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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좋아하세요? - 어느 덕후와 교수의 고전 교환독서
하길(석민주).이준석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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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그리스 로마 신화 좋아하시나요?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한다. 신비롭고, 재미있어서 어렸을 적부터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접하게 된 건 홍은영 작가가 그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였다. 그때 당시의 눈으로는 (지금도 비슷하지만 ㅎㅎ) 그림이 멋있고, 아름답기도 했고, 신비로운 신화 이야기에 푹 빠졌던 것 같다. 나온 애니메이션도 찾아보다가 언젠가 갑자기 그림체가 달라졌을 때는 크 실망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는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고, 또 좋아하기도 하지만 사실 관련한 서양 문학사, 신화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처음 '일리아스'를 좋아하냐는 제목을 읽고, (부끄럽게도) 혹시 꽃 이름인가 싶기도 했다.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서사시 중 하나로 시인 호메로스가 썼다. 일리아스라는 이름은 생소했지만, 서사시의 이야기는 잘 아는 내용이었다. 트로이 전쟁 시기 아킬레우스의 분노, 화해 등의 이야기를 다루는 서사시가 바로 일리아스다.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헥토르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일리아스를 알려주는 책인가? 그렇다! 고만 말하기에는 조금 설명이 아쉽다. 이 책에는 일리아스를 덕질하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2024년 탄핵 정국 시기에 일리아스를 중심으로 모이고 연대한 이들의 이야기도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일리아스 덕후 '하길'과 호메로스의 서사시 연구로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이준석 교수다.

시작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후 탄핵 집회가 이어지던 광장이었다. 그것도 우연히, 하나의 깃발로 인해서! 읽으면서 이건 우연이 아닌 운명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하길'은 일리아스의 첫 문장 "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라는 깃발을 들고 광장에 갔고, 그걸 본 안재원 교수를 통해 첫 인연이 맺어졌다. 이후 안 교수의 소개로 이준석 교수와도 만나고 서로의 덕질을 공유하고 결과적으로는 책까지 나온 것이다...

읽으면서 그때 그랬지 하며 탄핵 정국 때를 회상하기도 했고, 일리아스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통해 연결됐다는 지점이 신기하고 또 부러웠다. 내가 아주 몰두해있는, 좋아하는 무언가를 다른 사람과 함께 같이 파고, 대화한다는 것도 아주 소중한 기회인데, 이게 계기가 되어 더 큰 연대를 이룰 수 있다니. 두 분의 관계성도 신기하고, 또 이렇게까지 일리아스를 덕질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어렸을 적 미친 듯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던 경력을 바탕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도 꼭 완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요 책을 통해 대강 공부를 마쳤으니 조만간 실전으로 도전해봐야겠다. 도야지 방장님께서 쓰신 편지를 보니 일리아스는 중도 하차한 사람들이 많고, 완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더더욱 완독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사실 재미있을 것 같다! 중국 고전 문학, 고장극이라면 푹 빠진 중어중문학과생으로서 서양 고전이라고 다를까? 동양 고전에 비할 만큼 분명 매력적일 것 같다.

일리아스를 다 읽으면 꼭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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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써 번아웃이라고? - 청소년을 위한 회복 가이드 발견의 첫걸음 15
나오미 피셔 지음, 일라이자 프리커 그림, 이민희 옮김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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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가 벌써 번아웃이라고?'를 읽었다. 책은 번아웃은 무엇이고, 언제 번아웃이 오는지부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회복 가이드라지만 청소년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회복 가이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작거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스트레스는 삶의 일부이고 싸울 필요가 없다.”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다고 해서 삶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다만 안정 구역에서 약간 벗어날 뿐이다. 안정 구역은 일상이 크게 버겁지 않게 흘러가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들은 대개 안정 구역에 있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감정이고, 굳이 피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어요. 그건 힘든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에요.

 

스트레스받을 때 우리는 안정 구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작은 노력을 기울이면 된다. 모두에게 다르겠지만 산책한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등의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거나 괜찮아지기 위해 애쓰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감정은 원래 오락가락해. 별일 아니야.”

 

있는 그대로의 나의 감정과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사소한 노력으로 우리는 다시 안정 구역으로 돌아와 매일 매일을 보낸다. 하지만 번아웃은 조금 다르다. 번아웃은 만성 스트레스에 갇혀 더 이상 몸과 뇌가 괜찮다고 느끼는 안정 구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감정이 조금이라도 올라오면 너무 벅차고 괴로워서, 차라리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번아웃에 빠지면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다르게 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번아웃의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잘 살펴보고 주변 환경이 나와 맞지 않았다면 무언가를 바꾸거나 다른 환경을 조성하는 등 나에게 맞는, 내가 편안한 환경을 꾸리는 것이 중요하다.

