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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치라이트와 유인등 ㅣ 에리사와 센 시리즈 1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6년 3월
평점 :

사쿠라다 도모야의 연작단편집 '서치라이트와 유인등'을 읽기 전에는 그냥 평범한 추리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건이 나오고, 단서를 따라가고, 마지막에 반전이 있는 그런 전형적인 구조를 예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까 느낌이 꽤 달랐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차분하고 느린 편이라서 처음에는 조금 적응이 안 됐는데, 읽다 보니까 오히려 그게 이 작가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출간작인 매미 돌아오다를 읽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에리사와 센 시리즈는 이런 맛에 읽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에리사와 센’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곤충탐정이 등장하는 연작단편집인데, 특이하게도 각 단편의 주인공은 에리사와 센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그를 만나게 되는 인물들이 주인공처럼 표현 된다. 그래서 에리사와 센은 항상 사건 속에 있으면서도 사건의 해결을 주도하지는 않는다. 조용히 관찰하다가 어느 순간 사건의 핵심을 짚어낸다. 곤충을 좋아하는 탐정이라는 설정도 매미 돌아오다를 읽을때는 많이 낯설었는데, 이제는 그 설정이 캐릭터랑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관찰하는 방식이 정말 곤충을 보듯이 세세하고 집요해서, 작은 단서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서 표제작인 '서치라이트와 유인등'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화재와 표본'이랑 '나나후시의 밤'이 더 기억에 남았다. 두 작품 모두 기존의 에리사와 센 단편소설과는 그 느낌이 다르게 느껴져서 더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에리사와 센 특유의 여유롭고 따스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런 단편들 속에서 느껴지는 미스터리 소설다운 섬뜩함이 살아있는 작품이라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하다고 느낀 점은, 분명히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데도 분위기가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다는 거였다. 오히려 전체적으로 잔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강했다.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긴장감이 계속 유지되면서 읽는 사람을 몰아붙이는 느낌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런 게 아니라 천천히 따라가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몸에 힘을 빼고 그냥 편하게 읽게 됐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람이 죽는 추리소설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힐링되는 느낌까지 들었다. '호버링 버터플라이'의 마지막 페이지는 사쿠라다 도모야 식 힐링 그 자체! 따스한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 말장난이었다. 일본어 특유의 발음을 이용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보통 이런 건 각주로 설명이 붙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책은 번역이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설명을 보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그 소나기’라는 표현을 ‘구사나기’로 착각하는 장면이나, ‘젠장’이랑 ‘주인장’의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한 부분 같은 게 기억에 남는다.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 분위기를 더 가볍고 친근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쿠라다 도모야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엄청 긴장감 넘치고 빠른 전개를 기대하는 사람한테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신 편안하게 읽으면서 책장을 덮은 뒤 긴 여운에 빠져 이야기를 다시한번 돌이켜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책이 없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위기의 추리소설도 꽤 괜찮다고 느꼈고,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