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우리가 멋대로 삶을 망치게내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 우리에게 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정말이지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속수무책……… - P301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갈린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았다. 무언가를 대비하기 위해 삶을 갈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일이었다. 혹시 내가 삶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하는 일들이, 사실은 정말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무서워졌다. - P303
나는 내가 은근히 정선이의 삶이내 생각대로 나아가길 바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멋대로 남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최악을 상상하며 내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불행 포르노를 즐겨보았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길 바랐다. 하지만 또 실제로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잘못되는 광경을 보고 싶어하진 않았다. 왜냐고 그건 나의 마음에 해가 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남의 블행을 소비하는 건 상대방을 멸시하는 것 만큼이나 내마음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일이었다. - P331
"설명할수록 내가 깎이는 기분이라 그랬어." 나는 그 말이 사무치도록 이해가 되어서 더 슬펐다. - P336
나는 공유주택에서 원하는 걸 제대로 얻지 못했고 정선이는 어떤 식으로든 원하는 걸 얻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 P336
우리는 외따로 태어나서 홀로 자신을 길러낸 사람들이고 지금은 함께 살고 있어.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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