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년전에 읽었던책을  책모임 추천도서 덕분에 다시 읽게되었다. 내용이 가물가물했었는데. 새책을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이몹쓸 기억력은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나이가 들어감에 쇠퇴하는 기억력에 좌절한다.

 

지금 다시 읽어도 제목과 내용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 이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행복이다.

민주주의 표상인 자유 평등 이런 거창한 담론보다도 우리 삶의 목적은 한마디로 행복..불행하기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행복할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야는게 맞다 .하지만 삶에서 늘 행복함을 느끼기란 쉽지가 않다. 때론 살아 내야한다 는 어휘가 딱 어울리다 싶을정도로 삶이 녹록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압하는  본질적 한계를 가지기에  우리는 늘 행복할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늘 투덜 대고 살수는 없지않는가.

 

 "행복" 이 개념은 결코 내가 미래에 다다야할 것. 성취 해야하는 미래의 어느지점에 있는것이 결코아니다.지금 이순간 책을 읽고 나눔을 가지는 이순간.. 하다 못해  살랑거리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침대에 느긋하게 누워 있을때, 사장님 부재시 점심시간에 누리는 자유에도 행복감을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행복을  개념적정의가 아닌 조작적 정의로 접근해야한다고 한다. 내가 행복하려면 구체적

어떤시간에, 무엇을 하는시간에 행복한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한다

 

작가는 예를 들어 호텔의 화이트 침구와 조명을 예를 들며,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이트시트와조명을을 바꾸면서도 큰 행복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사소해보일듯한 수첩 계속 바꾸면서도 행복을 느낀다고한다. 사소하지만 , 내가 결정할수 있는 행위에서 자유와 행복을 느낀다는 것.

 

나의경우에도 명품백을 산다던가 사치품을 사는것보다 ,소소하게 소비하는 행위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나역시 최근 화이트 시트로 교체하고, 사각거리는 소리와 매끈한 감에 즐거워하며, 행복 별거 있니 하며 친구에게 전화했던일이 생각나며 고개를 끄덕여본다

 

몇년전에는 얼굴만 안보면 목소리와 글솜씨 달변가인 김갑수씨 책과 강연에 흠뻑 고무되어, 그라인더와 드립커피. 커피 강좌까지 들었었다..

김정운작가가 주장하는 그 리츄얼을 카피하고 싶어서..리츄얼이란 반복하는 행위 즉 습관과 비슷하지만, 감정이 따라다니는 사소하지만 즐거워지고 그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수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김갑수의 지구위의 작업실 이라는 책을보며 지하에 그가 차려놓은 줄라이홀을 가보고 싶고, 나도 그렇게 따라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었다.

사진작가 윤광준, 김갑수, 김정운교수는 아주 절친이다.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 늘 망사스타킹을 말하고 , 여인을 말하는것도 똑 같다.

괴짜들이면서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말하는게 설득력있다

말하자면 행복에대한 뜬구름 잡기의 개념적정의가 아니라 , 오늘 하루 행복한 시간은 얼마였나, 어떤 순간이 행복한지, 어떻게하면 즐거운지 .. 명확하게 자기자신한테 질문을 던지고,

정말 내가 좋아하는 행위를 간절하게,두려움없이 미치자 라는 거다

 

내가 읽은 그의 두번째작품도 어떻게 미치지 않을수 있겠니 이다.주로 클래식및 재즈에 대한 그이 해박한 지식을 풀어낸 책이다

 

정말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놀던사람이 놀줄 안다고,..행복해지려면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능력을 개발해야하는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것을 분명히 할것.. 특히나 나이들면서는 사소하지만 즐거운 리츄얼을 개발해야하는건 맞다.

그래서 삶은 끊임없이 배워야하는것 같다..

김정운교수는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그림을 배우러 일본으로 갔다. 그리고 일어 영어 독어 등 새로운 언어를 도전해서, 일어책을 펼쳐서 비행기에 탑승할거라한다. 만약 옆에 앉은 여인이 아름답지 않으면, 과감히 비행기를 갈아탈것이라며.. 자기 얼굴도 생각해야지..

