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가을에 여름이 스러져가야 한다는 것에 맹렬히저항하고 있었다.
사람도 인생의 여름날이 끝나갈 무렵이면 나약해지고죽어가리라. 뼛속 깊이 파고드는 서늘한 기운, 핏속까지집요하게 몰려오는 허전함에 저항하게 되리라.
그러고는 새롭게 다져진 진정한 마음으로 삶의 작은유희와 겉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아름다움, 앙증맞은 색의 현란함,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의 그림자에 몸을 내맡긴 채 미소 지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를 꼭 끌어안고 불안해하면서 죽음을 바라보다가 서서히 그 안에서 두려음과 위안을 건져 올려, 죽어갈 수 있는 예술을 배울 것 이다. - P21

"마흔 살과 쉰 살 사이의 십 년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들과예술가들에게는 언제나 힘겨운 세월이다. 마음이 불안하고,
삶과 자기 자신을 적절히 조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불만족에 시달리는 시기다. 그렇지만 그다음에는 편안한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에게서만 느끼지 않았고,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심한 가슴앓이를 하는 젊음이 아름다웠던 것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성숙해가는 것에도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다."

나이 든다는 것. 1하찮은 모든 것들도 젊음은 소중하다.
나도 그런 젊음을 존중한다.
곱슬머리, 넥타이, 헬멧, 검,
물론 아가씨도 빼놓을 수 없다.
왜 이제야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일까.
나이 많은 소년인 내가그런 모든 것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그러나 이제야 뚜렷이 볼 수 있다.
그런 노력이 현명했었다는 것을.
머리띠와 곱슬머리는곧 모두 사라져버리고,
내가 얻은 것들,
지혜, 덕망, 따뜻한 양말, - P27

그 모든 것들도 다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땅은 차가워지리라.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맛 좋은 붉은 포도주를 마시며노년의 좋은 시간들을 보내다가마지막으로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다면-그러나 나중에, 아직 오늘은 아니다! - P28

‘젊음‘은 우리 안에 아이의 순수함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냉철한 의식으로 살아가는 삶에서도 더욱 풍요로울 수 있다.
어렸을 때는 한 번 생일을 맞이하면, 다음 번 생일이될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던가? 나이가 들수록 그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나이가 들면 해는 엄청난 속도로 빨리 흐르지만 날이나 시간은 아주 천천히 지나가는 것 같은 모순을 자주느낀다.
세상의 흐름과 함께하지 않을 때 사람은 빨리 늙는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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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웃지 못할까? 생각해보면, 세상이웃는 방식으로 내가 웃었다면, 애초에 시를 쓰지 않았을것이다. 세상이 미소 짓지 않는 방식으로 내가 미소 지었으므로 시를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슬픈 이야기다.

미안해, 친구들아, 나는 문학 때문에 너무 편협해졌어. 나는 시를 쓰느라 우물 안에 들어갔고, 들어갔는데 우물이 더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우물 안에 우물을 또 만들었고, 그우물을 파서 기어이 더 깊은 우물 안으로 들어간 슬픈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깊이깊이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데, 내가 무언가를 너무 깊게 이해할수록 우물 밖의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정말 개구리가 되어버린 거야. - P173

유일하게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건 인력거와 만날 때다. 인력거는 약속병이 있다. 약속을 하면 어기고 싶어지는 병이랄까. 인력거는 약속장소에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도 나가지 않는다. 결국 약속 혼자 약속장소에나가 우리를 기다린다. 인력거는 즉흥적으로 만나거나, 길을걷다가 전봇대 앞에서 만나는 경우 외에는 만날 수 없는 분이다.

전시장에 들어갔다. 나는 전시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 친구는 한 시간 반 정도 공들여 작품들을 관람했다. 나는 노력끝에 30분 정도 관람하고 의자에 앉아 친구를 기다렸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것은 샤갈이 친구 바르샹에게 헌정한, 미소짓는 자화상 아래 남긴 낙서다.

"나 여기 있어, 생각날 때면 나한테 미안해해."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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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신장이 안 좋아.
태어날 때부터 폐도 안 좋았어.
너는 네가 한 행동은 잘 까먹지만 당한 건 잘 기억해.
거울 앞에서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카메라를 갖다 대면 갑자기 못생겨져.
너는 허벅지에 작은 점이 있어. 그런데 너는 그게 점이 아니라고 우기지.
넌 뒷목에도 점이 있는데 그건 너에게는 보이지 않아.
너는 예술적이고 다채로워.
그런데 둔해.
너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싶어 해.
하지만 그 순간에 끝내야 하는 말들이 있어.
우리가 좋은 말을 나누었다는 기억만 남도록."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말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애인이 답했다. - P93

삶에 성의를갖기가 어려워요 - P118

명할 게 남았는지 끊임없이 설명하라고 했다. 나는 설명 없이도 사랑받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지 못했다.
"물에서 나온다. 바지 벗었어."
우리는 게걸음을 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생각했다. 설명하기 싫다고. 설명에 지쳤다고. 왜 슬픈지, 왜 죽고싶은지 설명하느라 지쳐버렸다고. 어느 날 이상한 글을 썼는데, 그러니까 나는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게 시구나 싶어서 시를 썼다. 개떡같이 말했기 때문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누군가 생겼구나, 믿으며, 그러면앞으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쓰자. 독자가 찰떡이기를 바라면서.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심이 아니라 이해력이기 때문에, - P121

문자 포비아가 와서 죽고싶다고 고백했을때, 상담사는 자신도 책을 낸당셔 조언을 구했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집 그림을 보고 악마라고 했는데 심리상담사는 좀 더 성의 있게 답해보라고 권유다. 삶에 성의를 갖는 게 어려워서 치료를 받으러 간 우리였다. 우리의 정신병은 심화되었다. - P120

안 미친 척하다 보면미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며칠 전 왕십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대학원을 가면 사람들이 예술과 가까워진다고, 대학원생인 친구는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정신이 서서히 미쳐가는 것을 깨닫고는 미치지 않기 위해 생전 처음 폴 댄스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아니면 그림을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대학원에 입학한이들은 탈출을 위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을 본능적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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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하고 싶지 않은 것과 노력하지 않는 것은 조금 다르다. 노력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도 있고, 노력하는 것은 때때로 즐겁다. 그러나 무리하는 건 괴롭다. 무리하는 건 언제나 즐겁지 않다.
무리를 한다는 건, 수면 시간을 줄이거나 식사 시간을 줄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산책 시간을 줄이거나 혹은 멍하니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또한 ‘무리‘다.
어느 정도는 무리해도 되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내가 아니라 타인이었다.
내가 장본인이니까 어느 정도는 무리해도‘라고 생각할 수있는 입장이 아니다.
나는 지금 여기 한 명뿐이다. 지구와 비슷한 별에 나와 쌍을 이루는 생물이 있다 해도 그건 내가 아니니까 나는 지구에 있는 이 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괴로운 경험을 두루두루 하면서 이런 것을 조금씩 알게 됐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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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너무 충분해서 당분간은 내가 아닐 필요가 있다."라는 문장을 일기장 모서리에 끼적이고 내 생일선물을사러 문구점으로 향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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