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지 않는 100일 필사
샘 혼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을만들지않는100일필사 #샘혼지음 #갈매나무 #서평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필사책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적을 만들지 않는 100일 필사>는 샘 혼의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이란 책을 더 깊이 만나볼 수 있는 필사책이다. 문장을 베껴 쓰는데 그치지 않고, 명언 중간중간 제시된 저자의 메시지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나의 마음과 관계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책 속의 명언을 필사하며, 단지 손으로 옮겨 적은 것에 그치지 않고, 지면 위에 옮겨 쓴 문장을 곱씹으며 내 생각을 간단히 기록해 보았다. 베껴 쓰기를 떠나 자신의 생각을 써본다는 것은 질서 없이 떠도는 마음속 생각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중요하게 느끼고 있는지 내 생각을 알아차리는 과정을 통해 자기 이해로 이어진다. 또한 이 책은 명언 아래에 원문도 함께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독자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더 깊이 탐구하며 필사할 수도 있다.

하나의 주제가 끝날 때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프리노트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다행히도 글쓰기 수업을 15년 이상 진행한 이상원 교수님께서 제시한 주제에 맞춰 자신의 생각을 쓰도록 되어 있어 부담없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막연히 그냥 쓰라고 하면 쭈뼛쭈뼛 막막하게 느껴지겠지만 이책은 체계적인 가이드와 공간을 제공해 총 14주차 완성이며 100일 필사를 할 수 있다.

책 속의 문장은 짧지만 단단했고, 강렬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이 본다’는 아나이스 니의 문장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나의 마음 상태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세상은 꿈쩍하지 않는 큰 바위 같아도 내가 마음을 달리 먹은 순간, 세상이 달리 보는 법이라는 것을 지난 경험이 그 사실을 상기시켰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용서하게 된다’는 공자의 말씀은 한 주의 마지막 문장이었던 만큼 더욱 깊이 남았다. 이 짧은 문장을 따라 쓰며 내 생각을 ‘아는 만큼 사람에게도 너그럽다. 무지는 비난을, 이해는 용서로’라고 남겼다.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그 사람이 ‘~할 것이다’라고 단정짓기 쉽지만 그 사람의 배경과 사정을 알고 나면 자연스럽게 마음도 열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하지만 타인의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는 연습을 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단순히 베껴 쓰기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이 이끄는 대로 100일 필사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적어 보면 평소 자신이 해왔던 대화 방식과 관계를 돌아볼 수 있다. 자기 성찰을 통해 앞으로 고쳐 나가야 부분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제 삶 속의 평화를 만나게 되는 내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쓰지 않으면 머릿속 생각은 뜬구름 잡는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써야 진짜 내 것이 된다. 필사와 내 글쓰기는 완벽한 짝꿍이다. 이 책 완성도와 구성은 뛰어나다. 그러나 독자들이 이 책을 얼마나 진정성있게 활용하는냐에 따라 그 책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내 마음을 거울처럼 비춰보는 동시에 인간관계를 돌아볼 수 있었다. 필사하며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도 평화를 선택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직접 필사해보며 필사 전보다 조금 더 깊어진 이해와 아량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필사로부터 깨달은 교훈은 실제 삶에 적용할 때 온전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문장이 길지 않아서 부담없이 누구나 필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하루에 한 장 딱 5분이면 충분하다!!

갈매나무 @galmaenamu.pub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사를 하자,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품고 - 사회과학 명문장 100
노명우 지음 / 원더박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필사를하자 #노명우엮고씀 #원더박스 #서평

나는 사회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편이다. 문장 속 단어들이 단단하고 그 개념을 이해하며 읽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리 길지 않은 문장들을 필사하며 내 생각을 얹어 보고 생각을 확장해 나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많은 문장을 읽지 않아도 중심이 되는 문장을 필사하며 또 다른 즐거움이 찾아왔다.

하루에 한 장씩 필사하고 그 뜻을 이해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내 생각을 글로 옮겨 보며 조금씩 사회와 과학분야에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읽기만 해서는 멀게만 느껴지던 사상이 쓰는 동안 조금씩 선명해지는 듯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이끌리듯 다음 날도 필사하게 되었고, 그 다음 날도 자연스레 필사로 이어졌다.