 

어쨋든 살면서 스스로를 계속 확인해나가는 작업, 관계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확인 하는 일이 중요하다. 처칠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동안에도, 아내의 배신에도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를 확인했다지 않는가

 

또 깊이 공감하는 그의 주장에는 ,후회에는 하지 않고 하는것과 하고 후회하는것이 있는데, 전자는 오래가는 반면,후자에 대한 후회는 무척 짧다고 한다.

이말에 이의를 달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내가 나의 삶의 주인으로 살기위해서는 스토리가 많아야 할것 같다. 나에 대해 이야기 할것이 없고, 늘 남의 뒷담화나 하며 사 삶에서 어떻게 내가 주인공일수 있을까

내이야기가 없다면 삶이 재미 없다는 얘기이다.사실 재미라는 개념도 20세기에나 들어서 정의되기 시작했다. 신분이나 계급.친족등에서 개인이 분리되면서 , 개인의 주체성이 부각되고,

그동안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자신의 행동과 느낌에

대하여 스스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조직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로는 설명될수가 없다.

 

 

"우리는 생각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하는것이다.

언어는 곧 생각이다. 러시아의 언어학자 비고츠키의 말. 생각은 언어에 다라 달라진다.

 

자기가 찾은 작은 즐거움에 대해 가슴 벅차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진짜 삶이다.

이런사람들은 남의 감정에대해서도 관대하다, 훨씬 덜 적대적이다. 왜냐면 상대방을 인정하는것이 나라는 존재가 성립될수 있기때문이다.

 

내삶의 콘텍스트에 관한 성찰이 필요하다.제껏 살아왓는데,열심히 살아왔는데, 갑자기 내동댕이 쳐진 느낌이 들때는 내삶의 콘텍스트가 바뀌는것을 모르고 살아서이다

이콘텍스트를 찾기위해 일기를 쓰거나 여행을 하는것도 당연히 권장할 사항이지만 늦으막히 떠난 일본 유학에서 외국어를 익히는것도새로운 콘텍스를 만드는 것일수 있다는것.

 

 

나이들수록 자신들만의 문화적 맥락을 다양하게 만드는것,자신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소비하면서 창조 하고, 나와 즐거운 것을 공유할수있는 재미 공동체를 구성하는것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갖는 비법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석 평전
안도현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오래전 부터 궁금해 왔다. 10년도 더 되었나보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인의 시를 보고 반해버린후 나는 나타샤가 되기로 한다.

그후로 아뒤를 모조리 나타샤로 바꾼적이 있었다.

 

안도현시인은 30년전부터 백석시인을 짝 사랑 해왔고, 어떻게든 백석을 닮아가려 했었고, 백석을 기리고 싶었다고 한다.또한 해금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진 백석연구서들의 오류 부분도 바로 잡아보고 싶은 바램으로 , 소설도 아닌 평전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해방이후 남한 문단에서는 접할수 없었던 시인이고, 1996년에 북에서 사망한것으로 되어있으니 분단후 46년의 시간에 대해서는 어떠한 확인된 시인의 행적은 알수가 없을것이다.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출신으로 오산고보를 나오고 , 금맥으로 벼락부자가된 후에 조선일보 창업주가 된 방응모의 장학금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후 돌아와서 ,조선일보에서 일을 시작하며, 시집" 사슴"으로 문단데뷔를 하게 되는데 . 100부한정으로 자비로 출간하 사슴은  그당시 큰반향을 일으켰다고한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둘다 껴안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의 신문물과 문학을 접한 그는  외모뿐아니라, 기질에 있어서도 모더보이로 변모해 있었고 그당시의 문단여류 작가들에게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로 시작되는 노천명의 사슴도 그를 연모의 대상으로 시를 썼다고 하니.  신여성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음을 부인할수 없으리.

그의 시또한 토속적이며 향토적인 소재로 시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던하면서 감각적이나, 결코 다른 시류에 속하지않는 백석만의 시세계를 개척했다고 한다.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평범한 삶을 걸어서는 결코 예술가가 될수없나보다. 그를 스쳐간 아프고 애틋한 사랑이 그의 시세계의 자양분이 되었다.

백석의 일생에 걸친 사랑은 평범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사랑이 그의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수가 없다.

백석은 친구의 결혼식에서 만난 통영 처녀 박경련을 잊지 못했지만, 결국 친구에게 사랑을 놓치고 또한 우정또한 잃어버리게된다.

