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 도그 1
루카 디 풀비오 지음, 천지은 옮김 / 박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책 감상평] 다이아몬드 도그 - 루카디 폴비오 

2014/03/31 16:20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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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루카 디 풀비오 지음 / 옮긴이 : 천지은 옮김 / 펴낸곳 : 샘앤파커스 임프린트 박하 

 

이름이란 뭐지? 장미라 부르는 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그 향기는 변함이 없는 것을 _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위의 구절은 내가 좋아하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GO』에 인용된 글이다. 재일조선인 3세인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책에서 주인공 스기하라는 “나는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니고 일개 부초다."라고 말한다. 부초. 떠다니는 풀처럼 재일조선인은 한국과 일본 어디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수한 차별과 삐딱한 시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헤맨다.

 

『다이아몬드 도그』에서는 미국인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물어본다. 이탈리아인 체타가 노예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인 나탈레(미국이름으로 크리스마스)와 함께 미국에 들어서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은 1920년대 종교적인 이름으로 흑인들이 많이 쓰고 있었는데 백인들은 그들을 니그로라 부르며 무시하고 배척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발과 까만눈동자 그리고 니그로식 이름을 가진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혼자서 다이아몬드 도그라는 패거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소설에서 미국인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답을 찾으려고 한다. 체타는 크리스마스가 니그로식 이름이지만 미국인이라데 만족한다. 체타는 자신을 창녀가 아닌 한 여자로 대해주고 진정한 미국인이 되게 해주겠다는 남자를 만나지만 짧은 공연이 막을 내리듯 자신은 미국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에게 너는 미국인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주려 한다.

 

체타가 어린 크리스마스에게 해준 <<늑대개>> 이야기에서 강하고 야만적인 늑대개가 착한 사람을 만나거나 운명과 마주해 미국사람이 되어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크리스마스에게 말한다.

 

"뉴욕에 처음 왔을 때 우리 이야기야. 우리는 늑대개와 닮았어. 강하지만 야만스럽지.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야만적인 사악한 사람들을 만나지. 그냥두면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우리가 야만적이기만 한 건 아니야. 우린 누구보다 강해, 크리스마스. 이걸 항상 기억해야 해. 착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마침내 운명이 우리 쪽으로 기울게 되면 우릳 늑대개처럼 힘을 발휘하게 되는 거야. 미국 사람이 되는 거지. 그럼 더 이상 야만적이지 않을 거야. 이 책은 그걸 말해주고 있어."

                                                                                          (...) 

"그래, 너는 늑대야, 우리 아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네 안에 있는 늑대가 너를 강하게 만들어주고, 무슨 일에도 지지 않게 해줄 거야. 그렇지만 늑대개처럼 너도 사랑하는 목소리를 들어야 한단다. 귀를 잘 귀울이지 않으면 그 목소리는 우리 동네 수많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말 거야. 그 불량배들은 야만적인 늑대가 아니야. 미친개들이지."

                                                                                           (...)

"여기 책에 나온 것처럼, 너는 너만의 이야기를 만들면 되는 거야......." (303P)

 


 

또 다른 중대한 축을 이루는 것이 루스와의 사랑이다. 매번 루스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크리스마스는 조금씩 자라며 어른이 되어간다. 유대계 미국인이면서 부유한 집안의 소녀인 루스와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며 가난한 소년인 크리스마스를 갈라놓은 광활한 바다를 메워주는 것은 한시도 떼지 않고 서로를 응시하는 그들의 눈빛과 마음이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적인 삶에 자리하고 있었다. 루스 역시 크리스마스를 사랑하지만 이 감정을 빌이 사기와 폭력과 가위로 잘라내 상처를 남겼기 때문에 사랑이란 감정을 불결하게 여겨서 크리스마스와 거리를 두게 된다. 이처럼 현실적인 벽과 루스가 입은 상처가 그들의 사랑이 자라날 곳을 가로막아 사랑이 커가는 한편 가슴 속에 묻어둘 수 밖에 없는 격한 사람의 감정이 피어나지 못하게 했다.

