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꿰맨 눈의 마을 트리플 22
조예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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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퍼센트의 빙하가 녹아 도시와 나라가 물에 잠겼다. 인체의 일부가 흉하게 변형되고, 급기야 정신까지 갉아먹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저주병'이 유행했다. 그렇게 인류는 멸망했다.

운 좋게 재난과 병을 피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타운'이라는 공동체를 꾸렸고, 앞으로도 계속 무사히 살아남기 위해 규칙을 만들었다. '얼굴이 아닌 곳에 이목구비가 돋아나면 곧바로 신고할 것.'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세 번째 팔, 두 번째 머리, 다섯 번째의 눈이 생긴 저주병 감염자들은 독이 든 미트파이와 함께 추방 되었고, 이름을 잃었다.

감염된 채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했던 부모, 모두의 생존을 위해 아버지를 버려야 했던 아들, 그리고 사랑하기에 함께 추방되기를 택한 연인…….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감히 판단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사람들의 선택은 결국 '나'와 '우리'를 위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결론을 내리고 움직인다. 설령 그게 도덕적이지 않고 불합리하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평소에는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는 말아야지'라고 다짐했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혐오의 색안경은 벗어 던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와 다른 존재라고 판단해 배척하고자 하는 마음은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주변에 전염된다. 주관적인 기준을 세워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문을 닫는 모습은 현실에서도 늘 볼 수 있다. 잠시 저주병의 진정한 형태는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신체가 변형되는 것보다, '사람'을 재단하고 저버리는 행위가 오히려 더 저주병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까.

근미래를 무대로 현실의 모습을 꾹꾹 눌러 담은 놀라운 소설이었다. 스산하고 우울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인물들의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응원하고 싶다. 다름을 인정하고 혐오의 시선과 굴레를 벗어나면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 이 따뜻한 진리를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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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XX 새소설 14
김아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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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자음과모음 경장편소설상을 수상한 김아나 작가의 <1990XX>를 완독했다. 의미심장한 제목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1990년대, 불합리하고 가학적인 미신을 믿은 어른들에 의해 탄생조차 할 수 없었던 여자아이들을 위한 이야기. 누군가는 꼭 써야 했던 이야기. 김아나 작가가 아니라면 그 누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첫 단편부터 강렬했다.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다. 시부모님과 남편의 강요로 아기를 지워야 했던 무수히 많은 엄마들. 건강을 해친 것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도 바로 엄마들이었다. 태어나지 못한 딸들은 유령-아기가 되어 빈 자리를 떠돌았다. 소설 속 시공간의 불분명한 분열과 한평생 불리지 못한 이름들의 나열은, 그야말로 이 아기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인식되길 바라는 간절한 기원을 담아낸 장면이었다. 슬픈 천도재가 뇌리에, 마음에 콱콱 박혀 들어왔다.

'백말띠 여자아이들은 기가 세다' '백말띠 여자 아이들은 팔자가 드세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낭설이 또 있을까? 도대체 세상에 태어나선 안 되는 아기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단순히 딸이었기 때문에 지워져야 했던 무수히 많은 생명들…… <1990XX>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운명이 타인에게 좌지우지 되지 않도록, 주어진 미래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해서 그리고 버려지거나 환영받지 못하는 다른 여자아이들을 지지하기 위해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택했다.

장손 중심주의, 남아 선호 사상과 더불어 백말띠 여자아이들에게 내려진 저주 아닌 저주에 대해 다룬 괴담을 적절히 배치함과 동시에 한국 풍속신앙의 공포스러운 면모를 조화롭게 섞어 굉장히 기묘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이런 장치는 1990년대의 비극을 온전히 담기 위한 최선의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서늘했던 이야기들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고 따라서 무척 만족스러운 일독이었다.

1990년에 자행된 '여아 집단 낙태' 사건은 한국 사상 최악의 성비를 만드는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이는 분명 지금까지도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끔찍한 사건은 이미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어버렸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선 안 될 것이다. 잊혀 가던 안타까운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내 준 작가에게 감사하고, 불합리하게 스스러져 간 생명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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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료시카의 밤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 / 리드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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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은밀실에숨는다를 재밌게 읽어 이 책도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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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유괴 붉은 박물관 시리즈 2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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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이번 신작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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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박물관 붉은 박물관 시리즈 1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 / 리드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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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신선하네요~ 그리고 반전의 반전이라니... 어떤 트릭의 향연이 펼쳐질지 너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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