 

또다른 여인 본명이 김영한여사와는 백석이 자야라고 부르며 , 평생동안 사랑하는 사람으로 남게된다. 이 자야여사는 집안의 몰락으로 어쩔수없이 기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백석을 처음 만날날 부터 사랑에 빠지며 , 그후 한국최고의 요정 대원각까지 운영하는 사업가가되고, 마침내는 1000억원에 이르는 대원각 부지를  아무런댓가없이 법정스님에게 보시하면서  이요정은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죽을때까지 백석을 잊지못한 자야여사는 전재산을 보시하면서 결코 백석의 시한줄에도 비할수가 없다는 말을 남긴다.

 

백석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시기를 온몸으로 살다간다. 1912년에 태어나 1997년에  북한의 오지 농장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도, 친일도 아닌 입장을 취하게 된다. 그나마 친일행위로 인한 개인사적인 흠집이 없는게 아주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그시기에는 시를 포기했었고, 번역 작업에 물두 했었다.

어찌보면 그의 시구대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았다고도 볼수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싸움으로 인해 분단의 시기를 맞아서는 월북이 아닌 재북 시인으로 남게 됨으로,  해금전에는 북한작가로서 제대로 된 연구도 없었고, 한국 문단에서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불운을 겪게된다.

그나마 해금으로, 그의 작품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어들 구조등이 알려지게 되고, 석박사 논문이 600편이 될정도 로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되었으며,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되고, 안도현시 세계의 사부가 되며, 벼락치듯 나를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에도 뽑혔으며, 그의 시를 읽으며, 우리마음이 정화되고ㅡ, 마음이 움직이고, 처연하면서  서글퍼지고, 눈내리는 마을의 북방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져 옴을 느낀다.

 

그러한 그가, 북한 체제에서 본래의 시작법에 충실하게 마음을 담은 동화를 쓰다가 체체 선전용의 시가 아니라는 이유로 오지인 산수에가서 농장을 하며 자아 비판을 당하게 되고 몇몇의 체제 순응적인 시를 남긴게 너무 가슴아프다... 서정적인 운율로 우리마음을 움직인 사슴의 시인이 그런 시를 썼다는게 너무 가슴아프고 목이 메인다.

 

과연, 그는 시를 쓰지 않고, 노동자의 삶을 살았던 그시간이 행복하였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하로부터의 수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고전작품 zip 의 김정아 교수님의 해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도스토옙스키의 전 창작 활동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두 시기로 구분하는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으로서, 과거 작품에 대해서는 거부의 정신으로 충만해 있으며, 이후 대작 소설들에 대해서는 철학적 서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비록 양적으로는 그리 많지 않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작가의 5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에서 나타나게 될 주요한 주제들, 정치적ㆍ철학적ㆍ윤리적ㆍ종교적인 제반 문제들과 그 해결 방안으로서의 구원의 문제들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1860년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반박이었다. 작품의 이런 동기와 특성 때문에 저명한 도스토옙스키 연구가 조세프 프랭크(Joseph Frank)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패러디로 생각지 않는다면 작품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니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전경화()된 텍스트 뒤에 존재하는 체르니솁스키의 후경화된 텍스트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우리는 답변은 있되, 질문은 없는 채로 남겨지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체르니솁스키가 과연 누구이며, 그의 사상이 어떠했고, 그가 쓴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체르니솁스키는 1860년대 당시 젊은 지성인들 사이에 열렬한 우상적 숭배를 받을 정도로 감격을 불러일으켰던 허무주의적 유물론의 기수였다. 그는 인간 본성이 원래 선하며, 인간이 사악한 행위를 하는 것은 사회가 그에게 자신의 욕구와 능력을 만족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인간 안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체계와 환경의 탓이라고 여겼으며, 따라서 환경이 좋아지고 개선되면, 인간의 모든 악행은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간 본성은 선하며, 인간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자신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이론이 형상화 되어 있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이론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실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베라 파블로브나와 로푸호프의 이익 계산 이론이 그 좋은 예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많은 산술적 계산들이 등장한다.

