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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파도 파도 파도
이정록 지음, 윤정미 그림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이정록 시인의 동시집 《파도는 파도 파도 파도》는 제목처럼 리듬감 있고 귀여운 분위기의 시집일 거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깊고 울림 있는 시들이 담겨 있었다. ‘어린이 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아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시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시는 「별」이다. 할머니 손등의 점을 하늘의 별과 연결하며, 아이의 눈으로 삶과 죽음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손등 위에 하나둘 생겨난 점들을 통해 세월의 흐름을 읽고, 그걸 별로 비유하며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를 상상한다. 짧고 단순한 시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는 깊고 따뜻하다. 읽는 동안 나의 할머니, 나의 엄마, 그리고 내 아이가 자연스레 떠올라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이 시집에는 이런 감정을 자극하는 순간들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중심」에서는 반려견과의 이별을 담담하게 그려냈고, 「갈팡질팡」에서는 어른들의 이중적인 말과 행동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사람 안에는」은 사람의 생김새를 따라 묘사하다가 마지막에 ‘사람 안에는 사랑이 앉아 있어’라는 구절로 마무리되며, 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짧은 시 하나에 인생의 조각 같은 질문과 여운이 담겨 있는 시들이 많다.
《파도는 파도 파도 파도》에 실린 동시들은 아이들의 일상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황들을 소재로 하면서도, 시선은 날카롭고 사려 깊다. 유머와 따뜻함이 공존하고, 쉬운 말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그래서 아이는 물론, 어른 독자에게도 이 시집은 충분히 울림을 준다. 한 편의 시를 다 읽고 나면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거나, 잊고 지낸 감정을 떠올리는 일이 자주 생긴다.
작가의 말에서 이정록 시인은 “나의 글나무가 커지면, 그 그늘 아래 모인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과 꿈을 노래하고 싶다”고 전한다. 그 말처럼 이 시집은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충분한 그늘을 지닌 글들로 채워져 있다. 시를 읽으며 잠시 멈추고, 생각하고, 마음속을 다독이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어린이 동시집이지만,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문장들이 가득 담긴 책. 조용하고 단단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