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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ㅣ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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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지 않았다. 과거에 신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신의 드러남을 마주할 인간이 죽었다.’ P12
첫 페이지를 넘긴 순간 선명하게 들어온 문장이다. 이 문장은 인간을 향한 냉정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묻는 듯했다. 조금 깊이 들어가 보니 우리가 잃은 것은 바로 주의력과 고요함이었다. 고요를 견디지 못해 고요를 찾아다니고, 주의를 잃어버린 채 몰입을 갈망하며 헤맨다. 잠시도 멈출 줄 모르는 살 ㅁ속에서 우리는 우리 안의 신과 마주할 시간을 잃었다.
이 문장은 ‘더는 내안의 나와 마주하지 않게 되었다’라는 의미로도 읽혔다. 주의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신의 부재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 타자의 사라짐을 의미한다. 더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상태의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느라 정작 내 안의 나와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의 소멸에 이르게 된다.
주의는 모든 것의 기원에 가깝다. 주의가 있을 때 겸손이 가능해지며, 진정한 사랑도 존재한다. 주의를 잃은 인간은 창조할 수 없으며 어떤 것을 향한 열망을 일으킬 수도 없다. 이미 존재하는 것 너머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에 닿는 것은 오직 깊은 주의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주의와 고요의 회복은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길과 같다. 주의는 기다림과 참을성으로 회복이 된다. 의지로 무엇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 기다림과 참을성만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고, 타자로의 사랑과 신성이 스스로 드러나게 한다.
‘나의 신이여,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게 하여주소서!’ P47
시몬 베유의 문장은 또 한 번 나를 깊은 시유의 세계로 초대한다. 필경사 바틀비처럼 자기를 탈창조한 순간이 내게도 있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쉽게 떠오르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미 나는 나름대로 몇 번의 탈창조의 순간을 넘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이 매일 써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은 억지로 글을 쓰지 않는 선택을 하고 ‘공’의 상태로 돌아가기도 했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선택이었으며 동시에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또한 나는 필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나에게 필사는 성과와 결과로 기록되기 보다 그 순간의 고요에 가깝다. 고요 속에 머무르면서 내 글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탈창조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더 나아가 내가 쓰는 모든 글이 책이 될 수 없다. 쓴 글 중에서 어떤 것은 빛을 보지만 어떤 글은 내 어두운 서랍 속에서 잠을 잔다. 세상에 내놓지 않은 글의 선택 역시 나에겐 대단히 용기있는 탈창조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의미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상태가 탈창조가 아닐까.
‘신이 화가의 눈으로 자신의 피조물을 바라본다’p112
이 한 문장에서 또 다시 머물며 신의 감정을 상상한다. 화가의 눈을 통해 작품을 보는 이는 신이며 그 작품은 신의 작품이다. 화가는 신의 뜻대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신이 잠시 머무는 곳이며 그의 눈을 빌려 세상을 본다. 그 어떤 판단도 없이 그저 자신이 만들 피조물을 바라볼 것이다. 그때 신은 어떤 감정일까? 이 상황을 나에게로 가져온다. 내가 쓴 글이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을 때 바라본 그 눈은 신의 눈이며,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신의 감정이다. 책 속에는 나의 경험과 아픔, 생각들이 담겨 있다. 내가 쓴 글 속에서 낯선 나를 보기도 한다. 책이 된 글 앞에서는 고쳐야겠다는 마음도, 그 어떤 평가도 없다. 오롯이 나를 보듯 존재 그 자체로 보게 된다. 이미 나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하나의 세계를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것도 아주 흐뭇하게. 그리고 깨닫는다. 글을 쓸 때는 내 글의 신이 되었지만 책이 된 이후의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되돌아간다.
주의가 바깥세상에 지나치게 쏠려있거나, 생각이 많아져 그 수위를 넘어서면 모든 것이 포화상태에 이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두통이 밀려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이 지속된다. 의지는 힘을 잃고 생각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 상태를 벗어나려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애쓰는 것을 멈추고 오직 두통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두통이 지나간 자리는 머릿속이 텅 비워진 것처럼 투명하다. ‘아픔과 아름다움의 근친성. 나의 두통이 절정에 이른 다음에 찾아오는 시 쓰기 욕구’p123처럼 글이 쓰고 싶어졌다. 삶에서 찾아오는 모든 아픔은 자기 몸과 자아의 층위를 통과해 영혼으로 돌아오는 비싼 통행료일뿐이었다.
고요는 유위를 잠재우고 무위에 이른다. 다시 그 빈공간을 주의로 머문다. 주의, 탈창조, 빈자리, 고요, 아름다움, 아픔, 무위, 이 책의 목차는 하나의 순환을 이루는 듯하다. 나는 <신에 관하여>를 읽고도 다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끌림’이 있다. 책장에 꽂았다가도 다시 꺼내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김영사 @gimmyoung에서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