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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웨이브 델리에서 상파울루까지 - 실리콘밸리 너머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스타트업들의 울림
알렉산드르 라자로 지음, 장진영 옮김 / 프리렉 / 2020년 11월
평점 :
“연구에 따르면, 스타트업에 1달러 투자하면 기존 기업의 연구개발 활동에 투자하는 것보다 3~4배 혁신적인 결과물이 쏟아진다.”- p15
스타트업은 혁신을 주도했고, 그 혁신의 중심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불과 25년 전에는 대부분의 창업이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과 인터넷, 통신의 발전으로 세계 어디서나 스타트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특히 클라우드의 확대는 많은 스타트업 업체들에게 기술 장벽을 낮추는 계기가 되었다. 전에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서버를 구매해야 하는 등 다소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지만 이제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것을 향상된 인프라에서 구현하면 된다. 또한 기술자가 필요하면 전 세계에 있는 인적 자원을 연결해서 활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좀 더 넓게 봐야 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30만 개 이상의 테크 스타트업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세계 도처에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생겨나고 있다.” - p17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바로 이와 같다. 그동안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가 주로 실리콘밸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저자가 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우버’라는 공유 차량 서비스는 잘 알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은 중국의 ‘디디’, 남미와 동남아시아의 그랩, 고젝, 99, 캐비파이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실리콘밸리에서 제시하는 스타트업의 성공 모델이 다른 곳에도 유효한가이다. 이미 많은 창업자들은 실리콘밸리를 마치 ‘성지’라고 여기지만 과연 이들이 주장하는 방식이 무조건 맞는가는 생각해볼만한 이슈다.
예전에는 미국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마치 정의인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정답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미국 사회는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이슈를 안고 있다. 금번 조지 플로이드 흑인의 과잉진압부터 시작해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나타나는 ‘자유의 모순’이다. 즉 일부 미국인들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이유로 들면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었다.
그동안 미국 사회가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할 것이라고 믿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대통령이 선거 시스템의 부정을 주장하면서 평화적 인수인계를 거부했다. 마찬가지로 실리콘밸리에서 공식적으로 행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과연 다른 나라에도 적용이 될지 의문시된다.
“전 세계적으로 실리콘밸리의 혁신 산업에 대한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현상을 재점검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p20
이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프런티어’다. 프런티어는 실리콘밸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자원에서 혁신을 일으키는 중심지를 일컫는다. 물론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실리콘밸리와 프런티어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가 정의하는 프런티어 혁신가는 “개발 수준이 아주 높은 스타트업 생태계 밖에서 활동하고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에서 혁신을 일으켜 자신의 사업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기회의 기업가”이다.
이러한 프런티어 혁신가들의 10가지 요소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창조하라, 풀스택(모든 조건을 갖춘 환경)을 조성하라, 낙타를 길러라, 타가수분하라, 본 글로벌 하라, 분산 조직을 구성하라, 최정예 팀을 만들어라,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어라, 리스크를 관리하라, 금융을 재창조하라가 그것이다.
책의 목차에 이러한 10가지 제안이 나와 있는데, 제목만 봐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각 항목에 대한 스타트업 사례를 예시로 들면서 독자의 이해도를 높였다.
‘창조’와 관련해서는 아프리카 케냐에 ‘오케이하이’라는 회사가 인상적이다. 전 세계 인구 중 40억 명이 공식 주소가 없다는 점을 인식해서, 사람들에게 GPS 좌표, 실제 사진, 부가적인 설명으로 ‘주소’를 부여했다. 이는 꽤 혁신적인 방법이다. 사실 주소가 없다면 개인도 불편하지만 국가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통제하기도 힘들고, 응급 상황 시에 엠뷸런스도 주소를 찾기 위해서 애를 먹어야 한다.
저자가 언급한 프런티어의 ‘창조’, 실리콘 밸리의 ‘와해(disruption)’는 잘 새겨야할 부분이다. 프런티어는 퍼스트 무버의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다. 반면 와해는 기존 시장 내에서 비용과 기술 효율화를 통해서 다른 시장을 잠식한다. 예를 들어서 스마트 폰의 저가 폰이 중가, 고가 폰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나 스마트 폰이 카메라 시장을 와해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것은 어렵지만 일단 창조를 한다면 거대한 시장을 당분간 독식할 수 있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경쟁 해자, 기술 해자, 자본 해자와 같은 진입 장벽을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해자를 만들기 위해서 단순히 소프트웨어에만 의지하지 말고, ‘풀스택’과 같이 전체 인프라 구성도 고민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사실 지금의 실리콘밸리는 모든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그 시스템에 얹어서 자신의 아이디어만 잘 녹여내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한계가 있고, 차별화 포인트가 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넷스케이프의 창립자이면서 현재 벤처캐피털리스트로 활동하는 마크 앤드리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어 들어가고 있다.” - p86
저자가 이 책에서 사례로든 인도네시아의 우버인 고젝은 오토바이로 승객 운송을 시작한 후 각종 심부름뿐만 아니라 심지어 고젝의 운전사는 인간 ATM 머신 역할을 한다. 운전사에게 현금을 지불해서 돈을 입금할 수 있고, 현금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디지털 결재 플랫폼을 구성했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은 성장을 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빠른 고속성장이 필요하다. 만약 성장을 못한다면 소위 실리콘밸리에서 이야기하는 ‘죽음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즉, 초기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아서 성장해야 하는데, 초반에 고정비용 등이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매출을 늘려서 고정비를 낮춰야 한다. 만약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 프런티어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낙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한다. 낙타는 물과 음식 없이도 몇 개월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을 지속시키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비용’이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기 때문에 벤처캐피탈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면서 무료 서비스로 구독자를 늘리는 시도를 종종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과도한 경쟁을 낳고, 소비자들도 저렴한 서비스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반면 프런티어는 투자를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비용 관리’에 좀 더 철저한 편이다. 무료나 저렴한 서비스보다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서 비용을 청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런티어의 성장은 실리콘밸리의 그것보다 작지만 오히려 더 안정적이다. 왜냐하면 프런티어는 창업자가 거의 모든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사업이 망하면 리스크가 크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은 지분을 밴처캐피탈에게 팔기 때문에 회사가 망하더라도 창업자의 리스크는 크지 않다. 세계적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 플레이의 창업자 다이엘 에크는 초기에 자금이 부족해서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 개인 자금을 동원해야했다.
저자는 실리콘밸리의 방식 중에서 여전히 배워야할 점도 있지만, 이제 실리콘밸리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금이 넘쳐날 때가 아닌 부족할 때를 대비해서다. 프런티어와 같은 정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면서 무엇보다 ‘지속가능성’과 ‘회복탄력성’이 있는 사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는 스타트업의 도시로 언급이 안 되는 점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도 있는데 말이다. 그만큼 생태계 조성이 잘 안 되어있고, 규제도 심하다는 의미도 된다. 우리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은 이제 새로운 프런티어가 되기 위한 도전을 하기 보다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거나 안정적인 대기업을 선호한다. 만약 정부나 사회에서 창업자들에 대한 안전장치를 좀 더 마련해준다면 더 많은 프런티어들이 생기지 않을까싶다.
이 책을 통해서 진정한 스타트업 정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