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좋아하는지, 예술을 좋아하는 자신을 좋아하는지는 좀미묘하지만, 아빠는 오늘도 클래식을 들으며 운전하실 터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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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혼자 여행을 해낸 건 모든 걸 직접 준비해서 누린 경험이어서 더의미 있었다. 이전까지 엄마의 여행이란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으므로 "언젠가 상황이 맞으면 가야지" 같은 타인의 힘없는 의지가 따라붙었다. 그 의지에 묶여 있던 탓에, 타인도 엄마 스스로도 ‘혼자서는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쉽게 규정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가 하는 여행 앞에는 ‘언젠가‘ 대신 ‘언제든‘이 붙는다. 가끔씩 엄마의 여행 사진이 도착한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조금 어색한 포즈를취한 채 웃는 사람, 그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확대해보며 치아가 다 드러나도록 웃는 그를 따라 나도 크게 웃는다. - P111

가족이란 너무 멀 때만큼이나 가까울 때도 서로를 다치게 한다. 어느 누구와의 관계보다 어려운 게 가족이라는 걸 엄마만의 방」을 통해 다시배웠다.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훨훨 날아가 자기만의 삶을 살아내는 엄마처럼, 나 또한 몇 발 떨어진 곳에서 씩씩한 눈을 하고 내 삶을 살아내고 싶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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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인데 엄마랑 같이 산마 프로그램을 보면 나도 평소의세 배는 웃는다. 집에서 혼자 봤으면 절대 안 웃었을 대목에서도소리 높여 깔깔깔 웃어버린다. 요컨대 엄마가 웃으니까 덩달아 웃는 셈인데, 요즘 들어 이건 아무래도 굉장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 P49

버스로 십오분쯤 걸리는 백화점 나들이는 엄마한테 제법 먼 외출이다. 그럴 때 엄마가 들고 가는 가방은 평소의 파우치 스타일이아니라 가죽(아마도) 가방이다. 콤팩트하지만 도라에몽 주머니처럼뭐든지 들어 있다.
지갑, 휴대전화, 손수건, 티슈, 작게 접은 나일론 에코백, 여기까지는 평소와 다름없지만 작게 접은 슈퍼 비닐봉지도 추가된다. ‘혹시 모르니까‘란다. 그 밖에 돋보기와 카드 지갑 카드라 해봤자 상점 스탬프카드뿐이지만 실로 종류가 다양하다. 거기다 수첩, 화장품 파우치, 빗, 도장, 손톱깎이, 물티슈까지. 참고로 물티슈는 대개찻집에서 나오는 일회용 물수건이다. 안 쓰고 챙겨뒀다 갖고 다닌다. ‘혹시 모르니까‘란다.
그것들이 전부 들어간 작은 가방은 한눈에도 빵빵하다. 들어보면 묵직하다. 많은 물건을 콤팩트하게 수납했다는 기쁨이 가방에서 전해져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백화점 안에서 마주치는 아줌마들 가방은 대개 작고 빵빵하다. 그 속에 든 것들을 모조리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감상한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이런 것까지 갖고 다닌다고?! 하는물건이 속출하리란 예감이 든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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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누구나 제게 자연스러운 자리를 가지고있는 법이다. 그 자리의 높이를 결정해 주는 것은 자만심도 가치도 아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이다. 나의 자리는 지붕들이 내려다보이는 파리의 건물 7층에 있다.  - P66

80년의 핸디캡을 안고 인생을 출발한 셈이다. 그것은 한탄해야할 일이겠는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우리 사회에서는 때로는 뒤늦은 것이 오히려 앞지르는 일이 되는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간에, 할아버지가 던져준 뼈다귀를 나는 어찌나 열심히 갉아 먹었던지 그것을 햇빛에 비추어 보면 말갛게 비칠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작가라는 이름의 그 중개자들에게 싫증 내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얻은 결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재능과 공덕을혼동했다. 나는 그들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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