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의 수준이 일정 단계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자기 착취가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스스로 불타버릴 때까지 (번아웃) 스스로를 착취한다. 이때 발생하는 자기공격성은 드물지 않게 자살의 폭력으로까지 치닫는다. 이로써 프로젝트는 성과주체가 자신에게겨냥하는 탄환 Projektil임이 드러난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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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융과 헤세도 동의할 만한 글귀를 썼다.
 
그러나 여기 있음이 대단한 것이기에, 그리고 겉보기에는 우리를
여기의 모든 것들이 필요로 하기에, 이 사라져가는 것들,
묘하게도 우리와 관계가 있는, 우리, 가장 쉽게 사라지는 존재와.
한 번,
그때마다, 오직 한 번. 한 번 그러고는 그만. 그리고 우리도 또한
한 번뿐. 되풀이는 결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한 번 있었다는 것, 단 한 번이라도,
지상에 있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
……
─ 그리고 이들, 사라짐으로써
살아가는 사물들은 이해한다, 그대가 그들을 찬양하고 있다는 것을,
덧없이,
그들은 우리, 가장 덧없는 존재들에 구원을 의탁한다.
그들은 원하노니, 우리가 그들을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서 온전히
─ 오, 무한히─  우리 자신으로 변용시키기를!  끝내 우리가 누구이든.
 대지여, 이것이 네가 원하는 바가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게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기가? ─ 그대의 꿈이 아닌가,
한 번은 눈에 보이지 않기가?─ 대지여, 보이지 않음이여!
무엇이, 변형이 아니라면, 그대의 가장 긴박한 위탁이랴?1 - < 헤세와 융, 미구엘세라노 지음, 박광자,이미선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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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성을 믿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종국에는 자신이 어리석은 협잡꾼인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항상 누군가에게 이를 들킬 것만 같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됩니다. - < 이것은 물이다, 데이비드포스터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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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가입국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40명씩 자살한다. 입시 지옥 속에서 학생들은 자살하고, 정리해고와 가계 부채로 4, 50대는 자살하며, 극빈과 고독 속에서 노인들은 자살한다. 처음 한 명의 죽음은 ‘자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죽음부터는 ‘타살’이고, 수백 수천 번째가 되면 그것은 ‘학살’이다.

(2012. 7. 5) -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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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들에게서 내가 감지한 정서는 어떤 벅찬 충만감이었다. 그것은 아주 오랜만에 ‘살맛 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인, 삶의 입맛을 되찾은 이의 에너지였다.

애초부터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대통령을 ‘호위’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용’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구나 무엇을 이용한다. 공허한 삶을 ‘의미’로 채우기 위해서는 이용할 무엇이 필요하다. 나에게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일을 할 때 나는 중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살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느낌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삶은 얼마나 충만해지는가.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태극기 집회는 정치적 저항이라기보다는 존재론적 축제일지도 모른다. -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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