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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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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줄리아 사랑을 믿나요?


"아니요. 내가 말하는 사랑은 장님이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랑, 두려움보다 강한 사랑,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사랑, 시간이 흐르면 쇠락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하고, 우리를 번성하게 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사랑을 뜻해요. 이기심과 죽음을 뛰어넘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말하는 거예요"

 

<심장 박동을 듣는 기술>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간 미얀마에서 줄리아는 우 바 라는 사람에게 아버지의 과거를 듣게 된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이 있다는 믿음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소포를 받는다. 그 안에는 마지막 심장 소리를 들은 지도 5864일, 140736시간 동안이나 어느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 관한 진실을 찾기 위해 미얀마로 간다고 말하러 어머니를 찾게 된다. 어머니는 과거를 포함해 모든 것을 공유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진실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닿을 수 없는 평행한 세상 속에서 지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이미 예전에 나를 떠난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고 줄리아는 아버지의 고향을 향해 떠난다.

 

 아버지의 어머니는 어릴 적 강에서 물에 휩쓸려 죽은 동생에 빈자리에 대한 결핍을 갖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이 스스로를 엮은 복잡한 의식이었다. 아기의 고사리 같은 손이 엄마 손을 꼭 쥐며 무언가를 느끼려는 것처럼 그녀도 그 무언가가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주길 원했다. 하지만 불길한 날에 태어난 틴 윈이 감당하기 힘든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떠나버린다. 금방 돌아온다는 엄마의 말을 믿으며 틴 윈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며 쓰러진 틴 윈을 돌바준 사람은 수치였다. 그녀는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틴 윈의 편이 되주었다.

 

 엄마가 사라진 후 틴 윈의 세계는 뿌연 안개로 뒤덮였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뚜렷하게 들리지만 시각적 이미지는 더 이상 뭔가를 구분해 낼 수 없게 되었다. 눈이 완전히 먼다고 해도 지금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상상을 할 수가 없던 어느날 그의 세상은 완전히 뿌연 안개 속에 집어 삼켜졌다. 기억 속에 있는 다른 시각적인 인상들도 모두 희미해질까? 언젠가는 기억과 상상의 창으로만 세상을 보게 될까? 틴 윈은 소리에 집중했다.


 우 메이라는 스님으로부터 틴 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된 본질을 보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눈에 지나치게 의지해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놓치는 것이 있음을 스님은 틴 윈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면서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보다 강한 오직 단 하나가 있음을 말하며 틴 윈을 위로한다. 틴 윈은 그것을 찾아내려 한다.


 어느날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바로 앞에 다가온 미밍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의 심장소리와 함께 틴 윈의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던 그가 비로소 자신이 머물 곳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그녀에게 다가설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두려움이 솟아났다.

 

우리가 눈에 지나치게 의지해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놓치는 것들 중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던 틴 윈은 비로소 자신이 있는 곳을 알게 된다.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바로 앞에 다가온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그가 들은 소리는 바로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라는 알게 되자 틴 윈의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내밀한 정보를 공유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솟아났다.

 

 우 메이의 말이 자꾸만 뇌리에 스쳤다. "틴 윈,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스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뭔가요?"

 

 보지 못하는 틴 윈이 걷지 못하는 미밍을 업고 부화하지 않은 새끼의 심장 소리를 찾아낸다.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새 둥지를 발견해낸 것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심장소리를 공유하게 된다. 그녀의 심장 소리와 함께 하는 순간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미밍의 심장 소리를 듣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

 

 “난 그녀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표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종종 궁금했어요.” (...) "그건 사랑이에요. 사랑은 우리를 아름답게 해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것도 조건 없이 사랑하는데 추한 사람이 있을까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일 거에요.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 바의 말처럼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을 것이다, 어머니만 몰랐을 뿐, 어머니만 믿지 못했을 뿐, 왜냐하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줄리아는 틴 윈의 사랑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에 다가설수록 그들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토록 서로를 그리면서 함께 할지 못한 그들을 향한 안타까움에... 하지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둘의 심장박동 소리는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틴 윈이 눈을 감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무엇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 속삭임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때맞춰 왔다. 너무 늦지 않게.

 

 이처럼 주변사람들에게 끝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게 만드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서 줄리아는 아버지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마침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일부분을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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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열반 - 김아타 산문
김아타 지음 / 박하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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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의 열반>은 김아타 작가가 작업 과정에서 세상과 만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관계에 던진 생각들을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장미의 열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을 나름대로 이해해 볼 수 있었다. 

