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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 - 신화에 가려진 여자
제시 버튼 지음, 올리비아 로메네크 길 그림, 이진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평점 :
그리스로마신화, 어렸을 땐 멋모르고 재밌게 읽었다지만 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어쩐지 못마땅하고 부조리하게 여겨지는 부분도 많다. 신이라고 해서 다 완벽한 존재는 아니고, 인간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점이 큰 깨달음이었지…… 제시 버튼의 <메두사>는 그리스로마신화 속 명암을 재조명하며 애매하다고 느꼈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다들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에 얽힌 이야기는 알 것이다. 철저하게 페르세우스의 입장에서 쓰인 그 이야기에서 메두사는 그냥 무수히 많은 뱀이 머리에 달린 흉측하고 잔악한 괴물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메두사의 이야기는 궁금해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메두사의 머리를 도려낸 페르세우스만을 영웅으로 칭송하기 바빴다.
포세이돈의 욕망을 위한 희생자였으며 그로 인해 억울하게 아테나에게 벌을 받게 된 어린 나이의 메두사와 두 언니들의 고립된 삶…… 페르세우스의 표류로 한순간이나마 친구와 연인을 얻은 듯했으나, 끝내 메두사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닌 해치워야 할 괴물로 받아들인 페르세우스의 잘못된 판단(물론 그에게도 어머니를 구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서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으로 그들의 관계는 끝이 난다.
아무래도 메두사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이기에 메두사에게 쉽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단 며칠 간의 대화로 사랑에 빠져 너무 쉽게 상대를 믿어 버린 소녀의 심정이 어쩐지 과거의 순진했던 내 모습을 상기하게 했고, 고향에 애인을 두고 왔다고 말하면서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너는 내가 그토록 기다려 왔던 여자다'라는 류의 가벼운 대사를 내뱉고서 메두사의 정체를 알자마자 쉽사리 돌변해 버린 페르세우스가 ㅋㅋㅋ 아무리 어린 소년이라고는 하지만 조금 비겁하게 느껴졌다.......
새로이 해석된 <메두사>에는 여성의 수동적인 태도만을 미덕으로 삼았던 옛 사회상을 그대로 그려 내 같은 여자로서 억울하게 느껴지고 공감되는 장면이 많았다. 솔직히 나조차도 메두사의 이야기는 여태 궁금해하지 않았기에, 남성신화를 위해 조력자로밖에 등장하지 못한 다른 여성 캐릭터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고 이 점이 특히나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일러스트가 상당히 멋진 책이기에 꼭 종이책으로 보면 더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