단지 사회과학이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선 듯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 느긋하게 종이 위로 옮겨 오는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즐거움을 만났다. 빨리 처리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분주했는데 필사는 덩달아 생각의 속도마저 늦춰놓았다.

필사책이지만 여러 작가의 저서 속 문장을 옮겨 놓은 필사책이라 평소 접하지 못했던 책들과 만날 수 있는 신선함도 있었다. 다소 차갑고 딱딱한 문장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인간과 삶, 세상을 이해하는 진리가 담겨 있었다. 책을 읽을 때도 편식이 있어서 늘 끌리는 문장들을 선호하기 마련이었는데 이 또한 내 편견임을 깨달았다. 어렵게 느껴지던 문장이 조금씩 말랑해지기 시작했다. 필사가 가장 깊이 읽는 독서법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법은 다르다.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읽기도 하고, 밑줄을 그어가며 메모를 남기며 읽는 사람도 있다. <필사를 하자>라는 책은 읽고, 베껴 쓰며, 생각을 읽어내는 과정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사회과학 문장을 접할 수 있는 필사책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시중의 대부분의 필사책으나 문학이나 에세이, 명언 중심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책은 대체로 감정적인 문장이 많아서 필사하기 쉽다. 그러나 사회과학 문장은 논리가 중심이고 개념을 이해야 한다. 어느 부분만 떼어 와서 필사한다면 이해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 필사책을 만났을 때 걱정스러웠던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학자가 엮고 쓴 필사책이고, 생각을 더 넓고 깊게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문장을 따라 쓰는 동안 그 안에 담긴 생각을 천천히 따라 갈 볼 수 있었으며 그 과정은 하나의 사유 시간이 되었다.

쓰고 나면 쓴 만큼 생각은 조금 깊어진 기분이 들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았다. 어떤 책으로 필사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향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원더박스@wonderbox_pub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정 기록의 힘
윤슬 지음 / 담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정기록의힘 #윤슬 #담다 #서평

감정은 뜨내기 기분이 아니라 마음이 보내는 또 하나의 언어다. 오늘 하루를 돌아봤을 때 나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경험했었는가를 돌아보게 한 책이었다. 설렘, 기대, 기쁨, 서운함, 섭섭함, 후회, 고마움과 같은 숱한 감정들이 가슴을 조용히 들락날락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감정들을 느꼈다기 보다 그저 하루를 살기 위해 견뎌낸 것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 기록의 힘>은 이런 내게 감정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를 건네고 있었다. 감정을 바람 스치듯 지나칠 것이 아니라, 물의 흐름을 지켜보듯 기록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일기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이것은 자기 이해였고, 삶을 살아가되 가장 인간적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끈 힘이었다.

우리는 자기 감정을 숨기는 데 급급하다. 기분이 상해도 괜찮은 척, 그것이 쿨하다고 여기는 위선 속에서 자기 감정을 돌보지 못한 채 숨기거나 억누르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 책은 기록을 통해 자기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조용히 건네고 있다.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삶을 이해하는 눈이 생긴다.

AI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지금, 자신의 감정 상태를 AI에게 물으며 설득당하고 위로받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AI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고, 듣기 좋은 말들로 위로받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는 것보다 종이 위에 감정의 언어를 써 내려가며 스스로 해석하고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자기 삶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역시 이런 지점을 명확히 짚어 말하고 있었다. 특히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잘 드려내지 않으려고 한다. 애써 빨리 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그 감정의 늪에 빠져 오랜 시간 자신을 힘들게 한다. 드러내지 않는 나쁜 감정은 독이 되어 병이 된다. 괜히 ‘화병이 난다’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니다. 울화가 치밀 때일수록 써야 한다. 기록을 통해 객관적으로 그 감정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정리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감정 기록은 글을 잘 쓰기 위한 연습이 아니었다. 쓰면서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더 나아가 나를 살게 하는 도구였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다. 그렇기에 상황 파악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감정에 휩쓸려 자신을 몰아가곤 한다. 짧은 메모처럼 시작해도 좋다. 글의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글이 된 감정은 자신을 그 감정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보게 한다. 그 거리가 감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감정의 원본은 바로 감정에서 일어난 몸의 감각을 찾아가며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 쓰지 않았을 때는 막연했던 감정들이 쓰는 순간 입체적으로 변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기 위해 감정을 구조하는 힘이 필요한데 저자는 그 방법이 바로 기록이라 말하고 있다.