인간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그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기만 한다면 인간은 완전한 이기주의로부터 나오는 악한 행동을 그만둘 것이라고 체르니솁스키는 믿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체르니솁스키의 이성적 이기주의 이론이다. 인간을 교육하고 개화시켜 이성적 이기주의에 눈뜨게 된다면, 악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여겼다. 또 그는 외부 자연의 분석에 결정적 요소로 제공되는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영역이 인간의 내적 본성의 분석을 위해서도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인간 심리, 도덕, 사회적 행동의 제반 문제에 수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문제는 1860년대 러시아에 있어 주요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2×2=4, 2×3=6, 2×4=8…인 것처럼, 인간의 제반 행동에 대한 해답도 이성적 이기주의가 제시하는 이익 공식에 따라 나올 것이고, 따라서 백과사전처럼, 어떤 문제가 있으면 어떤 해답이 있다는 식의 인간의 제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실은 사전류의 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겼다.

체르니솁스키의 모든 이론과 모든 사상은 베라 파블로브나의 네 번째 꿈에 등장하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인 수정궁으로 집약된다. 체르니솁스키는 사회주의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의 행복한 삶의 승리라 여겼으며 미래에 확실하게 존재하게 될 세계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자연과 이성, 수학, 과학의 법칙이 완전히 지배하는 곳, 사회주의적인 지상낙원으로 체르니솁스키가 제시하고 있는 수정궁은 한마디로 완벽한 사회인 것이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선하고, 따라서 모두가 모두에게 감출 것이 없는 하나인 우리(소비에트 작가 자먀틴의 유토피아 소설 ≪우리들≫을 연상시킨다)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수정궁은 전체가 투명한 수정으로 되어 있는 완벽한 미래 사회의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라고 여겼다.

체르니솁스키는 자신의 전 인생을 통해 인간 존재의 기본적 문제를 모두 포괄하는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으며, 그 안에서 체르니솁스키는 사람들에게 진리가 어디에 있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체르니솁스키는 문학은 교훈적일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교훈적인 소설을 고안해 내었으며, 삶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해결방안을 독자들에게 제시코자 했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가 소설 이상의 것이 되기를 주장했으며, 그의 젊은 동시대인들 역시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교본으로 열렬한 찬사와 함께 경이의 감정으로 받아들였다.

체르니솁스키로 대표되는 1860년대의 혁명적이고 진보적인 젊은 층들이 마치 하나의 신앙처럼 열렬하게 받아들였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젊은 날의 도스토옙스키 자신의 신념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바로 그 푸리에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 만약 도스토옙스키가 이 사상을 직접 체험하고 이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것에 대한 깊은 회의의 날들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이 사상의 순진한 허구성과 치명적인 위험성을 그토록 잘 파악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1840년대에 20세의 도스토옙스키는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참석하게 되면서 바로 이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 대한 이론을 접하게 된다. 페트라솁스키는 1840년대의 혁명적인 자유주의 운동에서 뛰어난 인물이었으며, 푸리에주의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푸리에의 인간 본성 이론과 사회주의적 공동 생활체인 ‘팔랑스테르(Phalanstère)’라는 조직의 실현을 확실히 믿었다. 페트라솁스키 자신이 만든 비밀스런 모임에서 대화의 주된 주제 중 하나는 푸리에의 가르침에 따른 공산적 경제 원리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적 이상 국가 건설이었다.

러시아인의 극빈과 극부의 모순적인 공존을 목격하고,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짓눌린 자들에 대한 동정과 관심을 가지고, 물질적 가난이 인간성을 얼마나 왜곡시키는가에 대해 골몰했던 도스토옙스키, 자기 자신 역시 계속되는 물질적 궁핍함에 고통 받아야 했던 젊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물질적 풍요와 인생의 행복과 안정을 약속해 주는 이상 사회 건설에 대한 이 이론은 젊은 이십 대의 그의 심장을 사로잡았고 그는 이에 열렬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1849년 페트라솁스키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도스토옙스키가 시베리아 감옥에서 보낸 4년의 세월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그의 신념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하게끔 했다. 그곳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본성의 어둡고 적나라한 야만적인 면을 보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심연에 있는 이런 선과 악의 카오스와 악마적 요소의 우세를 보고 난 후 이전의 푸리에주의의 인간 본성 이론으로부터 그가 자신의 신념으로 받아들였던 ‘본성적인 선’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또 죄수들 간의 힘의 역학 관계에 대한 관찰에서, 그들의 격렬한 우위 다툼을 목격하고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고자 하는 인간 본성의 모순에 대해 깨달았으며, 이런 체험들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개인들이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다는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해 도스토옙스키가 갖고 있던 믿음을 산산조각 나게 했다.

