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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
손성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추억'이라는 단어처럼 가슴 따뜻하고 애잔한 단어가 또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추억이란 것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몇십년 이상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나 추억같은 것이 아련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운동장에서 사탕을 물고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에게 조차도 나름의 소중한 추억이란 것이 존재한다.한편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추억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직접 겪은 추억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서, 혹은 사진이나 영상물 등을 통해 축적된 추억. 어떻게 말하면 그저 단순한 지식, 정보에 불과 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많은 이들은 이런 정보 또한 스스로의 추억처럼 애틋하게 느낀다.
쓰다 보니 서두가 너무 길어졌지만 요는 이렇다. 나는 이제 갓 이십대 중반이지만 어머니 아버지 못지 않게 1960,70년대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 어쩌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지난 시대에 대한 호기심일 수도 있고 지금 보다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가난하고 조금 더 힘들었을 지언정 제대로 사람냄새가 나던 시절에 대한 동경일 수도 있겠다.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은 그런 나의 호기심과 동경을 모두 만족 시켜 준 책이었다. 통금과 단발령이 있던 시절, 빵집에서 데이트를 하고 대폿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시절. 말로만 듣고 기껏해야 시대물 드라마에서나 접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나 나의 어린 시절에도 존재했던 것들, 예를 들면 국자에 소다를 넣고 만들었던 '달고나' 이야기에서는 집에서 동생과 국자 하나를 홀랑 다 태워먹었던 생각도 났고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 이야기에서는 '홀쭉이와 뚱뚱이'같은 이름도 참 재밌었던 쥐포며 '반지사탕'을 손가락에 끼워 먹다 온 손이 침으로 범벅이 되었던 일도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요즘은 유치원 생들도 놀이터에서 놀지 않고 집에서 tv를 보고 컴퓨터에 앉아 게임을 하며 놀지만 199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나 때만 해도 얼음땡 놀이라던지 구슬치기라던지 고무줄 놀이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었었다. 물론 이 책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는 나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전이지만 이렇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정말 이런 것도 있었나? 할 정도로 낯설면서도 신기한 이야기들도 있다. 쥐꼬리 가져오기 과제라던지 동동구리무라던지 니나놋집이라던지. 나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것들이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옛날 생각에 웃음 짓게 하는 아련한 추억속의 존재들일 것이다.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은 생각보다 굉장히 풍부한 자료로 이루어진 책이다. 읽다 보면 상식으로 알아 두어도 좋을 내용도 꽤 많고(예를 들어 얼리 어답터들에 관한 이야기나 커피, 라면 과 같은 물건들의 최.초 등장에 대해서도 팁으로 담고 있다)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사진이나 실제 기록, 인터뷰같은 것들이 적절하게 잘 구성되어 있어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조금은 식상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잠시 타임머신을 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생활은 조금 불편했겠지만 정이 넘쳐 흘렀을 그 시절이 눈에 선하다. 문득 이 책을 부모님과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그동안 앨범안에만 갇혀있던 추억들을 꺼내어 크게 한번 웃어보자. 그 순간이 먼 후일의 또 하나의 행복했던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