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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한국경제 (이준구) - 이준구 교수의, 이념이 아닌 합리성의 경제를 향하여
이준구 지음 / 푸른숲 / 2009년 4월
평점 :
이 책은 나에게 특이한 이유로 기쁨을 준 책이다. 이벤트 당첨 역사가 거의 전무한 나에게 독서대라는 유용한 선물을 주었기 때문이다.선물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이 책의 출간 기념 이벤트에 당첨했다는 사실이 나를 무척 즐겁게 만들었다.
경제학도 공부해야되기 때문에 이준구 미시경제학 책을 가지고 있는데(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정통 경제학 교수가 낸 책이니 안 사볼 수가 없다.,,,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잽싸게 주문하였지만.... 결국 몇 달이 지나서야 읽고 이제서야 리뷰를 올린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인상깊은 구절들에다 포스트잇을 붙여 두는데 다 읽고 나서 보니 이 책의 앞 부분 즉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관한 글에 집중적으로 포스트잇이 무더기로 붙여져 있었다.... 진짜 교수님이 하시는 얘기에 100% 공감하고...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교과서와 다른 우리의 현실에 답답하고 씁슬하고 안타깝다....
그리고 나는 프롤로그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이준구 교수의 프롤로그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의 교수관에 대한 생각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앞으로 나의 미래 꿈을 지향하면서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교수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제가 생각했던 바는 대략 이랬습니다. '강의실에서는 학문적 지식의 전달 뿐 아니라, 인생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의견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수가 강의실에서 한 말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활동을 할 단계에 이르러 그들의 행동에 반영된다. 따라서 교수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학생들을 이끌어 감으로써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
……… 제 말만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꿈에도 없습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는 학자적 양심을 걸고 제 개인적 의견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논의의 출발점을 제시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무언가 생각해 볼 거리를 얻었다고 느낀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의 기쁨이 없습니다.
<대운하, 토목 입국의 신기루>
p. 26 내가 요구하는 것이 대운하사업의 즉각적인 포기는 아니다. 국민의 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을 얻도록 노력하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p. 30 자연환경을 바라보는 관점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의 대상이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자연은 원래의 상태 그대로 놓아 두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새로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p. 32 경제구조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대운하를 만든다는 것은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경제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점차 옮아가고 있다. 물건을 만들어 돈을 벌던 시대는 저물어가고 지식의 창출과 유통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또한 물류 그 자체의 성격도 비용보다 시간이 점차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추세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제무역의 경우에도 운임이 해상운송보다 몇 배나 더 비싼 항공운송 쪽을 선택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운하를 이용할 경우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는 사실이다.
p.38 이 사업이 가져올 진정한 편익과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는 점을 자각하고 열린 마음으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p. 40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만 채우면 무대의 뒤편으로 퇴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남긴 유산은 두고두고 국민이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되고 만다. 특히 대운하사업처럼 국토의 지형을 크게 바꾸게 되는 사업은 긴 시간에 걸쳐 우리 삶에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p. 45 좀 더 참신한 방법으로 부양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예컨대 교육, 사회복지, 연구개발, 정보화 사업 등을 통해 부양효과도 내면서 삶의 질 향상도 꾀할 수 있는 대안이 얼마든지 있다. 토목공사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쾌쾌묵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발상의 전환에 걸림돌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p. 49 사회교과서에서 케인즈적인 경기부양책의 예로 뉴딜정책하의 토목공사를 예로 든 데서 뉴딜은 바로 토목공사를 뜻한다는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겨났다. 뉴딜정책은 대공황으로 인해 극도의 침체상태에 빠진 미국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루즈벨트 대통령의 개혁 프로그램을 일컫는 말이다. 그는 단지 경제뿐 아니라 사회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광범위한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했다. 그 중에서 테네시 강 댐 같은 토목사업을 지극히 작은 비중밖에 갖지 못한다. 뉴딜을 토목공사의 대명사로 사용하는 것은 엄청난 사실의 왜곡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