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신장이 안 좋아. 태어날 때부터 폐도 안 좋았어. 너는 네가 한 행동은 잘 까먹지만 당한 건 잘 기억해. 거울 앞에서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지어카메라를 갖다 대면 갑자기 못생겨져. 너는 허벅지에 작은 점이 있어. 그런데 너는 그게 점이 아니라고 우기지. 넌 뒷목에도 점이 있는데 그건 너에게는 보이지 않아. 너는 예술적이고 다채로워. 그런데 둔해. 너는 내가 한 말을 기억하고 싶어 해. 하지만 그 순간에 끝내야 하는 말들이 있어. 우리가 좋은 말을 나누었다는 기억만 남도록." "너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는 말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애인이 답했다. - P93
명할 게 남았는지 끊임없이 설명하라고 했다. 나는 설명 없이도 사랑받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말하지 못했다. "물에서 나온다. 바지 벗었어." 우리는 게걸음을 쳐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생각했다. 설명하기 싫다고. 설명에 지쳤다고. 왜 슬픈지, 왜 죽고싶은지 설명하느라 지쳐버렸다고. 어느 날 이상한 글을 썼는데, 그러니까 나는 개떡같이 말했는데 누군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게 시구나 싶어서 시를 썼다. 개떡같이 말했기 때문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누군가 생겼구나, 믿으며, 그러면앞으로 훌륭한 개떡이 되도록 애쓰자. 독자가 찰떡이기를 바라면서. 왜냐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해심이 아니라 이해력이기 때문에, - P121
문자 포비아가 와서 죽고싶다고 고백했을때, 상담사는 자신도 책을 낸당셔 조언을 구했다.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집 그림을 보고 악마라고 했는데 심리상담사는 좀 더 성의 있게 답해보라고 권유다. 삶에 성의를 갖는 게 어려워서 치료를 받으러 간 우리였다. 우리의 정신병은 심화되었다. - P120
안 미친 척하다 보면미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며칠 전 왕십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대학원을 가면 사람들이 예술과 가까워진다고, 대학원생인 친구는 말했다.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정신이 서서히 미쳐가는 것을 깨닫고는 미치지 않기 위해 생전 처음 폴 댄스를 배우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아니면 그림을 시작하기 때문이란다. 대학원에 입학한이들은 탈출을 위해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을 본능적으로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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