저자는 감정을 잘 다루는 사람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둘째,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인가. 셋째,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였다. 어떤 비판이나 평가 없이 떠오르는 대로 적어보라고 말한다. 나는 이 질문에 따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아이에 대한 막연한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며 그 불안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부모이기에 잘 되길 바라는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내 기대 반경에 들여다 놓으려니 서로가 힘든 것이었다. 또한 조급한 건 나였지 아이가 아니였다. 나는 충분히 아이를 기다려줬었나 반성하게 되었다. 아이의 눈높이로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또한 내 몸이 좋지 않은 탓도 있었다. 마음처럼 움직여 주지 않는 몸 상태가 원망스럽고 심지어 애타기까지 했다. 그 마음을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가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니 오히려 나 자신이 어른답지 못했구나 싶어 부끄러웠다. 감정이 눈앞에 보이니 오히려 불안도 두려움도 조금씩 옅어져 가는 듯했다. ‘아, 이래서 감정도 기록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결국 감정 기록은 자신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일이었다.

글쓰기의 대상은
자기 자신일 수도,
누군가일 수도,
때로는 사회나 세계일 수 있다.
그러니까 내부와 외부, 모두 열려 있다.

하지만 기록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위의 글은 기록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문장이라 생각된다. 마지막 장을 덮기 전에 긴 호흡으로 남은 글이다. 이로써 기록은 결국 나를 향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마음의 날을 세워 보게 된다.

장미꽃향기 @bagseonju534 윤택한독서 @yoon._.books_ 서평단에 선정되어 담다 출판사
@damda_book 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책 쓰는 요양보호사입니다
김경화 지음 / 생각의빛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책쓰는요양보호사입니다 #생각의빛 #김경화지음 #서평

저자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글을 쓰고 있다. 한 줄 책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한다. 나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글을 쓴다. 돌봄의 현장은 달라도 집으로 돌아왔을 때 글로 다시 돌아오는 삶은 나와 닮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이야기는 이질적이거나 낯설지 않았다.

쉬운 삶은 없다. 그라나 그 힘듦을 배출할 출구가 있다면 인생은 그래도 살만하다. 저자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마주하는 어려움과 보람을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손길에 기대야만 할 시간은 온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그들 역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준다. 교대 근무의 고달픈 현실 속에서도 노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과 그 경험을 글쓰기로 끌어올려 삶의 의미로 바꿔내는 힘이 느껴진다. 자신의 일과 삶을 쓴 일상의 기록이기 전에 글쓰기와 필사가 어떻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도망이 아니었고, 살기 위한 정면 돌파였다. 힘들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견디고, 살아내기 위해 쓴 글이었다. 돌봄의 현장에서 그녀의 노동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그 안에서 함께 일하는 이들의 마음은 저자와 방향이 달라 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노인분들의 입장에 서 있으려는 태도는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나이가 든다고 모두가 너그러운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또 하나의 진실에 와닿는다. 일선에서 마주하는 노인의 외로움의 농도가 짙을수록 질투와 불만은 듣기 거북한 언어와 행동으로 표출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했다. ‘나도 노인이 되면 보기 흉한 감정에 휩싸여 있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도 생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 책을 읽으며 떠올려보며 다짐하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어른다운 노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요양보호사라는 직업만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가보다는 그 직업을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한 사람을 빛나게 한다. 내게 감동을 준 건 요양보호사로 살아가는 힘겨운 여정 속에서도 그녀가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간호사로 살지만 쓰는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처럼. 쓰지 않았다면 온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없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녀의 글쓰기는 내게 때로는 처절하고 경이롭다.

