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을 때까지 기다려
오한기 외 지음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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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너무 귀엽고 폭신한 일러스트 표지에 깜짝 속아 버렸다. 전도유망한 작가 5명의 디저트를 소재로 한 단편 5가지가 실려 있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가볍고 발랄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충격(positive)이었다!

에세이인지 소설인지 헷갈릴 정도로 실감 났던 <민트초코 브라우니>부터 시작해서 타인의 전생을 볼 수 있게 된 <세계의 절반>, 죽음을 앞두고 사백 여 개의 곰 젤리로 다시 태어나 어떤 이를 애타게 찾는 <모든 당신의 젤리>, 인연과 헤어짐을 다룬 <박하사탕>, 가족 간의 '이해'를 생각하게 되는<라이프 피버> 등, 고립과 연결, 개인과 타인 사이 선을 아슬하게 넘나들며 얽히는 미묘한 감정선이 놀라운 수작들이었다.

5명의 작가들 각자 개성도 뛰어나고,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뚜렷해서 정말 몰입해서 읽었다. 어쩐지 긍정적인 이미지만이 느껴지는 '디저트'라는 소재로 이런 심도 깊은 이야기를 창조해 내다니...... 무궁무진한 이야기 보따리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타인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의 절반>이 조금 마음이 아팠고, <모든 당신의 젤리>를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나는 문학 작품에서 이런 방식으로 개개인의 상처를 다루는 방식을 좋아한다.

한 입 베어 물면 그저 달콤한 맛에 행복하다가도 오랜 시간 쌉싸그레한 뒷맛을 남긴다거나 입안에 끈적하게 들러붙어 시간이 흘러도 찝찝한 여운을 남기곤 하는 디저트의 양면적인 특성을 사람과 삶의 이야기로 잘 풀어내 좋았던 단편집이었다. 판형도 조그맣고 귀여워서. 어쩐지 잔잔한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분위기의 작품들이라… 정말 반전 매력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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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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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많이 기다렸습니다
수상 이력이 대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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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 제닝스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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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작가 캐런 제닝스는 아프리카의 잊힌 슬픔의 역사에 대해 조명하고자 여러 작품을 썼고, <섬>으로 2021 부커상 후보로 선정돼 자국을 넘어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소설 <섬>으로 한 인간의 비참하고 고독한 생을 바라보며 민족 전체의 슬픔이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낱낱이 목격하고야 말았다.


일흔 살의 노인 새뮤얼은 섬 하나를 홀로 지키고 있는 등대지기이다. 바다로 떠밀려 오는 시체 몇 구를 발견해 틈틈이 신고했으나, 같은 민족으로 추정되지 않는 시신에 대해선 국가의 대응이 영 시원찮다. 새뮤얼은 자신이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한다. 어느 날, 젊은 남자의 시신을 발견하지만 이내 그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오두막으로 데려온다.


새뮤얼과 남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며칠 간 돌보다가 공급선이 오면 태워 보내려고 하지만, 남자의 부정확하나마 "살려주(살려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그를 숨겨 준다. 그리고 그가 불법 입국을 시도했다가 사고를 당한 난민 출신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작스레 새뮤얼의 나날에 들어온 이 남자로 인해, 새뮤얼은 잊고 싶던 과거를 계속해서 떠올리고 폭력의 역사로 점철된 이 개인사는 '남자가 자신을 죽이고 이 섬과 오두막을 차지하려 든다'라는 망상으로 이어진다.


정치범으로 몰려 약 20여 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나날의 기억을 통해 가족을 잃은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잃어 버린 젊음에 대한 후회와 통탄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새뮤얼과 그 일행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물해 줄 것만 같던 독립은 사실상 그들처럼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이들에겐 그 어떤 희망도 되지 못했고, 실체 없는 허상 그 자체였다.


폭력적인 행사에 참여하면서도 누군가의 목숨을 해치지는 않았던(못했던) 새뮤얼의 보답받지 못한 자부심은 세월이 흐르며 아픈 기억과 함께 서서히 부서져 내렸는지도 모른다. 이방인 남자를 향한 오해와, 그 오해가 풀리며 생겨났던 따스한 위안과 연대의 마음은 남자가 늙은 암탉의 목을 꺾으면서 완벽하게 지워져 버린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도 공감받지도 못했던 인생은 결국 슬픈 경계심으로 끝을 맺고 만다. 새뮤얼과 섬은 다시 침묵하며 혼자가 된다. 마치 남자가 없었던 나날들처럼, 남자를 지워 버린 그가 다시금 안정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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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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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 어렸을 땐 멋모르고 재밌게 읽었다지만 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어쩐지 못마땅하고 부조리하게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신이라고 해서 다 완벽한 존재는 아니고,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점이 큰 깨달음이었지…… 제시 버튼의 <메두사>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명암을 재조명하며 애매하다고 느꼈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다들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에 얽힌 이야기는 알 것이다. 철저하게 페르세우스의 입장에서 쓰인 그 이야기에서 메두사는 그냥 무수히 많은 뱀이 머리에 달린 흉측하고 잔악한 괴물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메두사의 이야기는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메두사의 머리를 도려낸 페르세우스만을 영웅으로 칭송하기 바빴다.


포세이돈의 욕망을 위한 희생자였으며 그로 인해 억울하게 아테나에게 벌을 받게 된 어린 나이의 메두사와 두 언니들의 고립된 삶…… 페르세우스의 표류로 한순간이나마 친구와 연인을 얻은 듯했으나, 끝내 메두사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닌 해치워야 할 괴물로 받아들인 페르세우스의 잘못된 판단(물론 그에게도 어머니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서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아무래도 메두사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이기에 메두사에게 쉽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단 며칠 간의 대화로 사랑에 빠져 너무 쉽게 상대를 믿어 버린 소녀의 심정이 어쩐지 과거의 순진했던 내 모습을 상기하게 했고, 고향에 애인을 두고 왔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너는 내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여자다'라는 류의 가벼운 대사를 내뱉고서 메두사의 정체를 알자마자 쉽사리 돌변해 버린 페르세우스가 ㅋㅋㅋ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비겁하게 느껴졌다.......


새로이 해석된 <메두사>에는 여성의 수동적인 태도만을 미덕으로 삼았던 옛 사회상을 그대로 그려 내 같은 여자로서 억울하게 느껴지고 공감되는 장면이 많았다. 솔직히 나조차도 메두사의 이야기는 여태 궁금해하지 않았기에, 남성신화를 위해 조력자로밖에 등장하지 못한 다른 여성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고 이 점이 특히나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일러스트가 상당히 멋진 책이기에 꼭 종이책으로 보면 더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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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말 풍요의 바다 2
미시마 유키오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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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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