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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박동을 듣는 기술
얀 필립 젠드커 지음, 이은정 옮김 / 박하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줄리아 사랑을 믿나요?
"아니요. 내가 말하는 사랑은 장님이 앞을 볼 수 있게 하는 사랑, 두려움보다 강한 사랑, 삶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사랑, 시간이 흐르면 쇠락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게 하고, 우리를 번성하게 하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사랑을 뜻해요. 이기심과 죽음을 뛰어넘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말하는 거예요"
<심장 박동을 듣는 기술>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를 찾기 위해 간 미얀마에서 줄리아는 우 바 라는 사람에게 아버지의 과거를 듣게 된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만들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이 있다는 믿음을.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소포를 받는다. 그 안에는 마지막 심장 소리를 들은 지도 5864일, 140736시간 동안이나 어느 여자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낸 아버지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 관한 진실을 찾기 위해 미얀마로 간다고 말하러 어머니를 찾게 된다. 어머니는 과거를 포함해 모든 것을 공유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진실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닿을 수 없는 평행한 세상 속에서 지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가 이미 예전에 나를 떠난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고 줄리아는 아버지의 고향을 향해 떠난다.
아버지의 어머니는 어릴 적 강에서 물에 휩쓸려 죽은 동생에 빈자리에 대한 결핍을 갖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워준 것이 스스로를 엮은 복잡한 의식이었다. 아기의 고사리 같은 손이 엄마 손을 꼭 쥐며 무언가를 느끼려는 것처럼 그녀도 그 무언가가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주길 원했다. 하지만 불길한 날에 태어난 틴 윈이 감당하기 힘든 큰 슬픔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하고 그를 떠나버린다. 금방 돌아온다는 엄마의 말을 믿으며 틴 윈은 하염없이 기다린다. 오지 않은 엄마를 기다리며 쓰러진 틴 윈을 돌바준 사람은 수치였다. 그녀는 사람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을 거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장 먼저 틴 윈의 편이 되주었다.
엄마가 사라진 후 틴 윈의 세계는 뿌연 안개로 뒤덮였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뚜렷하게 들리지만 시각적 이미지는 더 이상 뭔가를 구분해 낼 수 없게 되었다. 눈이 완전히 먼다고 해도 지금 많은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상상을 할 수가 없던 어느날 그의 세상은 완전히 뿌연 안개 속에 집어 삼켜졌다. 기억 속에 있는 다른 시각적인 인상들도 모두 희미해질까? 언젠가는 기억과 상상의 창으로만 세상을 보게 될까? 틴 윈은 소리에 집중했다.
우 메이라는 스님으로부터 틴 윈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참된 본질을 보는 법을 배운다. 우리가 눈에 지나치게 의지해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놓치는 것이 있음을 스님은 틴 윈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면서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보다 강한 오직 단 하나가 있음을 말하며 틴 윈을 위로한다. 틴 윈은 그것을 찾아내려 한다.
어느날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바로 앞에 다가온 미밍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의 심장소리와 함께 틴 윈의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던 그가 비로소 자신이 머물 곳을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그녀에게 다가설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며 두려움이 솟아났다.
우리가 눈에 지나치게 의지해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놓치는 것들 중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던 틴 윈은 비로소 자신이 있는 곳을 알게 된다.
이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었을 때 바로 앞에 다가온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그가 들은 소리는 바로 그녀의 심장박동 소리라는 알게 되자 틴 윈의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내밀한 정보를 공유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음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솟아났다.
우 메이의 말이 자꾸만 뇌리에 스쳤다. "틴 윈,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스님,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는 것은 뭔가요?"
보지 못하는 틴 윈이 걷지 못하는 미밍을 업고 부화하지 않은 새끼의 심장 소리를 찾아낸다.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 새 둥지를 발견해낸 것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심장소리를 공유하게 된다. 그녀의 심장 소리와 함께 하는 순간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미밍의 심장 소리를 듣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
“난 그녀의 아름다움과 빛나는 표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종종 궁금했어요.” (...) "그건 사랑이에요. 사랑은 우리를 아름답게 해요.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 그것도 조건 없이 사랑하는데 추한 사람이 있을까요?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질문일 거에요. 그런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 바의 말처럼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했을 것이다, 어머니만 몰랐을 뿐, 어머니만 믿지 못했을 뿐, 왜냐하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줄리아는 틴 윈의 사랑방식을 이해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에 다가설수록 그들의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토록 서로를 그리면서 함께 할지 못한 그들을 향한 안타까움에... 하지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그 둘의 심장박동 소리는 전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틴 윈이 눈을 감고 그녀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무엇을 볼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 속삭임 그는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때맞춰 왔다. 너무 늦지 않게.
이처럼 주변사람들에게 끝내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게 만드는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통해서 줄리아는 아버지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마침내 자신이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일부분을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