 

힘든 환경에서 그저 버티기만 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어려워요.

 

구체적인 단계를 통해 회복 과정을 짚어보면 첫 번째 단계는 번아웃에 도달한 순간이다. 책에서는 이를 고장이라고 부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겠고, 감정은 요동치고,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날 수도 있어요.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려서 한동안 잠만 잘 수도 있고요. 모든 게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삶이 한꺼번에 크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라요.

 

번아웃은 작은 일들이 오래 쌓여 어느 시점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찾아온다. 마음뿐만이 아닌 몸도 신호를 보내는 순간이다.

 

그저 더는 나아갈 수 없는데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르지 않아요. 아무도 내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이게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하지 못해요.

 

이때 절대 압박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님이나 주변 환경 혹은 자기 자신의 당장 안정 상태로 되돌아와야만 한다는 압박은 회복할 틈을 주지 않고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아낼 뿐이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혹은 상담해 볼 수도 있다. 기대는 이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 걷어낼 수 있는 압박을 모두 걷어낸 후 걱정거리들을 보관함에 넣어두고 오로지 기분 좋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충격이 조금 가라앉으면 수리단계에 들어설 차례다. 만성 스트레스 상태에 갇히기 전, 일상에서 어떻게 느끼고 행동했는지 떠올려본다. 이전에 좋아했던 활동들이 무엇인지 살펴본 후 다시 해보는 것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좋다. 책임이나 의무 없이 그저 즐기기 위한 일은 위안을 준다. 일찍 자고 푹 자는 것도 중요하다. 수면 패턴은 정서적으로 여러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괜찮은 순간을 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이 좋다. 바로 작은 반짝임’. 은근히 기분이 좋거나, 몸이 편안하거나,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는 순간.

 

다음으로 컨디션이 괜찮아지고 압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다시 뒤를 돌아볼 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볼 때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회복한 후 이 단계로 넘어와야 한다는 것!

이 단계에서는 사고방식을 재정비해야 한다. 지난 일을 떠올릴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보고 이를 다정하고 현실적인 말로 다시 바꾸어본다. 이렇게 할 수 있다.

 

이런 거지 같은 삶을 사는 건 내 의지가 부족해서야. 나는 약하고 한심해.

내 삶은 작은 반짝임으로 가득해. 자세히 들여다보면 돼. 나는 잘하고 있고, 회복을 통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솔직하게 돌아보자.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어떤 판단도, 자책도 없이 지난날을 돌아본다. 그중 바꿀 수 있는 것을 살펴보고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바꿀 수 없다면 내가 감당할 방법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자.

 

그런 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나만의 번아웃 해독제를 만들 때다.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활동들을 다시 삶에 들여오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요소. 내 삶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내가 무언가를 잘 해내고 있다는 감각,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충족해 본다.

 

마지막 단계는 내일을 그리는 단계다. 현재의 나를 잘 회복하고, 과거를 들여다보았으니, 미래로 다가가보자. 어떻게 삶을 꾸려 나갈지, 어떤 점검과 관리가 있어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차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로드맵을 만들었다면 이제 걸어가 보자.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게 시작하고, 쉽고 끌리게 만들어서 반복하는 것.

 

제대로 회복하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이 걸려도 괜찮다.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느낀 감상은 잘 쓰지 않았다. 언젠가 번아웃이 온다면 스스로가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혹은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번아웃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정리한 글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어떤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은 마음. 나는 그 상태를 잘 안다. 잘 회복하지 못한 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순간에 완전히 무너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언젠가 번아웃에서 벗어나 제대로 회복한다면 이 글을 써둔 나에게, 이 책에게 고마울 것 같다. 지금 너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번아웃 회복 가이드를 들여다볼 수 있기를! 작은 반짝임이 가득한 행복을 모두가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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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미스터 타이거 창비청소년문학 148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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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있어도 기대되고 설레는 이야기가 있다. 추리 소설이나 미스터리, 공포 소설은 다음 문장을 예측할 수 없을 때 가장 짜릿하다. 하지만 사랑은 조금 다르다.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을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사랑만큼은 예측 가능한 이야기가 오히려 더 설렌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 표지의 노란 머리 사내와 한복을 입은 여성을 보며 아마도 오른쪽의 여성이 왼쪽의 사내에게 건네는 말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리고 분명 이 둘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터였다.

청소년 서사를 담은 클로버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나혜림 작가의 신작인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개화기 조선 속 기생 계손향과 조선에 사절단으로 온 미국인 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계손향의 삶과 삶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이 당시의 시대와 맞물리며 어떤 선택을 하고 나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계손향은 어릴 적 부모님에 의해 기생집에 팔려 기생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처지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택할 줄 알고, 자신을 위할 줄 아는 여성이다. 미국인 노월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스스로 영어를 깨우친다. 노월과의 인연은 그녀가 한층 더 넓은 세상을 보게끔 해준다.

