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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에바 로만 지음, 김진아 옮김 / 박하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
지은이 : 에바 로만 / 옮긴이 : 김진아 / 펴낸이 : (주)쌤앤파커스 임프린트 박하
"내가 정신병원에 간 날은 목요일이었다."
내가 미친 8주간의 기록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낸 이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데는
독자들 역시 무의미하게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끝없는 피곤과 슬픔, 무기력에 지쳐서 어느 순간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 1주째,
오랫동안 혼자서 무기력한 삶을 끌고 왔고 이제 무엇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인식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나는 거기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가끔 흐느껴 우는 것뿐이다. (...) 그곳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을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멈추고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안심이었다. >
무기력한 삶에 지쳐 끈이 끊어진 인형처럼 나를 둘러싼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순간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많은 신경을 쓰며 사랑받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모두가 바쁜데 나만 한가하면 뒤쳐지므로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 무엇인가를 하는데 느껴지는 지루함.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며 부러워하고 따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지레 체념하기...
살아가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풍경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어디론가 숨가쁘게 내달리거나 상처받고 주저앉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다 .
< 어느 순간 움직이는 끈이 풀려 생명이 없는 인형이 되어 나를 둘러싼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난 사실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었다. (...) 내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다. 이기적이거나 게으른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죄책감 없이 마음 놓고 아파해도 된다. >
그 무엇도 느낄 수 없을만큼 아플 때 우리에게는 책에서 언급된 '바보들의 자유' 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보들의 자유'란 정신병원에서 더 이상 이상해질 수 없으니 남들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이, 잘하고 못하고 할 거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것.
그녀가 써내려간 8주간의 기록을 차례대로 읽기보다는 마음이 가는대로 건너뛰기도 하고 이전의 기록을 들춰보는 등 편하게 읽어나갔다.
글자를 읽기도 지치고 눈이 감겨올 때쯤 누군가에게 책을 건네주고 나중에 차 한 잔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곧 생각을 그만두고 이불을 끌어당겨서 덮는다. 그리고 스르르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