 작가는 매일 같은 시간 하루에 한 컷씩 장미가 만개했다가 이내 시들어 바싹 말라버리는 장면을 찍게 된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향이 사라지고 바싹 마른 장미를 불태웠을 때 뇌를 마비시킬 듯한 강렬한 향기를 맡는다. 색, 향, 형태 같은 장미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을 해체했을 때 멈춰있던 생각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타我他. 즉 나와 타자, 나와 세계와의 직접적인 만남의 관계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서 작가는 어떤 것을 보는 것만으로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 이후에 그는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더듬어 보면서 무한한 새로운 세상에서 나를 일깨우는 작업을 해나간다.  그 중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것을 표현해낸 해체 시리즈가 인상적이었다. 해체의 모든 과정은 생과 사를 아우르는 치열한 투쟁의 연속이만, 지나고 보면 모두 자연스러울 뿐이다. 

 '얼음의 독백'은 마오쩌뚱, 마릴린먼로, 아타 등의 초상을 얼음 조각으로 만들어 녹아가는 과정을 장시간 노출로 찍어나간다. 그리고 다시 녹아내린 물을 108개의 유리잔에 담는다든지, 1000개의 그릇에 담아 새로운 풀꽃을 피우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마오쩌뚱이라는 딱딱한 관념이 녹아내려 야윈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물이 된 것을 다시 풀꽃이라는 생명으로 표현해낸 것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는 사진은 눈에 보이는 대상의 기록하고 재현해낸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랜 방황과 고민 끝에서 나온 나만의 법을 통해서 관조, 몰입, 해체의 과정을 통해 나와 세상은 다가서는 모습을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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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안아주기 - 그가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요
김선희 지음 / 쌤앤파커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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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못하는, 상처받은, 화내지 못하는 내 남자 안아주기 
지은이 : 김선희 임상심리전문가 / 펴낸이 : 쌤앤파커스 


남자인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고 싶은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상처받은 남자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여성의 지혜에 공감하고 싶기도 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녀 앞에서 어떻게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야 할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상처를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남자로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그 사람이 내게 어떻게 다가올지를 생각보면서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아프고 힘겹지만 상대방의 상처에 눈길을 주고 그의 말에 귀길울여주고 안아주는 것. 이러한 사랑이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그런 관계를 위한 실마리를 이 책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연인과 부부라지만 나 아닌 다른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상은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처를 다루는 과정이다. 

<울어본 적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우는 사람이 불행한 게 아니라 울어본 적 없는 사람이 불행한 것이다.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마음이 살아 있다는 건 상황에 맞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 슬픔을 느끼고 눈물 흘릴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정화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운다'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에 인색하다, 아니 표현할 줄 모른다. 이는 강해야 한다는 자아상 내지는 타인인의 기대에 밀려서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자의 눈물은 밖으로 흐르지 못하고 마음 속에 응어리져서 남아있다. 혹시라도 눈물이 나면 구석진 곳에서 혼자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은 곧 상대방이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세우는 것과 같다. 온전한 감정의 표현과 상대방과 정서적인 관계, 서로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부둥켜안을 수 있는 관계를 위해서는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다가설 필요가 있다. 감정은 인간의 생동감 그 자체이다 .  감정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듣고 울고 싶을 때 그런 나를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 앞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자.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방법으로 책의 일부분을 짧게 옮겨보려 한다. 

-붙잡다, 되찾다 
 갈등이 관계에 불가피한 부분임을 인정하고 갈등이 닥쳤을 때 성숙하게 풀어가면 두 사람 사이에는 인내력과 진정한 친밀감이 겨울을 이겨낸 봄꽃처럼 피어난다. 내가 나를 과감히 내려놓고 상대방 마음을 보듬을 때 갈등은 해결되기 시작하고 친밀감이 깊어진다. 
-놓아버리다 
 기대와 소망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과한 기대, 집착, 갈망은 실망과 분노만을 낳고 오히려 나를 망친다.  상대방에 대한 과한 기대를 내려놓자. 사랑이 깃든 관계는 상대방의 한계를 너그럽게 묵인하는 넓은 마음이 만들어낸다. 편안하고 현실적인 관계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온전함이다. 
-나누다 
 소중한 사람들과 일상을 나눈다는 것. 가장 울림이 깊은 기쁨과 행복은 일상생활 속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맺음에서 나온다. 소중한 타인과의 깊은 대화는 우리의 존재를 풍요롭게 채워준다. 

