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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러냐 페이퍼에 책이 두 권밖에 안들어가다니. 뜻밖에 생이별을 한 책들이 나를 째려보는데 내 컴실력을 의심하는 눈치다. 젠장, 아직도 머릿속에서 종은 울리고 책들도 울리고 나도 울고싶다고 이런 내가 싫어서.. 죽더라도 책독에 빠져 죽을란다. 나를 유혹한 세 잔째는,   

  

그는 김주원이다! 

김주원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아니, 만난 듯했다. 나만의 시크릿가든에서 그는 좋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신도 잘 찍을 수 있을거야' 어깨를 토닥토닥..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다른 책들도 다 그런가 하고 들춰보았는데 아니었다. DSLR(Disital Single Lens Reflex) 강의를 어릴적 자신의 모습을 찍어주신 아버지의 서툴지만 소중한 사진으로 시작한 점도 10점만점에 10점이었고, 많은 사진과 쉬운 설명으로 초보자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배려한 것도 10점만점만 아니라면 더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 나는 아직도 그의 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나는 

국민학교 1학년때 그림을 너무나 잘 그리고 싶었다. 뽑히면 교실 뒤 게시판에 걸리는 가문의 영광이! 어느날 내게도 찾아왔다. 초록 바탕에 떠있는 노랑 꽃 세 송이- 선생님이 거듭 네가 그린 게 맞냐며 물었고 나는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언니는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었지) 졸업할때 나는 미술 때문에 '올수'를 놓치고 1등을 떠나보냈다. 이 해묵은 원한을 왜 끄집어내냐고? 이책을 보고나니 과거 청산을 할 때가 온 거 같아서.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게 바로 내 얘기거든. 나는 두려워.. 그렇다면 만만한 스케치북으로 주변의 허리띠라든가 신발, 사물들을 드로잉해 보라더군. 모든 사소함도 쌓이면 작품이 된다나. 일상이 특별해지는 나만의 스케치북 어떨까. 술독 대신 스케치북을 끌어안고 있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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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크 완료했습니다! 첫 미션 수행 고생 많으셨습니다~

겁쟁이사자 2011-10-14 01:16   좋아요 0 | URL
내내 무한천공 가득히 홀로 펄럭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바흐의 'Air'- 공기처럼 가만히 다가와 숨쉴 만큼만 있다 가시는군요.. 더듬거리며 나는 또 어디로 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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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충분히 예상했을 터인데 왜 번번이 지는가. 일상의 자잘한 독 중에 우뚝선 술독 앞에서 나는 매번 절망한다. 어제 교보문고에서 만나고 온 책들이 조금 시들시들해진 이 시간에야 술독에서 탈출, 어제 '책독'에의 감동을 한잔 한잔 따라보련다. 제일잔은,   

공간(空間) 공감(共感) 

세로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 멕시코 건축가인 루이스 바라간의 '길라르디 주택' 표지문을 열고 꼬박 한 시간을 구경한 후 글쓴이인 김종진의 '헛간'으로 나왔다. 그 상쾌함이란!          이책을 통해 자기방 놔두고 거실 소파에서 자는 딸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매트리스와 매트릭스와의 관계라고 해야하나. 그방은 책상이 너무 커서 아이는 공부에의 부담감 때문에 마음놓고 잘 수가 없었나 보다. 매트리스가 침대가 되어야 하는데 그방에서는 매트릭스였기에 소파행을 택한 것이다.(미안 미안) 일상의 공간 경험이 지니는 의미를 편안하게 들려주는 '공간공감주(酒)' 를 어찌 마다할손가. 맛있게 한 잔~      

                                          

