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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까지 숨이 차면 - 제4회 위즈덤하우스 판타지문학상 청소년 부문 대상 수상작 ㅣ 텍스트T 22
조은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8월
평점 :
대한민국에 살아남은 사람이 이십만 명뿐이라면.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두 나무 한 그루 아래 모여 산다면. 『손끝까지 숨이 차면』은 핵전쟁 이후, 거대한 우산아카시아의 그늘에 기대 사는 도시 녹운시의 이야기다. 왼손이 없는 고등학생 영월은 몸 어디든 대신할 수 있는 식물 파나케이아를 이식받는 날만 기다리며 산다. 그러다 유일하게 기대던 어른인 선배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아이가 아닌 영월에게 파나케이아를 남긴다.
읽는 내내 도대체 어떻게 이런 세계를 떠올렸을까 신기했다. 자전거 무리를 따라서만 달릴 수 있는 출근길, 옥상마다 서서 바람을 끌어내리는 바람탑, 한 사람당 식물이 몇 그루인지 따지는 PPP 지수, 그늘이 모자란 적색 구역 사람들이 "적색 구역에 녹색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는 모습까지. 설정 하나하나가 너무 구체적이라 낯선 미래인데도 어딘가에 진짜 있을 것 같은 도시였다. 식물이 생태계의 생산자이자 모든 생명의 바탕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나무 한 그루에 나라 전체가 기대 사는 모습으로 보여 주니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그리고 배경은 기후위기 이후인데, 더 좋은 자리를 두고 다투면서도 어떻게든 같이 살아 보려는 모습은 지금이랑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근데 이 책에서 제일 오래 남은 건 설정보다 아이들이었다. 녹운시의 고등학생들은 교실에만 있지 않는다. 구조원으로, 채집원으로 실습을 나가 도시를 버티게 하는 일을 직접 한다. 폭염이 오면 채집원은 쉬어도 구조원은 일해야 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좁은 선택지 안에서 저마다 자기 자리를 고르고 버틴다. 아직 보호받아야 할 나이인데 이미 누군가를 구하고 지키는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영월도 자기가 한 사람 몫을 해야 하는 어른인지,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인지 계속 헷갈려 한다.
그런 영월이 손만큼 간절히 원한 게 어른이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원하듯, 새 필통이나 물병을 원하듯 "유용하고 부드러운, 만지면 따뜻한 어른"을 갖고 싶어 한다. 이 문장에서 한참 멈췄다. 보호자 없이 자란 아이가 어른을 그렇게 원한다는 게 너무 정확하고 아파서. 그리고 영월이 유일하게 기대던 선배는 떠나 버린다.
이 소설은 어른이 된다는 걸 나이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기 자리에서 해야 할 몫을 해내고, 그 몫을 조금씩 남을 위해 넓혀 가는 일. 친구들이 구조원으로 채집원으로 그렇게 자라 가는 동안, 영월은 오래도록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무언가를 향해 달린다. 그래서 마지막 선택이 더 크게 다가왔다. 영월은 자기 몸을 채울 수도 있었던 마지막 파나케이아를 시들어 가는 우산아카시아에 심는다. 모두를 그늘에 숨겨 주던 나무를 살리는 쪽을 고른 거다.
그 장면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영월이 그렇게 찾아 헤매던 어른은 결국 영월 자신이었다는 걸. 따뜻한 어른을 갖고 싶어 하던 아이가,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어 주는 어른이 된 것이다. 누가 대신 채워 줄 거라 믿었던 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순간이 이렇게 뭉클할 줄 몰랐다.
손끝까지 숨이 차게 달리던 아이가 마침내 자기 안의 어른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 기후위기를 다루는데 무섭기보다 따뜻하고, 슬픈데 희망이 남는 책이다. 어른인지 아이인지 헷갈리며 자기 자리를 찾아 달리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어른 흉내를 내며 사는 어른들에게도 건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