가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부모로서 우리가 마주한 시험대는 저항이 적은( 잘듣는) 아이에게 쏠리는 마음을 이겨내고 앞의 성공을 척도로 여기는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p.292)

우리는 아이들이 보이는 예상 밖의 반응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우리 말에 도전할 때도 방어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과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힘을 실어 주고 기술에 더욱 능숙해지도록 가르치는데 있다.”(p.297)


 위의 문장은 매일 접하며 매일 갈등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거의 성공한 적이 없는 주문이기도 하다

 당장 내가 원하는 하지 않은 둘째아들이 제대로 하기를 오늘도 차례나 교묘하게 주문했고, 학교에서 애들이 터무니없는(물론 기준에서) 주장으로 시비를 걸어올 말빨로 이기려 하거나, 권위로 누르려 했다

 내가 학교에 있는 이유는 애들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지, 애들을 이기려고 있는게 아님에도 나는 그렇지 못할 때가 훨씬 많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력이 쌓이면서 차츰 보수화되어간다고 느끼는 시기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아울러 번역이 매끄러워 가독성이 매우 좋다. 특히 번역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적절한 번역이 돋보이기도 한다(“ 무조건 반댈세”, “오글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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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친다는 말에 겁먹지 마세요 - 우리는 정말 버릇없고 나약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걸까
알피 콘 지음, 오필선 옮김 / 민들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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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번역이 상당히 매끄러워 가독성이 좋아요. 그래서 책 내용이 쉽게 잘 들어옵니다.
책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젊어 고생 사서 하고, 힘들어도 견디면? 쿠이 보노?(누가 이익을 보는가)˝ 정도?
전통적 교육관이나 직업관에 공감이 마구 간다면 이 책 보고 혼란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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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 장용영 - <무예도보통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기념
김준혁 지음 / 더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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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혁, <장용영>


1부

사도세자가 온양온천 행차를 갈 때 군사 수 백을 대동했다. 수원읍치를 지날 때 읍 객사를 이용하지 않고 독성산성으로 가서 무예를 열병. 이후 운주당에 가 활을 쏘는데 네 발 쏘아 네 발 모두 맞췄다. 

후에 정조가 즉위 후 독성산성을 방문하고 화성행궁으로 돌아와 득중정에서 네 발 쏘아 네 발 맞췄는데, 이는 아버지의 일을 떠올리기 위함이었다.(p.54)

  정조는 활을 엄청 잘 쏜다. 책 속에 정조의 시수를 기록한 것이 나오는데 10순 중에서 2순은 5중, 8중은 모두 4중을 했다. 총 42발을 맞춘 것인데, 전통적인 활쏘기에서 보통 1획(50발)을 쏘아 30발 이상 맞춘 사람을 시수꾼이라 했는데(현대 국궁경기에서 9순을 쏘아 30발을 맞추면 사범이 된다.) 정조는 명궁의 반열에 들었다고 봐야 하겠다. 

 


2부

정조의 첫번 째 윤음은 즉위 첫날 발표한 ‘본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밝힌 것.

‘역적지자 불위군왕’이라는 팔자흉언을 퍼뜨리는 세력에게 대놓고 경고한 것.(p.84~87)



진설(進設)-무예도보통지의 편찬자가 책을 완성한 뒤 정조에게 올리는 “경과보고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병법이란 지모일 뿐이다. 진법도 오히려 말단에 불과한 것인데, 하물며 무기야 말해 무엇하느냐? 그러므로 ‘유장(휘장을 친 군막)에서 수립한 전략이 천리 밖에서 벌어질 전쟁의 승리를 결정한다’라고 하는데, 돌고 뛰며 고함지르면서 용맹을 과시하는 것은 한 사람을 대적할 수 있을 뿐이다. 어찌 승패의 변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만약 상대가 어린아이일지라도 칼을 쥐고 있으면 맹분과 하육 같은 용사라도 피하고 숨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은 병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나약한 남자가 한 번 찌르는 것이 용맹스러운 무사가 백 번 치는 것보다 낫다는 건 그 세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략은 진법만 못하고, 진법은 병기만 못하며, 병기는 세만 못합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병법이라 할 수 없습니다...(p.126~7)