재유기(才遊記)라니, 손오공아   

오공아, 네가 시게오에게 근두운을 주었더냐, 신발 벗고 벽에 붙어서서 뭐하는 시추에이션인지 알 수가 없구나. 그래서 삼자대면을 할라치니 책이 비닐 내공으로 결계를 쳐서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끄응 안되겠구나 오공아, 삼장법사를 불러다오. 관심법으로 들어가자꾸나. 비닐 결계친 것들은 마음에 안들지만 시게온가 시계는 똑딱이란 애가 내공이 범상치 않구나. 인생 뭐 별거있냐는 듯이 희로애락에서 희락(喜樂)을 여의봉 삼아 위트와 유머가 담긴 권법을 내놓아 강호를 놀이로 평정했다는데 그의 내력이 진하게 녹아있는 '재유기'를 꼭 한 잔 맛보고 싶구나. 오공아, 삼장법사는 오고있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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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신간평가단 2011-10-11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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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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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과의 인연은 한 신문 연재를 통해서였다. '디아스포라 기행'이라는 다소 평범한 제목이었지만, 그의 글을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조선을 뛰어넘는 '우물 밖 개구리'를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로 잘 닦여진 세계 곳곳의 신작로들은 곳곳의 평범한 개구리들을 기행(紀行)의 여유나 기쁨보다는 기행(奇行) 내지는 기행(欺行)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막다른 골목이든 뚫린 골목이든 어기적대다가 비명횡사의 기로에 놓인 개구리인(人)들- 우물 밖 개구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내가 어느 골목에 있는지를 알고있다는 사실은 막연한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조금의 '물기'를 주었다. 

 깊은 강물과도 같던 그도 30년 전에는 물기 하나 없는 팍팍함으로 '짐짝'과도 같은 세월을 등에 지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서경식의 맨얼굴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책이다. 형들은 한국의 감옥에 있고 옥바라지하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버린 상황에서 남겨진 누이와 둘이 떠난 순례의 길- 그는 에필로그에서 '성묘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절박한 표정과 허둥대는 모습에 자신을 겹쳐놓는다. "이 사나이들은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무엇을 쫓고 있는가? 아니면 쫓기고 있는가? 고향에서 쫓겨난 난민인가? 혹은 괴로운 여행을 하는 순례자인가?"   

1983년 가을 첫 순례에 나선 서경식의 눈길을 붙든 건 벨기에의 도시, 브뤼주에서 만난 '캄비세스왕의 재판' 이라는 다소 생소한 그림이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의 전제군주인 캄비세스 왕에 의해 산채로 가죽 벗김을 당하는 판사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을 보며 그는 발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헤랄드 다비드 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화가에게서 추상열일(秋霜烈日)의 가열찬 장인정신과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르네상스의 피비린내를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당대에 보상받든 보상받지 않든 묵묵히 자신을 연마해온 이들이 역사의 계승과 전환을 가져왔음을 서경식은 이 그림을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첫 장에 전시함으로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거대담론만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 그림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해내면서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함몰되어 갔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나에게도 '캄비세스왕의 재판'은 끔찍한 상상력을 불러와 충격으로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극도의 사실성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표지이기도 한 모딜리아니의 '쑤띤초상'이 마음에 들어왔다.  

쑤띤의 이름 또한 '순례'를 통해 처음 알게된 화가이다. 리투아니아에서 가난한 양복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는데 모딜리아니와 가깝게 지내면서 초상을 남겼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서경식 형제들을 떠올렸다. 진지한 눈길로 정면을 응시하는 한쪽눈과 약간 빗기어나간 듯한 왼눈이 형제들의 같으면서도 다른 삶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쑤띤초상'. 서경식은 기묘하게 분열된 풍모를 감싸주는 가지런한 손의 소임을 가족사에서 해왔을 것이다. 지극히 편견이어도 어쩔 수 없을 터. 나에게 서경식의 글 역시도  얼굴마담 들의 야단법석 자리를 조용히 뒷정리해주는 '가지런한 손'으로 다가온다.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으로 사태를 앞서나가지 않으면서 역사 속의 한 개인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을 가리키는 그의 손이 믿음직스러워, 달을 보기보다 가리키는 손을 볼 때도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거나 승차거부를 말하는 대신 어떻게, 무엇을 타고 가야할지를 가리키는 그의 손에서 눈길을 거두기는 어려울지니..                        

서경식은 그림에, 조각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내기 시작해 그후로 백십여 곳 이상의 미술관과 박물관 순롓길을 이루어왔다. 그의 길이 나에게 말한다. "지나간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그렇다. 설사 내일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오늘 나는 책을 펼치고 한 장의 그림, 한 편의 글을 소리내어 읽을 것이다.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고 그의 길이 내게 말한다.   

이제 다시 에필로그의 시작이다. '성묘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순례 중인 서경식의 모습이자 우리의 자화상일진대 과연 신작로의 개구리들은 아직까지 무사할까. 잘 달려내기를..  개구리인들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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