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호구 ㅣ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불계패가 신의 한 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 인생
중요한 건 그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
종종 가는 무등도서관의 길목에는 벤치들이 여럿 있다. 그곳은 대개 어르신들의 차지다. 지나갈 때면 옹기종기 모여 늘 바둑을 두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흥미가 생기기도 하지만 실은 바둑을 전혀 모른다. 백돌과 흑돌 중 어느 것이 먼저인지, 어떻게 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 제목인 ‘호구’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은 그 호구였다. “너 호구야?” 할 때의 그 호구. 물론 책 속에서 호구는 여러 뜻을 가진다. 바둑의 용어이기도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만만해서 이용당하는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바둑에서 호구는 돌 세 점이 둘러싸여 한쪽만 뚫린 때를 뜻한다고 한다. “검은 돌 석 점이 세모나게 펼쳐진 모양이 호랑이를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으니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는 딱 책 내용을 설명해 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책은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호구’의 상황 속 소년의 이야기다. 주인공 ‘윤수’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 할아버지와 셋이서 살고 있다. 마냥 쉽고, 편안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윤수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고통과 혼란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는 바둑을 두는 할아버지로부터 세상을 배운다. 강해져야 한다. 큰 사람이 돼라. 이에 자신을 괴롭히는 ‘권이철’과 같아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도리어 자신이 다른 친구들을 괴롭힌다.
책 속 주인공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가슴에 깊이 꽂혀서 영영 지워지지 않은 채 남고 싶었다. 그러니 이 욕망은 불가항력이었다.
호구보다는 개새끼가 오래 남잖아.
134
그런 윤수를 보며 할아버지는 그저 행복한 놈이 되라고 다시금 말한다. 웃는 게 이기는 것이라며 말이다.
“웃는 게 이기는 거다.”
할아버지는 웃어야 이긴다 했다. 무엇에게? 인생에게.
그깟 거에게 이겨서 무엇이 남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본인 이름 석 자를 댄다. 최용남.
“칠십삼 년 뼈 빠지게 산 최용남이가 남지.”
93
작가는 사람은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 짓기 입체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책 속 윤수는 선인이자 악인인 딱 입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띤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윤수에게 말한다.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그리고 마지막, 윤수는 스스로 말한다. 행복할 때보다 불행할 때가 많지만 ‘지금’ 인생을 살고 있다고.
책 속 모든 이야기가 그 마지막 문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윤수가,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큰 사람과 작은 사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 행복과 불행. 세상에는 두 가지로 나뉘는 듯한 숱한 기준이 있다. 하지만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못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그저 각자의 길을 걷는다. 자신만의 삶의 모양새가 있는 것이다. 윤수가 하는 말도 그렇다. 지금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삶이라는 기다란 선 위에서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점을 찍으며 살아간다. 아직 찍어야 할 점들은 수없이 많다. 점이 모양이 어떻든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는 그것을 판단할 수 없다. 점이 너무 작든, 일그러졌든 혹은 아주 동그랗든, 선이 끝나지 않는 한은 모른다. 삶이란 다 끝나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나는 지금 인생을 살고 있어. 한 마디의 위로가 심심해서 좋았다. 윤수의 삶도, 고민도 그때의 나와 비슷했기에 마치 과거의 나 자신에게 다시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호구는 금방 술술 읽힌다.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자꾸만 삶을 저울질하게 된다면, 삶 그 자체에서 답을 얻고자 한다면 『호구』를 펼쳐봐도 좋겠다. 답을 찾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 호구를 탈출하는 신의 한 수일지도 모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