무예도보통지 서에 진법과 기예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나온다(그러나 행진이 먼저이고 기예는 뒤라는 것이 병가에서 보편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나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병가에서는 오교에 있어 기예훈련이 두 번째이고 행진 훈련이 세 번째인것은 무슨 까닭인가?...p.122 재인용)


왜 진법서가 아닌 기예서를 편찬했을까 궁금했었다. 위에 인용한 서문에 나온 것만으로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의문을 진설에서 명쾌하게 풀어줬다. 다양한 사료를 제시하여 역사적 상상력에 의존해야 하는 부분을 메꾸고 있는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3부

명의록을 편찬한 사연은 애달프다.(p135)

“귀혼의 무리가 날로 곁에서 엿보기만 일삼고 있으니, 말 한마디 침묵 한순간의 사이에도 미음을 놓지 못하였다. 이것은 비록 견디어 넘길 수 있으나, 다만 일상생활 속의 허다한 어려운 상황은 이루 다 기록하기도 어렵다.”-명의록 중에서

공홍파 부홍파 등 노론세력의 대리청정 반대부터 왕위 승계 저지까지 얼마나 고통스런 날이었을까?

오죽하면 즉위년에 명의록을 발간하여 자기가 환관과 나인들에게 감시당하며 고통받았던 것을 기록으로 남겼을까? 게다가 인건비부담과 결혼 못하는 궁녀들의 인권을 이유로 즉위 이전에 자신을 감시했던 환관과 궁녀 108명을 궁 밖으로 내보냈을까?


집권 초 홍복영 구복선 역모 사건은 물론 오른팔이었던 홍국영까지 제거하는 등 정조는 동궁시절부터 왕이 되어서도 늘 반대파의 위협에 시달렸다. 

 이 상황에서도 이성적인 정치력을 발휘한다는 건 신기에 가깝다. 정조도 욕을 잘했다고 한다. 심환지와 나눈 비밀편지를 보면 그렇다. 이 정도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욕 정도로 끝나면 성군이다. 




4부

이와 같은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친위부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친위부대 양성은 민생안정과 국가예산의 효율화를 꾀라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국가 예산의 절반이 국방비(5군영의 인건비)였으니, 그 부담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그러니 백성들은 군포 납부를 피해 도망가고 세금징수관들은 이를 만회하려고 황구첨정 백골징포 등을 자행하지 않았는가? 오죽하면 정약용의 시 “애절양”에 나오듯 군역의 부담때문에 아들의 성기를 잘랐겠는가?

장용영은 다른 부대처럼 군포를 징수해 급료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성호 이익의 친위군병론을 따라 둔전제를 취하는 것이었다. 즉, 토지를 주어 거기서 나는 수익으로 군사를 운용하는 방식은 전통적이며 이상적 군대운용방식이었다. 

 게다가 효종대 시작하여 사도세자까지 주장했던 북벌을 장용영을 통해 은연중에 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역대 장용대장 또한 노론벽파를 견제하고 노론시파나 소론 무당파 등을 기용하는 등 장용영 설치를 통해 민생안정 자주국방 왕권강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는 정조, 알면 알수록 멋짐 터지는 왕이다. 





5부

장용영 설치과정에서 장용영의 직제가 눈에 띄었다. 

5천 여 명의 인원 중, 선기대(기마병)는 345명. 

그리고 초관(대대장 급)으오 임명되어 15개월을 근무하면 정6품으로 승진할 수 있게 했다.(p.257) 

보통 다른 군영의 초관은 정9품에 해당한다.대과에 장원급제 해도 종6품을 받았으며,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정6품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따라서 장용영 초관에게 15개월 근무 후 정6품 승진혜택을 주는 것은 그야말로 파격대우 자체인 것이다. 

백동수가 기린(지금의 인제)에 은거하다가 40대 후반의 나이에 장용영 초관에 임명된다. 초관이란 직책 때문에 백동수가 하급장교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장용영 초관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용영 융령 10조 중,

막통(양반과 내왕하지 말 것)은 어떤 의미일까?

파당을 짓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었을까?