상처를 잘 다루면 그것이 분명히 별이 되어 우리의 마음을, 관계를, 우리 자신을 빛나게 해준다고 한다. 쓰고 달콤한 인생에 있어서 상처가 보기 싫은 흉터로 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을 달래주고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마음 속에 아로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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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에바 로만 지음, 김진아 옮김 / 박하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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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지은이 : 에바 로만 / 옮긴이 : 김진아  / 펴낸이 : (주)쌤앤파커스 임프린트 박하 

 

 

"내가 정신병원에 간 날은 목요일이었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데는 

독자들 역시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끝없는 피곤과 슬픔, 무기력에 지쳐서 어느 순간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1주째,

오랫동안 혼자서 무기력한 삶을 끌고 왔고 이제 무엇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식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거기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가끔 흐느껴 우는 것뿐이다. (...) 그곳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을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멈추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안심이었다. >

 

무기력한 삶에 지쳐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순간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많은 신경을 쓰며 사랑받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모두가 바쁜데 나만 한가하면 뒤쳐지므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 무엇인가를 하는데 느껴지는 지루함.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며 부러워하고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지레 체념하기...

살아가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어디론가 숨가쁘게 내달리거나 상처받고 주저앉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 .

 

 

< 어느 순간 움직이는 끈이 풀려 생명이 없는 인형이 되어 나를 둘러싼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난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 내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이기적이거나 게으른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죄책감 없이 마음 놓고 아파해도 된다. >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을만큼 아플 때 우리에게는 책에서 언급된 '바보들의 자유' 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보들의 자유'란 정신병원에서 더 이상 이상해질 수 없으니 남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이, 잘하고 못하고 할 거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것.

그녀가 써내려간 8주간의 기록을 차례대로 읽기보다는 마음이 가는대로 건너뛰기도 하고 이전의 기록을 들춰보는 등 편하게 읽어나갔다. 

글자를 읽기도 지치고 눈이 감겨올 때쯤 누군가에게 책을 건네주고 나중에 차 한 잔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곧 생각을 그만두고 이불을 끌어당겨서 덮는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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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도그 1
루카 디 풀비오 지음, 천지은 옮김 / 박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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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감상평] 다이아몬드 도그 - 루카디 폴비오 

2014/03/31 16:20  수정  삭제

복사http://blog.naver.com/el_tang9/90193153781



 


 

지은이 : 루카 디 풀비오 지음 / 옮긴이 : 천지은 옮김 / 펴낸곳 : 샘앤파커스 임프린트 박하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_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위의 구절은 내가 좋아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GO』에 인용된 글이다. 재일조선인 3세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책에서 주인공 스기하라는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일개 부초다."라고 말한다. 부초. 떠다니는 풀처럼 재일조선인은 한국과 일본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수한 차별과 삐딱한 시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헤맨다.

 

『다이아몬드 도그』에서는 미국인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본다. 이탈리아인 체타가 노예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인 나탈레(미국이름으로 크리스마스)와 함께 미국에 들어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은 1920년대 종교적인 이름으로 흑인들이 많이 쓰고 있었는데 백인들은 그들을 니그로라 부르며 무시하고 배척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발과 까만눈동자 그리고 니그로식 이름을 가진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혼자서 다이아몬드 도그라는 패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소설에서 미국인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 체타는 크리스마스가 니그로식 이름이지만 미국인이라데 만족한다. 체타는 자신을 창녀가 아닌 한 여자로 대해주고 진정한 미국인이 되게 해주겠다는 남자를 만나지만 짧은 공연이 막을 내리듯 자신은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게 너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려 한다.

 

체타가 어린 크리스마스에게 해준 <<늑대개>> 이야기에서 강하고 야만적인 늑대개가 착한 사람을 만나거나 운명과 마주해 미국사람이 되어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크리스마스에게 말한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우리 이야기야. 우리는 늑대개와 닮았어. 강하지만 야만스럽지.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야만적인 사악한 사람들을 만나지. 그냥두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우리가 야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야. 우린 누구보다 강해, 크리스마스. 이걸 항상 기억해야 해. 착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마침내 운명이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되면 우릳 늑대개처럼 힘을 발휘하게 되는 거야. 미국 사람이 되는 거지. 그럼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을 거야. 이 책은 그걸 말해주고 있어."

                                                                                          (...) 

"그래, 너는 늑대야, 우리 아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네 안에 있는 늑대가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무슨 일에도 지지 않게 해줄 거야. 그렇지만 늑대개처럼 너도 사랑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단다. 귀를 잘 귀울이지 않으면 그 목소리는 우리 동네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 거야. 그 불량배들은 야만적인 늑대가 아니야. 미친개들이지."

                                                                                           (...)