이러한 급격한 이데올로기적 변화를 경험한 도스토옙스키에게 “사회주의”가 이상적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믿음과 동등한 형제애가 가능한 인간의 선한 본성에 대한 회의에 쐐기를 박은 사건은 1862년에 이루어진 그의 첫 번째 유럽 여행이었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했던 나라, 위대한 부르주아 시민혁명이 성공한 나라인 프랑스의 중심 도시 파리에서 그가 본 것은 혁명의 성공이 가져오리라고 예상했던 만인의 자유와 평등과 형제애가 존재하는 지상낙원이 아니었다. 그는 여기서 형제애의 불가능성과 물질 만능주의의 노예가 된 착취자들의 부패와 타락을 보았고, 자본주의가 발달한 영국의 수도에서는 극빈과 극부의 모순된 공존과 자본주의 남용의 명백한 증거들을 보았다. 특히 1862년 영국 켄싱턴의 로열 파크에 세워진 세계 박람회의 수정궁은 도스토옙스키를 경악케 했다. 그것은 전 세계 사람들을 하나의 가축 떼로 만드는 우상과 악마의 왕국처럼 보였다. 자본주의의 이상의 왕국으로 건설된 이 수정궁은 도스토옙스키에게 우상의 왕국이며 반()그리스도이며 그 속에서 인간의 정신은 정복당하고 종속당하고 정신적 자유가 말살되는 그런 곳으로 여겨졌다. 유럽 여행의 결과, 도스토옙스키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달한 결과는 똑같은 개미탑이며, 그 결과가 인간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인간성의 박탈을 전제로 하는 가축과 같은 노예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1863년 체르니솁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잡지 ≪동시대인(Отечественные записки)≫에 나타났을 때, 도스토옙스키는 그 안에서 젊은 날의 자신이 지녔던 바로 그 이데올로기의 신념을 보았다. 그는 인간의 실제적 본성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그 이론의 순진한 허구성과 인간을 개미 떼나 가축 떼로 몰아가려고 하는, 즉 인간성 박탈을 전제로 하는 (그 책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적 이상 국가의 두려움을 분명히 자각했다.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마치 하나의 삶의 지침이요, 교과서요, 성서처럼 받들고 있던 당시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우려를 강력히 나타내며, 그들이 신봉하는 이데올로기의 위험성을 알려야 할 의무를 느꼈다.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예술적 답변으로 의도되었기 때문에 작품에서 반복되는 주요 단어들, 텍스트, 내용, 표현, 주요 사건, 이 모든 것들이 반대편의 주된 사상들에서 차용되어, 지하생활자의 말 속에서 왜곡되고, 패러디되고 희화된다. 1, 2부의 주된 에피소드인 장교와의 결투와 리자 이야기도, ≪무엇을 할 것인가?≫의 긍정적 주인공 중의 하나인 로푸호프의 사건과 창녀 구원 문제를 다룬 키르사노프와 크류코바의 사랑 이야기를 각각 패러디한 것이다. 또 체르니솁스키와 그 추종자들의 중심사상인 공리주의, 합리주의, 실용주의, 이성적 이기주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 등은 ‘2×2=4’로 대변되며, ‘2×2=4’는 체르니솁스키가 바로 자신의 사상을 옹호하고 주장하기 위해 최고의 긍정적 성질을 부여했던 것으로, 이를 인간 행위에 적용하면 인류의 조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던 보편적 공식의 상징, 인간 행위를 규정하는 보편적 원리로, 또 세계 조화의 위대한 원리로 제시했었다. 또 ‘2×2=4’가 다스리게 될 완벽한 유토피아 왕국으로서의 수정궁은 도스토옙스키의 텍스트 속에서 지하생활자의 입을 빌려, 수정궁 자체와 그 믿음의 철없을 정도의 허황됨과 그것이 갖는 맹점들이 공격당한다. 그것의 완벽함은 역설적으로 그것의 최대의 약점이 된다. 완벽은 진보를 허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은 죽은 끝이며 ‘2×2=4’와 같은 죽은 공식이다. 자연법칙, 이익, 피아노 건반, 지하실과 수정궁, 이 모든 것들이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차용되고 지하생활자의 말 속에서 뒤틀리고 과장되어 결국에는 원 텍스트에서 가지고 있던 긍정적 자질들을 스스로 파괴하게 만든다.

