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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리스트: 전달자
장태일 지음 / 팬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무비 픽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아니면 애시당초 영화와 소설을 하나에 담으려 한 작가의 과욕때문일까 아쉽게도 [제이리스트:전달자]는 도통 집중하기가 힘든 책이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임을 미리 밝혀둔다. (내 뒤를 이어 이 책을 읽었던 동생은 꽤 재밌다고 평했다)
소설 못지않게 영화도 좋아하는 나에게 '무비픽션'이라는 장르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매번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고민해 오던차에 메뉴판에서 짬짜면을 발견하고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띄지에 쓰여져 있는데로 책속에 숨겨진 영화를 찾아볼 기쁨에 가득찼던 것이 사실이다.
우선 한권의 SF소설로 보았을 때 [제이리스트:전달자]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경이나 주인공 모두 어두운 미래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고 어디서 본 듯 하기는 하지만(스타워즈나 저지드래드 같은 유명한 영화에 등장하는 소품들이기에 당연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랜드스피더나 로기버 총과 같은 여러 무기나 장치들도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었다. 영화가 없는 세상. 더 엄밀히 말하면 영화를 보는 것도 제작하는 것도 유통하는 것도 모두 금지되어 있는 세상이라는 설정은 신선했다. 그곳에서 주인공 제이는 전.달.자이자 전.달.자를 쫓는 인물이기도 하다. 제이와 제이의 클론인 또 다른 제이의 존재 역시 스토리의 큰 축을 담당하며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 것은 왜 일까? 우선은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에 너무나 많은 영화를 담으려 한 점이다. 그러다 보니 때때로는 책의 많은 부분이 그저 각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들을 주르륵 나열해 놓은데 불과하다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나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부분, 혹은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았을 법한 부분들에 마저 영화의 주인공이나 소품, 장면을 삽입함으로 인해 정작 소설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 까지 했다. 앞부분은 그나마 그럭저럭 읽을 수 있었지만 포레스트 검프의 버스정류장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울컥 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영화의 주인공을 작가 마음대로 자신의 작품에 함부로 끼워넣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화가 났던 까닭인 것 같다.
소설도 영화도 좋아하는 나에게 무비픽션을 표방하는 [제이리스트: 전달자]는 하나의 큰 도전이었고 그만큼 큰 기대를 주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난 후에 남은 것이 있다면 역시 영화는 영화고 소설은 소설이라는 것. 차라리 여러 공포영화들을 패러디한 [무서운 영화]라는 코믹 영화처럼 이 소설 역시 그저 여러 영화들을 패러디한 소설이라면 차라리 관대하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 하지만 무비픽션이라는 거창한 장르를 창조해 낸 것에 비하면 그 결과물이 너무 미약한 것이 아닐까. 왠지 이 책은 독자들의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뭔가 퓨전이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글쎄. 긍정적인 평을 보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에게는 전혀 감흥을 주지 못했던 책이었다. 아! 이 책을 읽고나니 문득 진짜 제대로된 100% 작가 본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정통 SF소설이 읽고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