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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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과의 인연은 한 신문 연재를 통해서였다. '디아스포라 기행'이라는 다소 평범한 제목이었지만, 그의 글을 따라다니다 보면 어느새 조선을 뛰어넘는 '우물 밖 개구리'를 여러 번 볼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로 잘 닦여진 세계 곳곳의 신작로들은 곳곳의 평범한 개구리들을 기행(紀行)의 여유나 기쁨보다는 기행(奇行) 내지는 기행(欺行)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막다른 골목이든 뚫린 골목이든 어기적대다가 비명횡사의 기로에 놓인 개구리인(人)들- 우물 밖 개구리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내가 어느 골목에 있는지를 알고있다는 사실은 막연한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조금의 '물기'를 주었다. 

 깊은 강물과도 같던 그도 30년 전에는 물기 하나 없는 팍팍함으로 '짐짝'과도 같은 세월을 등에 지던 시기가 있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서경식의 맨얼굴을 오롯이 볼 수 있는 책이다. 형들은 한국의 감옥에 있고 옥바라지하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버린 상황에서 남겨진 누이와 둘이 떠난 순례의 길- 그는 에필로그에서 '성묘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절박한 표정과 허둥대는 모습에 자신을 겹쳐놓는다. "이 사나이들은 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무엇을 쫓고 있는가? 아니면 쫓기고 있는가? 고향에서 쫓겨난 난민인가? 혹은 괴로운 여행을 하는 순례자인가?"   

1983년 가을 첫 순례에 나선 서경식의 눈길을 붙든 건 벨기에의 도시, 브뤼주에서 만난 '캄비세스왕의 재판' 이라는 다소 생소한 그림이었다.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의 전제군주인 캄비세스 왕에 의해 산채로 가죽 벗김을 당하는 판사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을 보며 그는 발길이 얼어붙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헤랄드 다비드 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화가에게서 추상열일(秋霜烈日)의 가열찬 장인정신과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나아가는 르네상스의 피비린내를 몸소 체험했다고나 할까. 당대에 보상받든 보상받지 않든 묵묵히 자신을 연마해온 이들이 역사의 계승과 전환을 가져왔음을 서경식은 이 그림을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첫 장에 전시함으로 조용히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거대담론만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이 그림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해내면서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함몰되어 갔는지를 고백하고 있다. 나에게도 '캄비세스왕의 재판'은 끔찍한 상상력을 불러와 충격으로 더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극도의 사실성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개인적으로는 이 책의 표지이기도 한 모딜리아니의 '쑤띤초상'이 마음에 들어왔다.  

쑤띤의 이름 또한 '순례'를 통해 처음 알게된 화가이다. 리투아니아에서 가난한 양복직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프랑스에서 활동하였는데 모딜리아니와 가깝게 지내면서 초상을 남겼다. 나는 이 그림을 보며 서경식 형제들을 떠올렸다. 진지한 눈길로 정면을 응시하는 한쪽눈과 약간 빗기어나간 듯한 왼눈이 형제들의 같으면서도 다른 삶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쑤띤초상'. 서경식은 기묘하게 분열된 풍모를 감싸주는 가지런한 손의 소임을 가족사에서 해왔을 것이다. 지극히 편견이어도 어쩔 수 없을 터. 나에게 서경식의 글 역시도  얼굴마담 들의 야단법석 자리를 조용히 뒷정리해주는 '가지런한 손'으로 다가온다.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으로 사태를 앞서나가지 않으면서 역사 속의 한 개인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을 가리키는 그의 손이 믿음직스러워, 달을 보기보다 가리키는 손을 볼 때도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거나 승차거부를 말하는 대신 어떻게, 무엇을 타고 가야할지를 가리키는 그의 손에서 눈길을 거두기는 어려울지니..                        

서경식은 그림에, 조각에 자신을 투영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내기 시작해 그후로 백십여 곳 이상의 미술관과 박물관 순롓길을 이루어왔다. 그의 길이 나에게 말한다. "지나간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  그렇다. 설사 내일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오늘 나는 책을 펼치고 한 장의 그림, 한 편의 글을 소리내어 읽을 것이다. 우울하면 우울한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오롯이 살아내야 한다고 그의 길이 내게 말한다.   

이제 다시 에필로그의 시작이다. '성묘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순례 중인 서경식의 모습이자 우리의 자화상일진대 과연 신작로의 개구리들은 아직까지 무사할까. 잘 달려내기를..  개구리인들 아자, 아자,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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