≪지하생활자의 수기≫ 속에서, 도스토옙스키의 비난과 풍자, 적개심의 대상 범주는 체르니솁스키의 이론과 그의 작품 ≪무엇을 할 것인가?≫뿐만이 아니라, 체르니솁스키가 활동한 잡지 ≪동시대인≫의 주요 멤버들이자 체르니솁스키의 열렬한 추종자들, 살티코프-셰드린과 네크라소프와 그들이 칭찬한 작품들−니콜라이 게의 ≪최후의 만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인 반박이라는 작품의 직접적인 동기에도 불구하고, 지하생활자가 구체화하고 있는 고독, 자유, 선택, 고통, 노예화, 정체성, 구원으로서의 사랑의 문제 등의 모든 테마는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늘 현대적이고, 늘 보편적으로 남아 있는 인간의 주제다. 이렇듯 작품이 구현하고 있는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이고 무시간적인 주제성은 작품 자체의 예술성을 영원히 가능케 해 줄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몇 세기가 지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을 건드릴 수 있는 영원한 명작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 주리라 믿는다.

또한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가장 도스토옙스키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이 작품 속에서 “지하실”의 추악성과 비극성을 낱낱이 파헤칠 수 있었던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의 승리다. 수기의 저자 “역설가”는 단순히 관념적, 철학적으로 설정된 것이 아니라, 도스토옙스키 자신이 그 시대와 사회의 모든 정황을 몸으로 앓아 내고 난 후 가장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통해 이루어진 문학적ㆍ철학적ㆍ윤리적ㆍ세계관적 발견들은 이후 도스토옙스키가 창작하게 될 모든 대작들의 뼈대를 이루는 내적 근거가 되었다. 또 이 작품이 새로운 세계로의 물꼬를 터 준 셈이 되어,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작지만 무거운 문을 지나야 비로소 예언적인 위대한 “도스토옙스키적 세계”가 활짝 펼쳐지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하면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만이 문제시되고 있지만, ≪지하생활자의 수기≫도 ≪백야≫나 ≪분신≫, ≪우스운 인간의 꿈≫, ≪상냥한 여인≫, ≪가난한 사람들≫ 등의 주옥같은 소품들과 함께 인문학도라면, 아니 지성을 지닌 교양인이라면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하생활자의 수기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고전해설ZIP, 2009. 5. 10., 지만지)

 

현재까지는 도선생의 작품 중  가난한사람들, 죄와벌, 상처 받은 사람들, 이번에 읽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었는데, 여전히 5대 대표작중 4권은 아직 읽지 못했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인간의 심리 묘사 에 탁월해서 두권,세권 씩이나 되는 작품들을 읽어내기가 쉽지않다, 다행히도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얇은 책두께로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한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온갖심리 묘사를 해놓은  1부는 읽어내기가 수월치 않고, 2부에 가서 스토리 가 있어서 그나마 빠른 속도로 읽을수 있었다.

이책을 읽는 내내, 이주인공은 과잉 자의식을 가진 사회 부적응자. 아니면 복잡 미묘한 정신세계를 가진 히토코모리의 정신 병자 이야기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작가가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 하고 싶은게 뭔가 의문이 들었다.

물론 1부에서 내내 풀어내는 주인공의 생각을 통해서는 인간이란 완벽하게 이성적일수 없다.

오히려, 감성적인 모습이 더 인간적이다. 라는 메시지를 보았는데. 좀더 정보를 찾고서야 겨우 맥락을 이해할수 있게 되었다.