"여기 책에 나온 것처럼, 너는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면 되는 거야......." (303P)

 


 

또 다른 중대한 축을 이루는 것이 루스와의 사랑이다. 매번 루스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크리스마스는 조금씩 자라며 어른이 되어간다. 유대계 미국인이면서 부유한 집안의 소녀인 루스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며 가난한 소년인 크리스마스를 갈라놓은 광활한 바다를 메워주는 것은 한시도 떼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과 마음이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삶에 자리하고 있었다. 루스 역시 크리스마스를 사랑하지만 이 감정을 빌이 사기와 폭력과 가위로 잘라내 상처를 남겼기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을 불결하게 여겨서 크리스마스와 거리를 두게 된다. 이처럼 현실적인 벽과 루스가 입은 상처가 그들의 사랑이 자라날 곳을 가로막아 사랑이 커가는 한편 가슴 속에 묻어둘 수 밖에 없는 격한 사람의 감정이 피어나지 못하게 했다.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루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기차역에서 크리스마스는 차마 창 문을 두드려 루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루스는 크리스마스가 선물해준 하트 목걸이의 표면을 문지르며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렇게 떠나도 염려할 게 없다고 애써 생각하며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 밖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이마를 덮고 있는 헝클어진 금빛 머리칼. 까맣고 깊은 눈동자. 그녀는 몸이 굳는 듯했다. 곧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눈물 속에 흐릿해졌다.

크리스마스는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이제는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뚫어지게 향했다. 눈물이 글썽이는 둘의 시선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두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진실이, 두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강한 사랑이 담겨져있었다. 두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것보다 더한 고통까지.

기차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나러 갈게." 크리스마스가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루스가 떠나고 2년. 열여덟 살이 된 크리스마스의 얼굴에는 냉소와 심각함이 잔뜩 배어있는 차가운 표정이 감돌았다. 여전히 루스를 사랑하는 개새끼. 수많은 인파 속에 떠밀리며 마치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던 그날의 기차역에서 루스의 눈빛,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선이 기차와 함께 점점 작아지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내밀 수 없었고 "내가 만나러 갈게."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런 크리스마스에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서 아주 멀리에 있는 어떤 여자아이, 루스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루스는 크리스마스와 연락이 단절되고 빌에 의해 잘린 손가락은 세상은 차갑고 지옥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루스는 내부에서 짓누르는 무게에 눌려 견뎌내지 못하고 손가락을 자르는 가위 소리같은 귀청을 찢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순간을 견디게 해주고 받아들이게 해준 것이 바로 카메라였다. 루스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를 통해서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루스는 유명한 사진사가 되고, 크리스마스는 <다이아몬드 도그>를 방송하면서 이야기꾼이자 할리우드에서 극본가로 초청을 받기도 한다. 루스에게는 크리스마스만이 손가락이 아홉 개인 자신을 위해 수학을 바꿔버리겠다고 말할 수 있고, 오직 그만이 아홉 송이의 꽃을 선물하며 미국인들에게 숫자를 아홉까지만 세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흰 종이를 앞에 두고 타자기 위에 손을 올린 크리스마스에게 운명이 만들어내는 첫 문장.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낸 글의 시작은 루스였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만나게 되고 행복한 한 순간을 보내지만 루스 안에 고통이, 잘려진 손가락이 절망의 파도가 몰아쳐와 목을 조여온다. '그녀가 찾아 헤맬수록 행복은 폭력과 불행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딸깍 소리와 함께.(313p)' 이런 까닭에 루스는 행복과 폭력도 없는 곳, 그녀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는 미지근한 감정이 있는 곳으로 도망친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그때 내가 너를 찾을게. 이번에는 내 차례야."(324p)라며 크리스마스를 뒤로하고 그녀는 사라진다.

 

 

한 파티에서 루스와 빌은 서로를 알아본다. 공포로 굳어버린 루스는 도망치는 빌의 눈에서 자신이 가지 공포와 비슷한 것을 본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포만이 존재했는지 모른다. 공포심이 걷히고 멈춰있는 시간이 흐른다. 새장 속에서 등을 웅크린채 초점 없는 눈에 굳어버린채 있던 카나리아는 열린 문으로 나선다. 루스는 한 여자로서 크리스마스 앞에 서기 위해 간다.

 

크리스마스는 극본 <다이아몬드 도그>를 쓴다. 인물들의 감정이 절실하게 표현된 얽히고설킨 관계로 얽힌 수많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삶의 가치와 그들의 감정이 현실적이면서도 절실하게 표현해낸 이야기로 바로 뉴욕을 담아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미소와 다가오는 루스의 발소리. 이윽고 막이 오르고 그들은 손을 잡는다.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뉴욕 시민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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