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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세상에 결코 완벽한 소설은 없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에게는 가슴으로부터 완벽하게 느껴지는 책. 그런 책을 만났다. 처음 [레이스 뜨는 여자]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낯익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 언젠가 tv에서 지나가면서 흘려 본 적이 있는 '레이스 짜는 여인'이라는 제목의 영화(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프랑스 영화의 어머니라는 이자벨 위페르가 뽐므의 역할을 맡았다)때문일 수도 있고 알듯모를듯한 미소를 지으며 레이스를 짜는 데 집중하고 있는 여인을 그린 역시 동명의 '레이스 짜는 여인'이라는 미술 작품 때문일 수도 있겠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생각보다 얇은 분량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말 그대로 문장과 문장 사이. 행간을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그런 류의 소설이다. 나 역시 앞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힘들고 지루했던지. 몇번이나 책을 덮었다 폈다를 반복했었다. 하지만 마치 씹으면 씹을 수록 점점 맛이 나는 음식처럼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던 난해한 문장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하니 어느새 마음에 반짝이는 보석처럼 남아서 가슴을 가득 채웠다. 어떤 사람들은 [레이스 뜨는 여자]를 단순히 조금 어려운 로맨스소설 정도로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 보다 별로 로맨틱한 내용은 없더라. 주인공들이 너무 매력 없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레이스 뜨는 여자]는 사랑이야기가 등장함에는 분명하면서도 글쎄. 로맨스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달짝지근한 느낌이 부족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만남과 사랑, 헤어짐의 구체적인 과정 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뽐므(사과같은 여인) 라는 여인을 집중조명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뽐므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순수한 여인이고 사랑스러운 여인다. 하지만 외로운 여인이고 이해 받지 못하는 여인이기도 하다.
"뽐므와 그녀의 어머니는 또한 한결같은 기분을 유지하는 편이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두 사람은 운명이 인색하게 나눠주는 기쁨과 환멸을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였다"
타인과의 소통이 힘들었던 뽐므는 우정도, 삶도, 사랑도 결코 쉽지 않다.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바위 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뽐므를 사정없이 내려치고 흔들어 놓는 성난 파도는 그렇게 잠시 뽐므의 곁을 맴돌다 유유히 흘러가지만 정작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은 듯한 뽐므는 소리없이 자신을 잃고 무너져 버린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다 읽고서도 왠지 손을 놓기가 아쉬워지는 그런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이해했는가. 뽐므를 얼마나 사랑했는가.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생긴다. 한동안은 뽐므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의 한 부분을 통해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뽐므를 기억해 보고자 한다.
"분명히 그 녀는 아주 흔해빠진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 에므리에게도, 이 책의 저자에게도, 대부분 남자에게도 그런 여자들은 그저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존재로서 우리가 그녀들에게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평온함이란 우리 스스로 자신을 위해 상상하던 아름다움과 평화가 아니므로, 우리가 발견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던 곳에 그런 아름다움과 평화가 있었으므로 우리는 한순간, 다만 한순간 그런 여자들에게 애착을 느낀다. 평생에 두세번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는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