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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다리를 타고 정상에 오른 사람이 그 사다리를 걷어차 버리는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뒤를 이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수단을 빼앗아 버리는 행위로, 매우 잘 알려진 교활한 방법이다.(p.24)
자신들이 '따라잡기 기간'에 있는 동안 현 선진국들은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으며, 선진국들이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였고, 산업스파이를 고용하는가 하면, 다른 국가들의 특허권 및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였다. 그러나 일단 자신들이 선진국의 대열에 오르면 자유 무역을 주장하고, 숙련된 노동 인력 및 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허권 및 상표를 강력히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해서 한때 도둑질을 일삼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된 것이다.(p.124)
바람직한 정책의 문제를 역사적 측면에서 다룬 것처럼, 제도 발전 분야에서도 선진국들의 근래의 상황이 아닌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 경우 개발도상국들은 새로운 제도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들일 필요 없이 선진국들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이것은 '후발 산업국'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안 되는 이점 중의 하나이다.) (p.137)
현 선진국들과 이들이 조종하는 국제개발정책의 주도세력들 IDPE이 개발도상국들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에게 이로운 정책 아닌가? 그 같은 정황은 19세기에 영국이 보호주의를 이용해 자신을 따라잡으려는 미국과 다른 현재의 선진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수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과 유사한 것 아닌가? 개발도상국의 적극적 산업·무역·기술ITT 정책 실행을 제약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합의는 영국을 비롯한 여타의 현 선진국들이 반 독립 국가들에게 강요하였던 다양한 '불평등 조약'의 현대판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보다 직접적으로 말해 개발 도상국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정상에 오른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이 따라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행이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p.233)
현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현 개발도상국들과 유사한 발전 단계에 있을 때 갖추지 않고 있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에게 이중 잣대를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불필요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이들을 궁지로 몰고 있다. 예를 들어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적 기준'에 맞는 재산권과 기업 지배구조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국제적 수준의 변호사들과 회계사를 양성해야 한다. (또는 외국의 이런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더욱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현 발전 단계에서 개발도상국들에게 더욱 절실할 수 있는 교사나 엔지니어 양성에 소요될 (국제 지원금이나 자국의 예산과 같은) 자금이 어쩔 수 없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현 선진국들은 정책 분야뿐만 아니라 제도 분야에서도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p.245)
먼저 선진국들의 경제 발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더 많이 알려져야 한다. 이것은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이 그들에게 합당한 정책과 제도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와 관련 경제 발전에서의 정책과 제도의 역할에 대한 - 특히 제도의 역할에 대한 -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론가들과 정책 담당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역사적 통념과 지나치게 추상적인 이론의 장막을 젖혀야 한다. (p.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