 

화향백리 주향천리 인향만리라 하지. 세간 사람들은 기녀가 꽃이라며 고작 백 리에 미치는 향이라 한다. 향이 시들면 버림을 받을 거라며. 그 말은 실로 그들의 원이다. 그것을 이루어 주지 말거라. 버림을 받기는.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버리지 못한다.”

 

특히 노월은 당시 조선에서는 흔히 볼 수 없던, 찍히면 영혼을 뺏긴다는 사진기를 가지고 다닌다.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는 미리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계손향은 호기심을 보인다. 그녀는 사진기를 보면 도망가는 다른 이들과 달리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다. ‘최초로 카메라 앞에 선 조선의 여인.’ 계손향이 바로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계손향과 노월은 함께 어울리며 점차 가까워진다.

 

우리는 거울로 비춘 것처럼 달라요.”

...

대인은 저 멀리 뒤집힌 땅에서 온 푸른 눈의 사내고, 나는 이곳 조선의 기녀예요.”

내 눈은 푸르고 그대의 눈은 검지만 우리는 같은 세계를 봅니다. 그대를 만나기 전까진 나도 몰랐어요. 그러니 믿어요. 그런 믿음도 없다면 세상이 너무 어둡지 않겠습니까?”

 

노월은 계손향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계손향은 결국 조선에 남기를 택한다. 그러나 계손향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기생집을 벗어나 사진기,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고, 담기를 택한다. 노월이 없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길이기도 하다.

 

그간 여인이라 하면 풍경으로만 살았는데, 사진기 앞에서는 사람이 되고 주인이 되지. 그리하여 나는 여인들의 가장 고운 순간을 박아 내고 싶소. 고 사진 하나 무엇 중하랴 싶어도 사진을 박아 내는 내 마음은 자꾸만 욕심이 나는 것이요.”

 

역사도 멈춰있지 않고 흘러간다. 갑신정변, 갑오개혁이 일어나고, 철도가 놓이고, 사진관도 생긴다. 더 이상 카메라 앞에서 조선인들도 도망가지 않는다. 계손향은 사진관 보조로 일하고, 더 나아가 신문사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일제강점기의 참상을 기록하고, 알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계손향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바르샤바로, 노월의 고향인 미리견으로 향한다. 계손향, 소냐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앞서 나는 예측 가능한 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했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다. 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라기보다는 계손향 그 자체다. 조선의 기생에서 한 명의 주체적인 여성까지. 계손향은 타자에 의해 결정된 기생이라는 삶을 스스로 벗어난다. 그리고 스스로 사진을 배우고, 신문사에서 일하는 여성이 된다. 직접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짓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소냐. 그녀의 용기는 예상치 못해서인지 더 인상 깊었다. 소냐를 응원하지 못할 이가 있을까. 자신의 길을 만들고, 걸어가는 소냐의 모습을 보며 고민하게 된다.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기회를 마주한 소냐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나는? 내가 스스로 정해둔 한계는 허상이 아닐까?



#안녕미스터타이거 #나혜림 #텍스트Z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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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온 더 락 창비시선 535
고선경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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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디에도 없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사랑을 맨 앞에 내세우는 건 어쩐지 너무 부끄럽고, 다 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꼭 구체적인 단어가 아니라도 사랑한다는 표현은 어떻게나 가능하니까. 


러브 온 더 락은? 사랑이 곳곳에 있다. 시집 표지도 분홍이고, 시집 제목에도 러브가 있다. 온통 사랑 투성이다. 그래서인지 실은 맨정신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읊조릴 때면 정신없이 그 속에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더더욱 칵테일과 함께했어야 했나?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시는 내게 늘 어려운 걸음이다. 단어 하나가 큰 파도 같아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 읽을 때마다 자꾸 끊겨, 친구에게 시를 읽는 어려움을 말했다. 그때 친구는 사진보듯 시를 읽어보라고 말해줬다. 하나 하나 먹으려들지 말고 그냥 텍스트 그대로 느껴보라는 것. 그게 참… 쉽지 않지만! 읽으면서 오랜만에 이 시 참 좋은데? 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병률 시인의 시집 이후로 오랜만인 감각이었다. 


맨 위에 적은 문장은 시 ‘사랑의 교육학’ 중 일부다. 실은 이외에 빠져든 시 두 편이 있다. 하나는 ‘흰 우유에 빠뜨린 오레오 쿠키를 수저로 건져 먹을 때’. 또 하나는 ‘침사추이에서 비치로 가는 길’. 