6부

정조는 수원도호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고 마침내 장용영 외영을 설치한다. 장용영외영은 그 수가 2만명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18세기 조선의 인구를 1,000만~1,200만 정도로 추산할 때 화성을 지키는 장용영외영의 수는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조선을 통틀어 단일부대로 이렇게 큰 부대는 없었을 것이다. 

장용영내영과 외영을 안정시킴으로써 정조는 노론 벽파 등 견제세력을 통제할 힘을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1795년 윤2월 화성행차 때(을묘연행) 수원 백성들과 장용영 군사들이 민-군 합동훈련인 야조를 시행한다. 점거(횃불을 켜는 것)와 낙등(불을 끄는 것)이 왕의 명령에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는 성공적인 훈련이었다고 한다. 

 수원 일대에 저수지와 둔전을 설치해 민생안정과 군사재정을 마련하고, 왕이 직접 군사훈련을 지휘하는 수원은 선택받은 도시라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이다. 


 을묘연행 때 행궁 득중정에서 문무관료들과 활쏘기를 하는 기록이 있는데, 정조는 장용대장보다 배 이상 점수가 높았다. 심지어 6순 중, 한 순은 장혁(掌革)을 쏘았고 나머지 5순은 작은 과녁에 쏘아 25발 중 24발을 맞혔다고 한다(p.349). 이 날 정조는 6순 중에서 24중을 했고 점수는 28점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정조는 신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 화약무기인 매화포(지뢰)를 시험하게 했는데, 마침 비가 왔다고 한다. 화성유수 겸 장용영외사 조심태에게 비가 오는데 무기시험이 가능한지 묻는 장면이 나온다. 조심태는 자신감을 보였고 무기시험은 성공한다. 

 청의 건국자 누르하치가 명의 원숭환이 사용한 홍이포(지뢰)에 의해 죽었다. 이 때문에 정조는 매화포가 병자호란 때 쓰이지 못한 것을 개탄했다고 한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11살밖에 안된 세자 이공이 순조로 즉위한다. 영조의 어린 신부였던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시작하고 노론벽파는 다시 정권을 장악해 장용영을 혁파한다. 

앞서 말했듯 조선 후기는 3정의 문란이 매우 심각했고 정조는 그 중 군정을 바로잡기 위해 병농일치의 군대를 양성하려고 했으며 그 결과가 장용영과 화성 설치였다. 따라서 정조 개혁의 핵심은 장용영이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것을 친 것이다. 게다가 정순대비는 장용영의 둔전을 내수사(왕실재산을 관리하던 관청)로 편입시켜 사유화를 시도하기까지 한다. 물론 사간들의 반대로 인해 저지되긴 했지만 조선후기 국가기강이 해이해지는 것은 이렇듯 권력을 장악한 집단의 부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조 사후 순조~헌종~철종 기 60여 년의 세도정치 시기는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이권을 빼돌리기에 급급한 관료들이 장악한 부패한 시기였고, 때마침 일본을 비롯한 서양열강의 압력에 대응할 능력은 전혀 없는 무능함을 보여준 암흑의 시대가 되어벼렸다. 

 정두언 전 의원 말대로 ‘MB는 정권을 잡은 게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는 표현처럼 국가권력이 부패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 정조 이후의 시대를 보면서 다시 경계하게 된다. 

 총알을 막지 못하는 방탄복, 물에 가라앉지 않는 잠수함 등 방산비리를 저질러 놓고도 ‘생계형비리’라고 드립쳐대는 더러운 인간들이 있는 나라가 제대로 외침을 막을 수 있겠는가?

 무고한 어린 학생들이 바다에 수장되어가고 있는데도 그 시간에 뭘 했는지 제대로 밝히지도 못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제대로 굴러 가겠는가? 

 정조의 애민사상과 개혁정치를 통해 현재를 비춰본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바가 크다. 오늘도 무예도보통지 편찬의 의미를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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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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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매끄럽지 못해 읽기 불편한 곳이 많아요. 아예 문장구조나 조사를 틀린 경우도 있음
내용 :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의 본성으로서 놀이가 예술 철학 시 등 각 분야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밝힘. 저자의 박학다식함이 돋보이나 간혹 아전인수 격 예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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