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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의 단두대 ㅣ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6년 4월
평점 :
유키하루오 신작일본추리소설추천 살로메의단두대 서평 블루홀식스출간

오늘 읽은 책은 올해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인 살로메의 단두대로 내 인생 추리소설 방주의 작가인 유키 하루오의 또 다른 시리즈, 다이쇼 본격 미스터리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사실 나는 교수상회에서 시계 도둑과 악인들로 이어지는 다이쇼 시리즈를 좋아하지만 내심 방주, 십계 그리고 낙원으로 이어지는 성서 3부작을 더 높게 치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 살로메의 단두대로 인해 이제 유키 하루오의 작품들은 호불호가 무의미해지고 모두가 극 호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의 시작은 여느 다이쇼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느릿하게, 그리고 자극없이 평화롭게 시작한다. 김은모 번역가의 비유처럼 고속 열차가 아닌 관광 열차의 속도감으로 이야기는 다이쇼 시대의 풍취를 그대로 전달하며 느긋하게 전개된다.
사건도 비교적 굉장히 소소하게 진행된다. 젊은 화가 이구치는 네덜란드의 대부호에게 그림을 팔 기회가 생기지만 대부호는 이구치의 그림과 매우 흡사한 그림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구치는 그림을 팔기 위해 자신의 그림을 도용한 도작범을 그의 친구 하스노와 함께 뒤쫓는다.
다이쇼 시대라는 아득히 까마득한 옛시대의 정서를 유키 하루오는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표현한다. 대화는 고풍스럽고 구라파, 이색열, 아미리가, 화란, 가리후니아 등 다양한 단어들이 시대배경에 걸맞은 옛 단어들로 표현된다. 단순 추리소설이 아닌 다이쇼 시대 문학으로 봐도 될 것 처럼 살로메의 단두대는 당시의 시대상도 잘 표현해낸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 부터 시작해 대놓고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억압받던 당시의 여성의 삶도 작품속에 고스란히 녹아 읽는 맛을 더한다.
그리고 이 느긋한 속도감에 익숙해 질 때 쯤, 연달아 살인 사건이 발생하며 도작범을 쫓는 이구치의 목적은 사라다 속 옥수수처럼 사소하게 변해버린다.
600p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오히려 읽을 거리가 더 남아 즐겁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필력도 여전하다. 전작 방주에서는 한 방의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케릭터가 좀 얇게 표현되었다는 평도 있었지만 연달아 작품을 발표하며 늘어난 필력은 '살로메의 단두대'에서 정점을 찍은 듯 하다. 아야와 하스노를 비롯해 사진 작가로 조금씩 성장하는 미네코의 이야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이봐, 이상한 게 왔어."
"응? 그야 보면 알지."
"나 말고. 뭔지 모를 편지가 왔어. 좀 봐봐."
"그 녀석과 우리는 배설물과 토사물만큼이나 다릅니다! 얼마나 다른지는 알아서 판단하십시오."
방대한 분량을 흡입력 있게 끌고 가는 데는 유키 하루오 식 유머도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낸다.
다이쇼 시대의 정취는 느긋하게 흘러가지만 본격 미스터리 소설의 신성 유키하루오 답게 추리파트는 날렵하게 속도감을 가지고 진행되는 점도 인상적이다. 추리 파트는 작품을 읽을 독자들의 수준을 고려해 빠르게 전개되는데, 예를 들면 머리가 잘리고 손에 지문이 없으면 시체가 바뀌었을 가능성부터 일단 던지고 보는 장르의 매니아들을 위해 작가는 작품속에서 바로 시체 바뀜부터 오히려 이를 역으로 이용할 가능성까지 모두 '바로' 언급해 버린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이야기의 큰 줄기를 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나저나 너무 종잡을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도작뿐이라면 모를까, 여기저기 온갖 사건이 흩어져 있잖아요." p413
무엇보다 살로메의 단두대는 유키 하루오의 팬들이 작가에게 기대할 충격적인 한방을 제대로 준비했다. 600p에 달하는 모든 복선과 단서들이 합쳐져 하나의 진상으로 드러나는데 범인의 정체부터 범행의 동기까지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며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킨다. 사소한 표현하나 놓치지 않고 회수하는 작가의 집념마저 느껴질 정도.
다이쇼 '본격'이라는 수식어 답게 추리의 트랙도 2종, 추리의 구조도 2종이었던 사건의 해결 파트는 감탄만 나올 정도. 그리고 스포일러가 될 까 자세히 언급은 할 수 없지만 마지막 장은 여지껏 느껴보지 못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잘 나가던 다이쇼 시대 관광열차가 갑자기 로켓추진기에 불이 붙으며 우주로 나가 펑 하고 터져버리는 정도의 충격이었으니까.
유키 하루오의 성서 3부작이 트릭 한 방에 모든 것을 거는 본격 미스터리라면 다이쇼 시리즈의 최신작 살로메의 단두대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쌓아올린 후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하나로 엮어내는 웰메이드 시대극 미스터리다. 그냥 일본미스터리소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강력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