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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망친다는 말에 겁먹지 마세요 - 우리는 정말 버릇없고 나약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걸까
알피 콘 지음, 오필선 옮김 / 민들레 / 2017년 12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다.
"젊어서 견디고 고생하면 누가 이득을 보는가?"
당연히 묵묵히 일을 한 덕분에 일을 시킨 사람이 이득을 볼 테고, 고생한 젊은이 중에서 경쟁에서 이긴 소수는 이득을 볼 수 있겠으나 나머지는 글쎄...
‘<버릇없는 아이 신드롬>이라는 책의 저자는 아이란 어른을 이용하고 어른의 선한 의도를 이기적 목적으로 곡해하는 달인으로 묘사한다.’(p.81)
이런 이유로 아이는 통제되어야 하고 아이가 원한다고 모든 걸 다 들어주면 부모는 아이에게 끌려다닐 것이란 논리가 나온다.
아들러도 위와 같은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위와 같은 보수적인 훈육관에 알피 콘은 반대한다.
체벌과 보상뿐 아니라 칭찬과 격려 또한 아이를 부머 마음대로 하기 위한 통제기제이며, 이런 아이는 자기행동을 스스로 결정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배움은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 실패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는 데서 온다.”(p.153)
-장래의 일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힘은 성공의 경험이다. 성공할 수 있도록 무조건 도와주란 말이 아니다. 성공의 경험을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매번 살패만 하는 사람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다. 따라서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그렇다고 실패를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다.
유급(p.183)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 최악의 교육행위는 이들을 낙제시켜 학년을 다시 다니게 하는 정책이라는 사실이 지난 수십 년 간의 연구에서 밝혀졌다. 유급은 학생의 성적과 자신감, 졸업가능성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유급이 학생의 사회경제적 지위보다 학교 중퇴비율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수년 전 졸업자격심사에서 한 학생에게 불합격을 줬던 일, 학년이 올라갈 때 이수하지 못한 과목이 있어 상급학년 과목 중 일부를 수강하지 못하게 제한했던 결정을 내렸던 적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이런 결정은 유급과 같았다.
결국 상급학년 수강권을 제한당한 학생들은 대부분 자퇴했다. 공정한 룰을 적용하는 것이 학교나 학생 모두에게 좋을 것이라는 신념은 보기 좋게 깨졌다.
내 안의 보수성이 위의 정책에 버젓이 반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가 진보주의자라고 착각한다.
이 책은 회복탄력성, 자제력(견딤) 등이 학습성취는 물론 인생의 성공에 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나, 아이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면 부모는 아이에게 지배받을 것이라는 아들러 식 해석에 여러 실험 결과를 가지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아동기 자제력이 높은 아이가 성적이 좋았다고 해서 성인이 되었을 때 그 자제력이 지속적으로 유지됐다거나 성공을 좌우하지 않았다.
7장(마시멜로 이야기의 진실)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공감가는 내용이었다.
어린이들에게 원할 때 아무때나 벨을 누르면 마시멜로를 하나를 주고, 실험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 두 개를 줬다.
실험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던 자제력이 높은 아이가 성적도 높을 것이라고 전제한 실험인 것 같다.
결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어 보였다.
우리 사회는 애들한테 조금만 더 견디라고 한다. 중학교 땐 고등학교 갈 때까지만, 고등학교 거면 대학가서 놀 테니 그 때까지 견뎌야 하고, 대학 가면 취직할 때까지 스펙 쌓기 위해 자제해야 한다. 취직하면? 미래에 올 몇 개 더 많은 마시멜로를 기대하며 현재의 마시멜로를 십수 년을 포기하며 참는다. 그래서? 마시멜로를 많이 얻었는가? 비혼율과 출산율이 역대 최고와 최저를 찍는 현실에서 이들에게 마시멜로는 언제 지급되는가?
밤새 잠 안 자고 견디는 걸 시키면 대부분 못하지만 밤새 하고 싶었던 걸 하라고 하면 대부분 늦게까지 그 일을 할 것이다.
자제하고 견디는 걸 훈련시킬 게 아니라 학교공부가(하는 일이) 재밌을 수 있도록 재조직하는 게 교사의 역할이다.
적절한 자제력이면 모를까 견딤만 강조하는 교육은 순응하는 사람을 원하는 교사의(사회의) 마음이 투영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
위의 물음에 다음의 글귀가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부모로서 우리가 마주한 시험대는 저항이 적은(말 잘듣는) 아이에게 쏠리는 마음을 이겨내고 눈 앞의 성공을 척도로 여기는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p.292)
“우리는 아이들이 보이는 예상 밖의 반응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아이들이 우리 말에 도전할 때도 방어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들과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힘을 실어 주고 그 기술에 더욱 능숙해지도록 가르치는데 있다.”(p.297)
위의 두 문장은 매일 접하며 매일 갈등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거의 성공한 적이 없는 주문이기도 하다.
당장 내가 원하는 걸 하지 않은 둘째아들이 제대로 하기를 난 오늘도 수 차례나 교묘하게 주문했고, 학교에서 애들이 터무니없는(물론 내 기준에서) 주장으로 시비를 걸어올 때 말빨로 이기려 하거나, 권위로 누르려 했다.
내가 학교에 있는 이유는 애들을 성장시키기 위함이지, 애들을 이기려고 있는게 아님에도 나는 그렇지 못할 때가 훨씬 많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력이 쌓이면서 차츰 보수화되어간다고 느끼는 시기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아울러 번역이 매끄러워 가독성이 매우 좋다. 특히 번역자의 센스가 돋보이는 적절한 번역이 돋보이기도 한다(“난 무조건 반댈세”, “오글거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