나는 소설에 익숙한 편이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혼자 놀라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하며 남몰래 대화한다. 시를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들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를 읽었다. 그리고 좋았다. 인상깊었다. 그렇게 그냥 받아들이는 감각을 다시 인식했고, 그 사실이 참 좋았다. 


확실하게 추천하는 건, 칵테일을 마시며 취중 ‘러브 온 더 락’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것!

또 고선경 시인님과 사랑 이야기를 잔뜩 해보고 싶다.

•••


🥃

… 몸을 아무리 씻어도 하얘지지 않는다고 우는 까마귀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마지막으로 본 그에게서는 탄내가 났어 베란다 밖엔 눈발이 날리네 …

22p


우리가 함께 본 주성치 영화 때문에 홍콩까지 왔다는 게 새삼스럽지 않아도 섹오 비치에 다다랐을 때 눈 커졌고

왜 이곳만은 한겨울 같은지

황량한지 아름다운지

생각했지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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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때 교양 100그램 11
김대식.김혜연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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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AI가 나보다 일을 잘하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매일 같이 AI의 도움을 받는 나로서는 그래야만 하기도 했다.

오래 전 AI가 막 등장했을 즈음에 AI로 인해 사라질 직업들이 명단, 순위 같은 것들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놀랐고, 또 그러려니 싶었다. 그게 내 이야기는 아닐 테고, 몇 년 뒤에 당장 사라지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AI가 상용화되고 이제 남은 것은 범용 인공지능, AGI. 몸을 사용하는 AI는 아직 일상생활에 크게 자리 잡지 않았지만, 앞에서 말했듯 AI는 이제 늘 함께 있다. 원래 같았으면 검색창에 검색할 것도 모두 챗GPT에 질문한다. 고민 상담을 하기도 하고, 공부할 때면 급하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빠르고 쉽고, 편하게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정말 좋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마냥 감탄하기에는 AI가 여러 분야의 거의 모든 일을 대체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책에 따르면 향후 5년 안에는 범용 인공지능, AGI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 실감 나지도, 잘 상상되지도 않은 그런 미래가 도래한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지? 책은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처지가 괜찮은 겁니다. 이제 막 현업에 진입하려는 청년들과 지금의 미성년들은 훗날 더욱 심각하고 절망적인 고용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릅니다. 10년이나 15년 뒤, AGI가 개발되어 인간 능력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시대에 그들은 일자리를 가질 기회조차 얻지 못할 수 있죠. AI 기술의 팽창은 모두의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을 침범하고 있습니다.

18-19

 

인공지능이 인간이 노동, 창작, 연구까지 모든 일을 한다면 인간은 무얼 해야 하나. 인공지능에 대체되지 않을 인간만이 갖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중요해진다. 책에서 여러 논의와 의견들이 있는데 몇 가지들을 한데 모아보자면 이렇다.

 

잘 질문하고 잘 고르는 사람.

판단력의 중요성.

판단력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안목이며안목은 경험비교의 축적을 통해 나온다.

능력 간포지션 간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어쩌면 유연성(신체 말고.)

인간이 몸이 가진 고유한 가치말하자면 인간의 신체적 한계는 대체될 수 없음(무용 예술 분야)

혹은 아주 오랜 시간을 통해 축적된 것들가령 장인 정신은 대체될 수 없음.(줄넘기 장인설거지 장인 등)

취향과 정체성을 세밀하게 알아차리기나다움을 인식하는 태도

빠른 변화 속 라는 중심을 놓지 않는 것

AI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귀여운 고양이 그림 500개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어떤 그림을 고를지는 인간이 결정해야겠죠. ,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마지막까지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 겁니다. 저는 이 판단 능력이 인간의 능력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를 안목이라고도 부릅니다. 안목은 어떻게 생겨날까요? 저는 안목이란 다양한 경험이 축적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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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분명하게알아야 한다는 부담도 따라오는 듯하다. 이건 판단력의 중요성이 높아진다는 말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라는 것. 어쩌면 줄곧 그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고민해 왔던 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AI는 앞으로 더 많은 일상에서 자리를 차지해 나갈 것이고, AI와 잘 살아가는 방법은 어렵더라도 최대한많이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방법뿐이라고 한다. 그 속에서 인공지능에 잘 질문하고, 인공지능이 도출해 낸 답들 가운데 인간은 판단하고 결정한다.

아마 딱 떨어지는 답은 없을 것 같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시간의 흐름만큼 또 무언가는 변화할 것이니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유연함을 가지고 더 자세히 라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는 질문하면 된다. 그러면 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 좋아하는 것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더 세세하고,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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