 

캘리포니아로 떠나는 루스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기차역에서 크리스마스는 차마 창 문을 두드려 루스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루스는 크리스마스가 선물해준 하트 목걸이의 표면을 문지르며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렇게 떠나도 염려할 게 없다고 애써 생각하며 무심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 밖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었다. 이마를 덮고 있는 헝클어진 금빛 머리칼. 까맣고 깊은 눈동자. 그녀는 몸이 굳는 듯했다. 곧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눈물 속에 흐릿해졌다.

크리스마스는 군중을 헤치고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이제는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를 뚫어지게 향했다. 눈물이 글썽이는 둘의 시선에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두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진실이, 두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보다 더욱 강한 사랑이 담겨져있었다. 두 사람이 견뎌낼 수 있는 것보다 더한 고통까지.

기차가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만나러 갈게." 크리스마스가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루스가 떠나고 2년. 열여덟 살이 된 크리스마스의 얼굴에는 냉소와 심각함이 잔뜩 배어있는 차가운 표정이 감돌았다. 여전히 루스를 사랑하는 개새끼. 수많은 인파 속에 떠밀리며 마치 자신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 않던 그날의 기차역에서 루스의 눈빛,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시선이 기차와 함께 점점 작아지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내밀 수 없었고 "내가 만나러 갈게."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런 크리스마스에게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서 아주 멀리에 있는 어떤 여자아이, 루스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라고 있다.

 

한편 루스는 크리스마스와 연락이 단절되고 빌에 의해 잘린 손가락은 세상은 차갑고 지옥 같은 곳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루스는 내부에서 짓누르는 무게에 눌려 견뎌내지 못하고 손가락을 자르는 가위 소리같은 귀청을 찢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순간을 견디게 해주고 받아들이게 해준 것이 바로 카메라였다. 루스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를 통해서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루스는 유명한 사진사가 되고, 크리스마스는 <다이아몬드 도그>를 방송하면서 이야기꾼이자 할리우드에서 극본가로 초청을 받기도 한다. 루스에게는 크리스마스만이 손가락이 아홉 개인 자신을 위해 수학을 바꿔버리겠다고 말할 수 있고, 오직 그만이 아홉 송이의 꽃을 선물하며 미국인들에게 숫자를 아홉까지만 세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흰 종이를 앞에 두고 타자기 위에 손을 올린 크리스마스에게 운명이 만들어내는 첫 문장.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담아낸 글의 시작은 루스였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결국 그들은 만나게 되고 행복한 한 순간을 보내지만 루스 안에 고통이, 잘려진 손가락이 절망의 파도가 몰아쳐와 목을 조여온다. '그녀가 찾아 헤맬수록 행복은 폭력과 불행을 동반하게 될 것이다. 딸깍 소리와 함께.(313p)' 이런 까닭에 루스는 행복과 폭력도 없는 곳, 그녀에게 모든 것이 허락되는 미지근한 감정이 있는 곳으로 도망친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그때 내가 너를 찾을게. 이번에는 내 차례야."(324p)라며 크리스마스를 뒤로하고 그녀는 사라진다.

 

 

한 파티에서 루스와 빌은 서로를 알아본다. 공포로 굳어버린 루스는 도망치는 빌의 눈에서 자신이 가지 공포와 비슷한 것을 본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공포만이 존재했는지 모른다. 공포심이 걷히고 멈춰있는 시간이 흐른다. 새장 속에서 등을 웅크린채 초점 없는 눈에 굳어버린채 있던 카나리아는 열린 문으로 나선다. 루스는 한 여자로서 크리스마스 앞에 서기 위해 간다.

 

크리스마스는 극본 <다이아몬드 도그>를 쓴다. 인물들의 감정이 절실하게 표현된 얽히고설킨 관계로 얽힌 수많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삶의 가치와 그들의 감정이 현실적이면서도 절실하게 표현해낸 이야기로 바로 뉴욕을 담아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미소와 다가오는 루스의 발소리. 이윽고 막이 오르고 그들은 손을 잡는다.

 

무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뉴욕 시민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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