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안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뒷걸음질쳤고 익숙한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다.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을지도모른다는 조바심 서린 두려움이 나를 장악했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만큼 강해질 수가 없을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래 울던 밤에 나는 나의 약함을, 나의 작음을 직시했다. - P156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 P1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누리는 특권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묵해야 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느꼈던 외로움에 대해서.
내게 마음이 없는 배우자와 사는 고독에 대해서. 입을 다문 채 일을하고, 껍데기뿐일지라도 유지되고 있었던 결혼생활을 굴려나가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야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 P8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라는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로 읽게 된 책. 각 단편마다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경영 평론가의 말대로 복잡한 사유를 능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뭔가 바로 이해하고 단정지을 수 없는 그런 소실집이다.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장편 두고온 여름도 읽어보고 싶다.

듀이의 충만한 표정이 깃든 자리에 남겨진 독자에게는 집요한 이해가 요청된다. 우리가 앞으로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제대로 선택하기 위해서라도, 독자는 성해나가 이끄는 이 복잡한 사유 속으로 들어가야 할것이다. 성해나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끝까지 능동적이어야 한다. - P347

어떤 현실의 한 단면은 그를 겪어나가는 나 자신도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비밀을 품는 법이다. 무슨 진실을잉태할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 P353

듯 한가지 면모로만 다가오지 않는다고.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153) 느끼는 ‘나‘의자유는 어쩌면 진짜를 ‘믿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진짜로
‘있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 P361

정이 흘러넘치고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그 안에서,나는 뜨거운 딤섬을 차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그대로 머금고 있었다. - P2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치 않다. 명예도,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
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장삼이 붉게 젖어든다. 무령을 흔든다. 잘랑거리는 무령 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가볍고도 묵직하게. - P1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비 아주머니가 그린 그림은 있었어. 연필로 그린 그림이었는데 서툰 솜씨였지만 누가 봐도 아저씨였어. 그 그림도 없어져버렸지만・・・・・・ 그래도 네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니까, 새비 아저씨는 그만큼더 사는 거잖아." - P81

내가 누리는 특권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묵해야 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며 느꼈던 외로움에 대해서.
내게 마음이 없는 배우자와 사는 고독에 대해서 입을 다문 채 일을하고, 껍데기뿐일지라도 유지되고 있었던 결혼생활을 굴려나가면서,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에는 눈길을 주지 않아야 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으니까.
그 껍데기들을 다 치우고 나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깊이 잠든 남편 옆에서 소리 죽여 울던 내 모습이, 논문이 잘 써지지 않으면 내 존재가 모두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누구보다도 잔인하게 나를 다그치던 내모습이. - P85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