이 소설은 도선생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작품 세계를 푸는 중요한 열쇠라고 앙드레 지드 가 말한것처럼 후기 도선생의 사상을 포괄하고 있다고 한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는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이 득세를 하게되는데, 그때 체르니세프스키 라는 사람이 이성적 이기주의를 강조하면서 "무엇을 할것인가" 라는 책을 통하여, 그시대의 젊은이에게 공감을 얻고,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성적 이기주의란 ,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걸 알기만 한다면, 그것에 부합하게 이성적으로 행동 할수 있다고 보는이론인데,  이성, 수학, 과학등 의 법칙이 완전히 지배하는 사회주의가 모든 인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맥락에서 , 공산주의 즉 모든 사람이 동일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 이익을 분배하고 , 갑을도 없는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 할수있다고 역설하고, 그당시 가난과 불평등에 시달리던 일반 프롤레타리아 계급들이 "수정국" 이라는 지상낙원을 꿈꾸며 열광할수 밖에 없었다.

도선생도 초창기에 이러한 사회인식에 수긍하고, 이러한 독서모임에 나가고, 말하자면 그시대에 불온한 서적을 읽다가, 결국 체포되어, 사형당하는 바로 그순간 풀려나서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 부터 그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공상적 사회주의 에 회의를 품고, 다소 우익적방향으로 인식을 다시 하게된다. 그 비참 한 유형 생활에서 인간 밑바닥의 내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인간의 내면에는 굉장히 바람직한 이성이외에도 충동적인부분 ,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사악하며, 욱하는 내면의 추악한 모습까지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해 자로재듯 재단할수있고, 제어할수 있다고 보는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어불성설이냐는 것이다. 아마도 지상의 낙원인 수정궁도 완성되기 직전에 , 자의 식을 가진 인간이 지루함을 못참고ㅡ,부서버리고야 만다는 것이다,.

결국 합리적 통제는 인간성을 말살하고, 인간을 노예화 하며, 개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며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말살하기에. 실현불가능 하다고 반박 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인것이다.

주인공인 나는 전직이 말단공무원으로 친척이 물려준 유산을 바탕으로 혼자 지하에 들어가기를 자쳐하며, 하루종일 몽상과 사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1부는 온통 자기의 자의식을 분석하는 글로 가득차다. 그런데, 1부만 읽어도 어렵긴 하지만, 도선생이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굴레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 500여페이지 두권의 이책을 거의 한달이상 보았나보다.. 퇴근후 짬짬이, 또 매주 부커스 책이 중간에 끼는 바람에, 읽는 속도가 너무 늘어지는 바람에 많이 늦어진것 같다.

그래도 드디어 끝냈다.

 

서머셋 모옴은 고갱을 모티브로한 달과 6펜스의 작가이기도 하며 , 달과 6펜스와 인간의 굴레 가 그의 대표작으로 볼수있는 영국 작가이다.

아버지는 파리의 영국대사관에서 법률고문 직이어서 모옴은 프랑스에서 출생 했다

8세때 어머니ㅡ 10세때 아버지를 잃고 영국으로 건너가 성공회 사제로 일하는 삼촌의 보호하래 성장

하였으며, 15세때 부터 글을쓰고, 그후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습작을 했었는데

나중에는 의사직을 포기하고 전문적인 작가의 길을 걷는다

 

대중적인기를 끌었으나, 평론가나 다른 작가로부터는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고는 하나,

서민의 삶을 작품속에 잘 녹여냈으며, 일단 작품성도 있고 재미도 있단는 점에서 그의 작품들이

고전에 들어가는것이 절대 무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의 굴레는 자전적 적 소설이며, 많은 부분이 작가의 자전적 부분과 일치 하며, 예를 들어 주인공 필립이 9세에 고아가되며, 사제인 백부 손에서 양육되고 , 기독교 스쿨에 들어가고, 왼쪽발이 틀어진 불구 여서 늘 이부분을 의식하며 살게 되므로 이 핸디캡이 컴플렉스로 작용해서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겪게된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약점등이 성격등을 더 배려심있게 만들고, 겸손해지므로 타인들이 주인공을 다 좋아하게 되는역할이 된것도 부인할수 없다

 

약점이 괴로우면서도 오히려  자아 극복의 계기가되는점이다.

 

그런데, 어린시절 남의 놀림을 받고, 혹은 자기가 좋아했던 친구가, 마지막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놀리는 장면등은 가슴이 아팠고, 믿음으로 극복될수있다는 순진함으로, 자기전에 자신의 다리가 정상이 되기를 기도하며, 다음날 자신의 다리를 더듬어보고 절망하는 부분은 가슴이 메어왔다.

