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비 아주머니가 그린 그림은 있었어. 연필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서툰 솜씨였지만 누가 봐도 아저씨였어. 그 그림도 없어져버렸지만・・・・・・ 그래도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새비 아저씨는 그만큼더 사는 거잖아." - P81

내가 누리는 특권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묵해야 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느꼈던 외로움에 대해서.
내게 마음이 없는 배우자와 사는 고독에 대해서 입을 다문 채 일을하고, 껍데기뿐일지라도 유지되고 있었던 결혼생활을 굴려나가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야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 껍데기들을 다 치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깊이 잠든 남편 옆에서 소리 죽여 울던 내 모습이, 논문이 잘 써지지 않으면 내 존재가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나를 다그치던 내모습이. - P85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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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그러니까 1이 기준인 거네."
수환이 말했다.
"그렇지.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되지." - P25

요양원 사람들은 수환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연락 두절인 영경에게 품었던 단단한 적의가 푹 끓인 무처럼 물러져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바뀐 것을 느꼈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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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가 멋대로 삶을 망치게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 우리에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정말이지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속수무책……… - P301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갈린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 P303

 나는 내가 은근히 정선이의 삶이내 생각대로 나아가길 바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멋대로 남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최악을 상상하며 내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행 포르노를 즐겨보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길 바랐다. 하지만 또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진 않았다. 왜냐고 그건 나의 마음에 해가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블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 만큼이나 내마음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일이었다. - P331

"설명할수록 내가 깎이는 기분이라 그랬어."
나는 그 말이 사무치도록 이해가 되어서 더 슬펐다. - P336

 나는 공유주택에서 원하는 걸 제대로 얻지 못했고 정선이는 어떤 식으로든 원하는 걸 얻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 P336

우리는 외따로 태어나서 홀로 자신을 길러낸 사람들이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어.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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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사는 걸 버텨왔지 싶었다. 내일과 내일모레의 일을 생각하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살아졌지.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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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야, 너 참 운좋다. 공모전에 당선된 후 엄마가 그렇게말했을 때, 해나는 화를 냈다. 내게 주어진 운이라곤 단 한 톨도 없다고. 나보다 열심히 산 사람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자신이 뱉은 그 말은 도리어 날카로운 낚싯바늘이 되어 해나의마음을 후볐다. 자기 연민이란 게 무서워. 대진에게 했던 그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보상은 결코 온전한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해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연이은 실패 후로도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삶은 젖은 나무판자처럼 쉽게 뒤틀렸다. 해나는 그렇게 훼손된 마음으로 쉽게 남을 판단하는사람이 되어버렸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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