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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들의 참모
신영란 지음 / 아이템비즈 / 2019년 12월
평점 :
무릇 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뛰어난 참모가 있어야 한다. 혼자 힘으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뛰어난 리더는 훌륭한 참모들이 있게 마련이다.
중국의《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량, 사마의, 노숙 등이 그러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는 어떠했는가? 이 책은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해준다. 이미 이런 비슷한 책들은 있었지만 이 책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제왕과 그의 핵심 참모들을 주로 논한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 역사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
요새 내가 심취해서 보는 드라마는 <바이킹스>인데, 이는 800년대 후반, 900년대 초반의 바이킹들의 활약상을 담았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영국의 역사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칫하면 바이킹들의 공격에 영국의 국토 전역이 유린당할 뻔했으나, 한 나라의 국왕과 그의 참모들의 활약으로 다시 일어서게 된다.
영국이 전란을 겪고 있을 때가 바로 통일 신라가 쓰러지면서, 궁예와 견훤이 후삼국을 열었을 때다. 태조 왕건은 영국에서 바이킹들이 득세하던 877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궁예의 밑에서 활약하면서 성공하지만 결국 그의 견제를 받으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마침내 부하들이 쿠데타를 일으키자고 충동질을 해서 918년에 고려를 세웠다.
그에게 큰 힘을 준 참모는 최응이, 뛰어난 장수로는 유금필 장군이 있었다. 최응은 고작 10세의 나이에 그 총명함을 인정받아서 궁예 밑에서 서류 업무를 맡아서 했고, 나중에 왕건의 목숨을 구해주고 그의 오른팔이 되었다. 유금필 장군은 백전백승의 명장으로 후백제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줬다. 심지어 그는 모함으로 귀양을 갔을 때, 왕건이 위험에 처하자 어부 등을 모집해서 의병을 조직하여 승리를 거뒀다.
이어서 고려의 4대 왕인 광종은 과거제와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시켰으나, 정적에 대한 지나친 탄압으로 공포 정치를 시행했다. 또는 후주의 신하인 쌍기를 스카우트해서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으나, 자국 내 신하들 보다는 오히려 외부에서 영입한 신하들을 중요시해서 갈등의 씨앗을 키웠다.
반면, 고려의 제도를 정비하고,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서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한 왕은 6대 성종이었다. 특히 이 때 그의 참모로 활약한 사람은 최승로였다. 그는 시무 28조를 올려서 나라를 제대로 통치할 수 있는 방안을 올렸다.
“이처럼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최승로의 개혁정책은 그 동안 전반적으로 안정되지 못하고 있던 고려왕조가 성종 대에 이르러 나라의 골격을 튼튼히 세우게 된 궁극적인 요인이다.” - p88
사실 최승로는 최응과 같이 10살 때 이미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서 왕건에게서 상을 받고, 특별 영재 교육을 받았지만 그 동안 영민한 군주를 만나지 못했다. 다행히 거의 나이 55세에 이르러서야 마음이 열린 성왕을 만나서 마음껏 자신의 뜻을 펼쳤다.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성왕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 5품 이상의 중앙관리들에게 시정의 득실을 의무적으로 올리라고 명했다. 정말로 열린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부터 고려왕조는 유교 사상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불교는 개인적인 종교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종과 최승로의 과감한 교육 정책으로 국립대학인 국자감이 설치되고, 각 지방마다 학교가 세워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최승로의 업적이 불과 8년의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는 결국 989년 63세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동안 자신이 염원하던 세상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온 힘을 통해서 고려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이후 성왕에게 큰 힘을 준 참모는 바로 서희였다. 거란족이 침입했을 때, 대부분의 신하들은 땅을 떼어주거나 항복하자는 굴욕을 들고 나왔으나, 서희는 당당하게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서 오히려 땅과 선물을 더 얻어냈다. 그리고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강동 6주를 보태었다.
현종 때는 귀주대첩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있었다. 그는 거란의 3차 정벌 때, 이들과 맞서 싸워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가 태어난 곳이 지금의 ‘낙성대’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쉽게 말하면 낙성대역은 강감찬역인 셈이다.
고려를 ‘태평성대’로 이끈 11대 문종에게는 충신 최충이 있었다. 그의 도움을 받아서 수많은 법제도가 정비되어 고려는 안정된 사회가 되었고, 백성들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최충은 은퇴 후 9재 학당을 설립하여 후학을 키우면서 ‘해동공자’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16대 예종에게는 동북 9성을 세운 윤관이 있었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운 별무반은 1104년에 설립된 이후 고려의 군사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윤관과 그의 부하 오연총은 고려의 땅을 계속 침범하는 여진족을 맞서서 전투를 벌였고, 결국 대대적인 정벌에 나서서 동북 9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결국 전쟁보다는 화해를 원했던 대신들의 반대로 동북 9성을 여진족에게 순차적으로 내줬다. 나중에 여진족을 통합하여 나라를 세운 금나라는 다시 고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반면, 17대 인종 때 그를 감금하고, 왕위를 찬탈하려다가 실패한 이자겸, 18대 의종 때 무신정변을 일으킨 정중부, 19대 명종을 폐위한 무신 최충헌 등. 제왕들에게 반기를 든 신하들도 많았다. 이들 중에는 야심을 가진 이자겸도 있었지만, 무능한 왕도 있었다. 그 대표 격이 의종이었다. 그는 향락을 즐기고, 내시와 환관에게 정치를 맡길 정도였다. 무당을 믿어서 한마디로 내시, 환관과 무당이 문고리 삼인방이 된 것이었다.
이렇게 나라가 쇠락하면서 결국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이 되면서, 이후 원나라에 충성을 의미한다는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충’자 계열의 왕이 왕위에 오르다가 마침내 공민왕 대에 이르러서 대반격을 꾀했다. 그는 원나라를 상대로 자주 국가의 위치를 찾고, 왕권을 강화시켰다. 물론 그의 신하 이제현과 신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현은 이색을 비롯한 신진 사림 35명을 등용하고, 이색의 문하에는 그 유명한 정도전, 하륜 등 조선 건국에 지대한 공을 세운 인물들이 있었다.
결국 조선 왕조를 세운 이성계, 그리고 그를 보필한 정도전이 있었다. 반면, 이성계와 함께 전쟁터를 누비며 그의 신뢰를 받았던 정몽주는 고려 왕조와 끝을 같이 했다.
또한 태종과 세종을 보필했던 허허정승 황희. 그는 겸손하면서도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줄도 알았다. 오죽하면 처음에 자신이 태자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황희를 세종은 나중에 누구보다 중용했겠는가? 그만큼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나라의 왕이 성군 또는 폭군이 되는 것은 자신의 자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변에 어떤 참모를 두었는지가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내 주변도 둘러보게 된다. 나에게는 어떤 참모가 있는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나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고려와 조선 역사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고, 미처 몰랐던 새로운 인물들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