 

고등학교 졸업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제가 되라는 백부와 교장의 권고를 뿌리치고,

자유분방하게 살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자, 처음에는 회계사가되기위한  도제 수업, 그후 자신의 열망을 쫒아 그림 공부를 시작했으나, 자신의 능력한계를 깨닫고 포기, 결국 의사공부를 시작한다, 그와 중에 밀드레드라는 여종업원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사랑과 절망의 과정들은

독자로 하여금 분노까지 일으키게 한다.

어떻게 매번 자신을 이용하는 팜므파탈의 그여자에게 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결국 사랑이란 이성의 지배가 아닌 감정의 문제인둣하다.

배려심많고, 온화하고, 따뜻한 여자 노라 대신 차갑기 그지없고, 천박하며, 안하무인,성격이상 , 머리가 텅빈 밀드레드에게 빠져드는지,  뻔히보이는  불행을 택하는 사랑의 감정들이란..

 

이 밀드레드 때문에 , 자신의 재산도 점점 줄어들고 , 초조한 마음에 주식투자해서 날리고,

결국 궁핍으로 인해 의학 공부도 중단하게되는 과정들은, 100여년전의 삶도 우리와 별다른게 없다

아니 그이전의 시대도 다름이 없다는것은 확실하다.

결국 먹고 살려고, 점원도 하면서 유산을 물려받고자, 백부가 빨리 죽게 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인생이란게, 꿈,열정, 부, 사랑 이런 굴레로 부터 한시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인생 별거 없다는 생각이 자꾸드네요.. 그냥 이렇게 열심히살아낼수 밖에 다른 길은 없다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가 너무 재밌다고,  손석희가 느낀것처럼 자신도 판사문유석이 과 동질감이 느껴져서 경이롭다고 했다.친구의 한줄 서평은' 온전한 개인이어야 온전한 사회가 된다 ㅋ '라고 카톡방에 활자화되었다.

막연히 생각해본다.. 개인주의자 선언.. 무슨 내용일까, 집단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올바른 생각을 견고히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범위내에서 내뜻대로 결연히 행동해 나감, 우리나라에서 만연한, 연고 주의,지역주의, 패거리 , 동문 ,동창 이런것들에서 독립하는것 .. 이런 내용이겠거니 했으나,

낚였다.. 이름 때문에 낚였던거였다.

 

물론 1장에서는 만국의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건 싫다고 말하자로 시작한다.

 

세상에서 제일싫은게 회식이고, 친척들 모이는 명절이 싫고,사랑합니다 고객님 하고 상담사가 말하면 "왜요"하며 질색하던 필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살고, 최대한 다양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가고싶은것이 최대의 야심이라고 당당히 말하며,, 정많은 휴머니스트가 아니라 최소한의 도덕을 찾는 현실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개인주의자도 무수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런데 우리사회는 잘사는 나라, 치안도 훌륭하고, 여러가지 객관적 지표도 훌륭한데, 많은 한국인들이 미래를 불안해하고, 사회에 절망한다. 인류의 보편적 질환인 양극화 ,빈부격차, 불평등 취업난, 저상장외에도 우리 사회의 특유한 체질 인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ㅏ를 지적하며 , 이것이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하기에 우리는 합리적 개인주의를 회복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직장이든 상명하달 식의 군대조직을 닮아서 개인의 의사 감정 취향은 쉽게 무시되고, 때로는 개인주의는 배신자의 낙인이 찍히기까지한다. 하지만 이것은 유아적 이기주의나 사회를 거부하는 고립주의자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사회적 동물 일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 참아주고, 양보하고, 내 자유도 때때로 자제하고, 타인과도 타협해야하고, 연대해야한다고 말한다.. 왜 "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

 

 

말이 흉기다 꼭지에선 데이의 세 황금문 을 얘기하면서, 아무리 사실이오도 함부로 말해선 안되고 때론 말이 흉기가 될수잇다고 한다

누구나 말하기전에 세문을 거쳐야한다

그것이 참말인가

그것이 필요한 말인가

그것이 친절한 말ㅇ니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