요양보호사의 이야기 이전에 이 책은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존엄에 관한 기록이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저자의 고백은 따뜻한 위로이면서 동시에 나를 돌아보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당히 괜찮은 정오
정오 지음 / 작은별출판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당히괜찮은정오 #정오 #에세이 #작은별

책표지를 보면 ‘정오’에 대한 감이 온다. 정오를 떠올리면 내리쬐는 강렬한 태양 그리고 눈부신 빛, 선명하지만 짧아진 그림자를 떠올리게 된다. 책 표지의 한 장면은 잠시 멈춘 일상의 한 가운데를 보여주는 듯했다. 아침처럼 설레거나, 저녁처럼 마무리되지 않은 시간의 중간쯤이랄까. 하루 중 가장 밝은 시간 같지만, 오전과 오후 그 사이에서 적당히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 책은 살면서 우리가 통과한 시간들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왔을 법한 감정들을 건드린다. 인생에서 펼쳐진 아주 사적인 삶을 글로 옮겨 놓는 일이란 그 자체로 용기 있는 일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신학대학원과 십자가 아래에서 벌어진 아버지의 사기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과 신성한 공간이 교차하는 문장 안에서 씁쓸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저자는 ‘

고개를 드니 저 멀리 교회 지분 위 십자가가 보였다. 목돈을 투자하면 돈을 불려주겠다고 말하던 사람이나 그 말을 듣고 전 재산을 가져온 사람이나, 신학대학원이 참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P49)라며 비난 대신 다소 냉소적이면서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 건조함이 오히려 깊게 남았다. 빛과 그림과가 함께 존재하는 시간. 삶의 정오.

엄마의 관계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딸의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의 팔에 남은 상처와 멍자국을 보며 얼마나 울컥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요양 병원에서 노인분들을 케어하며 그들의 손아귀 힘에 못 이겨 생긴 흔적들임을 왜 모르겠는가. 대수롭지 않은 듯 좀 더 조심하라는 다소 퉁명스러운 말로 엄마의 삶을 지켜주는 그 마음에는 사랑과 미안함이 묻어 있다. 알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진짜 말은 사랑이다. 우리는 종종 사랑에 정직하지 않고 또 다른 언어로 빗겨 말하곤 한다.

자기 크기만큼 살려는 태도는 의외로 쉬운 일이 아니다. 화가 날 때 걷는 것, 책을 읽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남편과 어설픈 요리를 하며 소박한 행복을 찾는 일. 또한 툭종보다 한 꼭지의 기사를 쓰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삶으로부터의 깨달음. 이 모든 것들의 고백에서 저자의 단단함이 느껴진다. 삶을 타인의 잣대에 두지 않고 나를 인정하며 주어진 삶에 충실 하려는 움직임은 저자가 말하는 ‘정오’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저자는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가장으로서 버텨야만 했던 시간들 속에서, 그리고 기자로서 소명을 다해야 하는 가운데 따라주지 않는 현실과 직장 상사의 꼰대짓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지만, 정작 우리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얼마나 둔감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더 나아가 출산과 생계, 꿈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갈등과 동시대의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층의 사고를 엿볼 수 있었고, 그들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행복을 통해 자신의 기쁨을 발견하는 마음을 지나치지 않았다. 꽃이 저자의 삶에 숨구멍이 되어 주듯, 자신이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마음이 다시 자신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는 믿음을 만들어 낸다. 자기 안의 선을 꺼내쓸 줄 아는 사람은 언제든 행복할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더 좋았던 책이다. 나 역시 누군가의 삶을 통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갈망하던 때가 있었다. 저자가 꺼내든 ‘한 달 살기’ 로망 역시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바라던 로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자는 누군가의 한 달 살기를 ‘지금 눈앞의 한 달 살기’로 시선을 돌린다.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내게 주어진 한 달을 차곡차곡 잘 살아내는 일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일임을 돌아보게 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좋은 일과 나쁜 일 속에서도 우리는 결국 잘 적응하고, 그 순간을 매일 찾아오는 정오처럼 일상으로 만들 수 있다.

인생에도 정오가 있다면 바로 지금일지 모른다. 나는 이미 많은 시간을 지나왔지만, 아직 거쳐야 할 시간이 남아 있다. 화려하거나 눈부신 나날이 아니어도 괜찮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적당히 나를 지키며 서 있는 그 자체로 충분할 수 있다.

p256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언제나 망설임 없이 ‘행복’이라고 답하면서도 몰랐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 나의 행복이 전부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나를 통해 행복한 얼굴을 하는 것, 그 또한 커다란 행복이었다.

정오 작가님 @work.walk.write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