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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평점 :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을 읽고 란포에게 사랑에 빠짐. 진실로… 이렇게 매력적인 기담집이 또 있을까? 기이하고, 불길하고, 음침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의 향연이다. 왜 다들 일본 미스터리 하면 란포, 란포 하는지 알겠다.
모든 에피소드가 하나같이 마음에 들었던지라, 10점 만점에 10점 주고 싶다. 사실 단편을 엮어 둔 책은 그다지 기대하고 읽진 않는 편인데(각 편마다 기복이 심한 작품이 많아서) 해당 기담집은 처음부터 끝가지 너무너무너무 매력적이었다. 원래는 며칠에 걸쳐 천천히 읽으려고 했는데 주말 반나절을 통으로 쏟아 완독했다. 진짜 재밌었음.
억지스러운 권선징악이 없어서 더 좋았다. 미스터리 한 사건은 미스터리 그대로 남기는, 어떻게 보면 애매한 결말도 어떤 환상의 세계 속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이게 대체 무슨 전개야!"라고 부르짖게 되는 에피소드도 그저 허무맹랑하지 않고 인간 내면 속 깊이 숨어있는 사악함을 짙게 뿜어내고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어쩐지 현대의 미스터리, 공포의 토대가 되는 작품들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익숙한데도 새로웠다. 이 시대 사람들은 이 소름 돋는 자극을 얼마나 더 풍요롭게 느꼈을까. 부럽다.
유독 기억에 남는 단편은 <애벌레>인데...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인간의 생을 향한 집념과, 한순간에 그 집념을 포기해 버릴 수밖에 없는 절망이 여실히 느껴졌다.
란포는 살아있을 당시 대체 어떤 하루를 보낸 걸까? 작품을 위해 매일 이런 류의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면, 왜인지 그가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어떻게 보면 극히 일본적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이런 음침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무척 맘에 들었지만.......
보통 리뷰에 이런 말은 잘 안 남기는 편이지만 책 만듦새도 일품이었다. 표지가 약간 벨벳 천 느낌 나는데, 그래서 촉감이 상당히 부드럽고 고급스러워서 '에도가와 란포'라는 네임밸류에 딱 걸맞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여름에 읽기 딱 좋은 서늘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